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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병진 May 12. 2019

대통령 대담

진행이 좀 더 매끄러웠으려면? 실무적 차원에서의 견해

문재인 대통령 2주년 대담을 둘러싸고 대통령의 답변보다는 기자의 질문을 둘러싼 논란이 크게 불거졌다. 기자의 표정과 문장 등 '표현'은 별론으로 하고, 질문과 답변의 '핵심'만 놓고 보면 물어볼 질문 물어봤고 나올 답변이 나왔다. 그렇다면 무엇이 사태를 이렇게 키운걸까. 나는 방송 실무에서 답을 찾는다. '연출'과 '섭외'다.


http://program.kbs.co.kr/contents/m/vod/vod.html?source=smr&sname=vod&stype=vod&contents_id=K01_PS-2019075946-01-000_SC01&program_code=T2019-0140&program_id=PS-2019075946-01-000&section_code=05&broadcast_complete_yn=N&site_id=9834


근본적인 문제는 연출자가 관심을 엉뚱한 곳에 두었다는 점이다. 연출자는 이번 대통령 취임 2주년 특집 대담에서 '미장센'에 특히 공을 들였다. 청와대 상춘재 근처에서 KBS 송현정 기자와 대통령이 만나 '도보 다리 대화'를 연상시키며 상춘재 안까지 들어간다. 부감과 로우 앵글 등 다양한 각도에서 두 인물을 외로이 조명했다.


상춘재 내부는 웅장하면서도 고즈넉했다. 소위 '빽(배경을 가리키는 방송 은어)'은 볼만하게 빠졌다. 방송에서 이런 세트 설정은 매우 중요하다. 시청자가 연출자가 원하는 무언가에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대담 연출자는 여기까지에만 신경을 쓴 것 같다. 화면이 멋지게 나오도록, 마치 BBC나 CNN 같은 채널의 인플루언서 인터뷰처럼 보이도록.


세트•미장센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세트 안의 출연자다. 방송에서 캐릭터와 캐릭터의 호흡은 상당히 중요하다. 화학적 결합이 중요하다는 인식은 '케미가 어떠하다'는 신조어까지 낳았다. <꽃보다 할배>, <삼시세끼>, <스페인하숙> 등을 연출한 TVN 나영석 PD가 엄청난 연봉을 받는 이유도 각 캐릭터의  특성과 케미에 맞는 적재적소 섭외력 덕분이다.


http://program.kbs.co.kr/1tv/culture/moonconversation/mobile/


그런 관점에서 '기자'와 대통령의 1:1 대담은 썩 '보기에 편안한' 케미가 나오기 힘들었다. 대체로 기자의 질문은 '취재'에 초점이 맞춰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취재는 진실을 캐내는 작업이다. 금맥을 찾기 위해 곡괭이나 심지어 다이너마이트까지 동원한다. 아무리 가볍고 부드럽게 물어본다 하더라도 기자의 질문은 날카롭다.


물론 모든 기자의 질문을 날카롭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번에 대담을 진행한 기자가 상호 교류가 중요한 인터뷰나 편안한 대화 중심의 대담을 했다기 보다는 취재에 몰두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공교롭게도 이번 대담 제목은 <대통령에게 묻는다>였다.

기자에겐 무엇보다 취재원으로부터 뽑아낸 유의미한 인용구가 관심이다. 송 기자가 대통령 말을 자주 자르며 치고 들어간 건 유효한 워딩이 안 나올 것 같은 상황으로 흐르지 않게 하려는 테크닉이었다고 나는 봤다. 그게 두 사람의 말이 너무 겹치게끔 끊어서 볼썽사납게 됐다.


나도 대담 중에 패널 말이 길어질 것 같으면 오디오가 겹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잽싸게 발언 주도권을 낚아 채오는 일이 다반사다. 여기서 핵심은 진행자와 패널의 오디오가 겹치지 않아야 한다는 점과 카메라 온에어 샷이 나를 비추지 않는 상태에서 패널에게 '말을 줄여야 한다'고 수신호를 주는 센스다. 이번 대담에서 두 출연자가 이렇게까지 직간접적으로 대담을 조율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내용적으로 보면 송 기자는 국민의 여러 입장을 대신해 물어볼 수 있는 내용을 모조리 물어봤다. 대통령도 할 말 다 했다. 기자의 의도를 떠나 이번 대통령 답변을 보면서 또다른 문 대통령 지지자들은 '국장 철학을 더 명확히 보여줬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다만, 연출자는 미처 누군가가 '기자의 표정'까지 문제삼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 같다. 심지어 그 표정을 응원하는 사람들마저 나타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모두를 만족시킬 순 없지만 적어도 시청자가 불필요한 오해 없이 프로그램의 핵심에 다다를 수  있게끔 연출진은 신경썼어야 했다.


그럼 대담을 누가 진행하는 게 나았을까. 방송을 보는 사람에게 어떻게 보여질지를 염두에 두며 진행할 수 있는 '방송을 아는' 사람. 시사 현안을 두루 꿰뚫으면서 핵심을 골라낼 줄 아는 사람. 대담자에게 '질문'이 아닌 '말'을 건네며 대화를 주고 받는 사람. 이를 통해 자연스레 답변을 이끌어내는 사람. 특히 '들을 줄 아는' 사람. 이런 기준을 종합했을 때 노련한 아나운서나 대담 잘하는 앵커가 기용됐으면 어땠을까 싶다. 이번 대담 주관사가 K본부였으니 최원정 아나운서 정도의 인물이면 잘해냈을 거라고 본다. 방송 보는 사람 입장에서 공감할 만한 보편적 문장은 뭘까, 표정 연출은 어떻게 할까 등등 언어적•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 언어를 정제하고 말을 빚는 전문가는 기실 아나운서다.


하지만 대통령과의 단독 대담이 여러모로 중요한 자리이다 보니 조직 헤게모니 차원에서도 밀리고 '저널리스트'라기 보단 '아나테이너'가 정체성이 되어가는 아나운서를 기용하기가 여간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나운서 출신 앵커로서 내게도 참 착잡한 대목이다. 이번 논란 보면서 손석희 JTBC 사장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서로 마주 대하고 말을 주고 받는, 문자 그대로의 대담을 말이다. 아나운서 출신 손 앵커의 당시 진행과 관련해선 다음 기사가 잘 풀어준다. 대통령 대담 특집 제목은 공교롭게도 <대통령에게 듣는다>였다.


http://m.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48353


아울러 기억해야 할 점이 있다. 이런 논란이 나올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진보된 민주주의 시대의 편린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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