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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병진 Oct 25. 2020

아나운서 앵커 진로 상담

후배들이 진로를 염두에 두고 실무적인 질문을 해왔다

얼마 전 학부 후배들로부터 인스타그램 쪽지를 받았다. 진로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선배들에게 진로 조언을 청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이제 뉴스채널 앵커직도 내려놓고 아무 영향력 없는 대학원 준비생인데. 내 말이 후배들에게 도움될까? 10여년 전에 비하면 부쩍 자신감이 떨어진 내게 이 메시지는, 어떻게 보면 고맙고 한편으로는 부담스럽기도 했다. 부담스럽다기 보다는 미안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학부로 치면 암모나이트나 삽엽충보다 더 한 학번일 나한테 2020년도에 재학 중인 후배들이 진로를 묻는다는 건 커다란 용기를 내지 않으면 안 될 일일 것 같다. 첫 연락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내가 YTN을 이미 퇴사했다는 사실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So winzig!(앙증맞아라! ㅎㅎ)


늙은 공룡 같은 내게도 뭔가 들을 이야기가 있다면, 나는 기꺼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내게는 그런 열정이 충만하다. 타인에게 짐이 아닌 벗이 되고 싶다. 도움을 주고 힘을 나누고 싶다. 그런 마음을 담아 숭실대 후배들에게 보낸 답장을 정리해 '아나운서 트레이닝' 폴더에 공유한다. 누군가에게 티끌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내 이야기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공통 질문


0.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아울러 현재 혹은 과거의 직무에 대한 설명도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언홍(언론홍보) 05학번 정병진입니다. 매일경제TV 창단 멤버로 아나운서, 앵커 겸 기자일을 했습니다. 부산MBC 공채 아나운서로 뽑혀 2년 간 부산 생활을 한 뒤 YTN라디오 아나운서로 직을 옮겨 아침 시사 프로그램을, YTN 본사 앵커로 발탁돼 각종 뉴스를 전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살면서 석사 유학을 준비 중입니다.



1. 언론홍보학과 전공 강의 중 취업 및 실무에서 가장 도움이 됐던 것은 무엇인가요?


커뮤니케이션과 저널리즘은 이 분야 전공자라면 필수입니다. 지금도 사스킴(김사승) 교수님이 담당하시는지 모르겠네요. 'SMCRE'로 시작하는 커뮤니케이션의 이해는 신문, 방송, 광고, 홍보 등 모든 분야의 기초이니 잘 공부해두시면 좋을 것 같아요. 나머지 강의는 자기 취향 따라 들으시면 됩니다. 박창희 교수님의 방송학이나, 장석준 교수님의 미디어 비평 강의, 김효숙 교수님의 PR 이론은 현장에서 두루 도움됐습니다.


저는 철학, 역사, 예술, 영화 관련 교양도 많이 들었어요. 호기심에 들었던 강의들은 모두 제 피와 살이 됐습니다. 학점 교류 수업으로 중앙대에서 들었던 '매체미학'은 지금 유럽에서 공부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됐어요. 우리 과에서 맛볼 수 없는 앎의 재미를 학점 교류 같은 색다른 자극을 통해 느껴보시는 것도 추천합니다.


2. 언론홍보학과 활동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활동은 무엇인가요?


단연 언홍제(언론홍보학과축제)죠. 아나운서라는 제 직무를 실질적으로 체험해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선후배, 동기들과 유대감도 키우고 팀워크도 배웠습니다. 가수 '화요비' 씨를 섭외했었는데 무대 위 인터뷰 중 돌발 답변을 많이 하셔서 적잖이 당황한 기억이 납니다. 그 어설펐던 시절을 곱씹고 소화하다 보니 어느 새 진짜 아나운서가 되어 수백 건의 행사를 진행하게 됐습니다.


3. 현재 직무를 위해 갖추면 도움 되는 능력이나 자질은 무엇인가요?


직무는 좁은 범위에요. '실질적인 일'이죠. 직무는 각 분야 인턴이나 현장 실습을 통해 익히시면 됩니다. 학부 때는 직무보다는 직업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할 것 같아요. 아나운서라는 직업만 하더라도 과거 방송국에서 담당하던 직무는 내레이터, DJ, MC, 앵커, 캐스터 등으로 다양했습니다.


지금은? 각 아나운서 직무를 이제 기자, 교수, 시사평론가, 개그맨, 배우, 가수가 꿰차고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습니다. 아나테이너라는 직업적 마인트 세팅마저 다소 낡은 유물이 된 것 같아요. 언론계, 나아가 미디어 업계 전반이 지금 엄청난 소용돌이 속에 있기 때문이에요. 제가 학부 시절에 강의로 들었던 내용들, 이를 테면 뉴미디어의 출현으로 인한 미디어 산업 구조의 변화 같은 교과서스런 배움들이 실제 현장에서 막 벌어지고 있습니다. 인공지능 기자, 앵커까지 나타나 머신러닝으로 열심히 학습하며 미래의 방송 꿈나무들을 위협하는 게 현실이에요.


지금 같은 시대에는 여러 능력을 통합해 시너지를 내는 '폴리매스(Polymath)'가 중요한 자질인 것 같습니다. 미디어, 언론 분야에서는 기존의 직업적, 직무적 문법을 답습하는 사람이 점점 도태되고 '인공지능이 흉내내지 못할' 뭔가를 조합해내는 사람들이 살아남고 있습니다. 우리 과 후배라면 영상 편집이나 촬영, PR, 커뮤니케이션 능력 이런 것들을 학부 시절 기본적으로 잘 배워두면 좋겠죠?


4. 취업 준비에 있어서 도움이 되었던 자신만의 마인드나 습관이 있으시다면 무엇인가요?


언론사 입사를 흔히 '언론고시'라 부릅니다. 그만큼 어렵고, 고학의 길로 접어들어야 한다는 함의를 담고 있는데요. 저는 그냥 '입사 시험'이라고 생각했어요. 일반 대기업 입사와 마찬가지로 효율적으로 준비했습니다. 토익이나 한국어능력시험 점수 등 필요 조건들은 잘 가르치는 학원이나 실력자들이 모인 스터디에서 단기간에 끝냈습니다.


나머지 시간에 필기, 실기, 면접 등 중요한 전형에 공을 들였어요. 실무 경험이 필요해 인턴기자로 활동했지만 남들 다 가던 어학연수는 안 갔어요. 화려한 타이틀의 해외 봉사활동을 가기 보단, 독거 노인 말벗 봉사에 나가 어르신들 이야기를 들어드리는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아나운서의 중요한 자질 중 하나가 경청이기 때문에, 봉사활동을 하면서 직무 역량까지 동시에 강화시키는 전략을 세워 실행했던 겁니다.


여기에 평소 저널리즘에 관한 관심을 녹여서 저만의 캐릭터를 구축해나갔습니다. 철저하게 효율성과 진실성, 직무 적합성만 따져서 입사 준비를 진행했고 그게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을 때 첫 직장에 합격했습니다.


5. 후배들에게 마지막으로 한마디


"니 논술이 전국 꼴찌다" 대학교 언론고시반에서 논술 강의를 들었을 때 현직기자에게 들었던 진짜 코멘트입니다. 웃으시며 농담조로 말씀하셨는데, 제가 봐도 잘 못 썼기에 할 말이 없었어요. 그런데 이때 창피해하기 보다는 이렇게 생각하니 되레 힘이 생기더라고요. '아, 그럼 난 이제 바닥을 쳤으니 올라갈 일만 남았구나!' 이후로 논술 잘 쓰는 방법을 찾아냈고 아나운서, 기자 필기시험도 속속 통과하는 결과를 얻었던 기억이 납니다.


좌절하지 마세요. 코로나19로 조심스러운 게 많겠지만, 그래도 도전하고, 부딪히고, 실패해보시길 바랍니다. 학생의 특권이니까요.


6. 학생들이 직접 보낸 질문 리스트입니다!



6-1. 평상시 시사 공부를 어떻게 하셨나요?


조선일보-한겨레 / 동아일보-경향신문 / 중앙일보-한국일보 이렇게 읽었어요. 1면부터 6면 정도에 걸친 정치면까지는 제목, 리드(첫 문장)와 인용구만 봤습니다. 여기에 칼럼과 사설은 가볍게 중심 내용만 이해하는 수준으로 읽었어요. 시사인, 한겨레21 그리고 월간조선을 일주일에 한 번 서너 시간 정도 투자해서 제목 섹시한 꼭지만 읽었어요.


주요 방송국 메인 뉴스 모니터링은 공채 앞뒀을 때만 했습니다. 각사 홈페이지 들어가 뒤로 석달치 몰아보기 했습니다.


토론도 굉장히 좋습니다. 학교 토론 교양 과목은 모조리 챙겨 듣고, 토론 동아리에도 들어갔습니다. 토론 대회에 참가하면서 사안을 깊이 이해하고 논의하는 훈련을 했습니다. TVN 대학생토론배틀에서는 우수상을 타기도 해 이력서에 한 줄 넣는 실속도 챙겼습니다.

학교 토론동아리 '제로피피엠' 멤버 용선이와 독일로 떠나오기 전 한 컷. 현재 여수MBC 아나운서다.


6-2. 아나운서, 앵커로서의 중요한 아나운싱 연습 방법은 무엇인가요?


사실, 아나운싱 자체의 중요성, 그러니까 목소리와 몸짓 언어로 뉴스 내용을 전달하는 것 자체는 입사하고 나서의 문제가 됐습니다. 아나운싱을 잘해서 아나운서가 되거나 앵커가 되는 시대는 거의 지나갔어요. 사투리를 써도, 조가 심해도 캐릭터가 분명하고 자기만의 전문 분야가 있으면 앵커도 하고 방송도 다 하는 시대입니다. 그 점을 먼저 주지해드립니다.


그외에 호흡, 발성, 발음, 평탄화, 강조 등을 뉴스 리딩으로 구현해내는 훈련은 아나운서 지망생의 경우 입사 시험 앞두고 3~4개월 정도 훈련하면 어느 정도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다음 카페 아랑(언론사 지망생들의 종합 커뮤니티)에서 공채 2차 3차 경험 있는 친구들이 꾸린 스터디에 어떻게 해서든 들어가 거기서 훈련하면 됩니다.

https://brunch.co.kr/@jip-yo/55



6-3. 스피치 도중 호흡이 부족해지고 말이 빨라지는 문제점을 해결하고 전달력 있는 스피치를 하기 위해서는 어떤 연습이 필요할까요?


호흡량을 늘리면 됩니다. 코로 숨을 마시고 입으로 천천히 뱉어내면서 복식으로 호흡하는 훈련을 반복합니다. 충분한 호흡량을 확인해가면서 말하세요. 스피치 중간 중간 쉬워야 할 지점에서 충분히 다시 숨을 보충해주세요. 말하면서 숨만 잘 쉬어주더라도 안정감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jip-yo/52

https://brunch.co.kr/@jip-yo/71



6-4. 재학 기간 중 저널리즘 앵커 준비에 도움이 되는 활동 추천해주세요


현장 많이 가보세요. 시위 현장, 참사 현장, 국가적 이벤트(보신각 타종, 통일 관련 행사 등), 메가 이벤트(올림픽, 월드컵 등) 같은 뉴스가 될 만한 곳에는 다 가보세요. 모종의 활동 타이틀을 달고 활동해볼 수 있으면 가입해서 직접 해보시고요. 인간과 사회에 관한 공감과 보편적 인식의 제고 외에는 딱히 답이 없습니다. 꾸준한 독서는 두 말 할 것도 없고요.


6-5. 언론사 입사를 언제부터 준비하셨나요?


군대 말년 휴가 때부터 준비했습니다. 3학년 1학기 복학 앞둔 시점이죠. 한겨레교육센터에서 한겨레 김규원 기자가 개설한 글쓰기 특강을 들으며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6-6. 사회에 나가기 위해 언론홍보학과 재학 중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학과 친구들, 교수님들하고 인간적으로 잘 지내세요. 형식을 잘 갖춰 이메일 쓰는 방법을 꼭 배우세요. 높은 학점을 받기 보다는 그 강의에서 나만의 언어로 재정의가 가능한 것들이 많아지도록 신경써보세요. 물론 대학원 진학을 나중에라도 염두에 둔 분들이라면 당연히 학점 관리를 하셔야 합니다.


영어나 제2외국어를 재학 중에 일정 수준 마스터하는 것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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