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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돌스토리 Aug 04. 2022

소비로 나를 만드는 법

아무거나 사지 않는, 맥시멀리스트 같은 미니멀리스트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갖고 싶은 것을 다 갖는다고 행복해지지 않는다.

비우는 게 즐겁다고 하더라도 아끼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내가 원하는 것을 바로 알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



자칫 소비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일 수 있지만 틀렸다.
이것은 소비를 통해 나를 만들어 나가는 이야기이다.






 돈 쓰는 것을 그리 즐겨하지 않는 편이다. 갖고 싶은 것을 사는 행복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돈이 통장 속 숫자를 통해 커져나가는 데에서 더 만족감을 느꼈던 것 같다. 1부터 9까지. 그리고 0이 하나씩 생기는 것을 보면 덩달아 나까지 더 커진, 다른 표현으로는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은 만족감에 중독되었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를 위해 큰 마음을 먹고 구매한 선물을 제외하고는 수십만 원이 넘는 물건을 사본적이 없었다. 필수 지출을 (통신비, 교통비, 관리비, 보험 등) 포함하고서도 월평균 지출이 100만원을 넘어서는 적이 많지 않다. 매일 그리고 매월마다 기록되는 나름의 재무제표는 언제나 평화로웠다. 적어도 지난 5월 애플 제품에 빠지기 전까지는


앱등이 한 명 추가요~ [출처 - Financial Times]



한 번 새기 시작한 구멍으로 돈이 술술 나가더라


 어떤 영향인지 어릴 적부터 나는 삼성이 좋았다. 핸드폰과 노트북, 가전은 물론 옷까지도 빈폴을 즐겨 입을 정도로 삼성의 보호 아래에서 성장했다. 주변을 삼성으로 가득 채우니 친구들 사이에서도 삼성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할 만큼 유명할 정도였다. 그랬던 내가 2021 프리미엄 폰이라던 갤럭시 폴드3 구매해 사용하던  삼성이 싫어졌다. 여러 가지 이유가 합쳐져 시너지를 발휘했고,  마음은 삼성을 떠나갔다.

나는 IT 관련된 것들을 좋아한다. 유튜브를 통해 사지도 않을 IT제품은 물론 IT 연관된 각종 영상을 빼지 않고 챙겨본다. 내가 직접 사용하는 제품은 삼성뿐이었지만 트렌드를 놓친 적은 없었다. 그리고 IT기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세계 시가총액 1위에 빛나는 애플은 언제나 탐나는 브랜드였다.  나이 들기 전에 언젠가 애플 제품을 써봐야겠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는데,  생각이 삼성을 떠나가던 마음과 합쳐져 애플로의 대이동을 시작하게 만들었다.

소비보다 저축을 좋아하던 내가 마음이 떠난 것으로부터 좋아하는 것으로 이동해 애플의 생태계를 갖추는데 1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아이폰 13 pro 사고, 가을 신제품까지 기다리지 못하겠다며 일주일  애플 워치 7 정품시계줄까지 껴서 구매하고, 이어폰은 역시 콩나물이지 하며 에어팟도 샀다. 일주일 후에는 아이패드 미니 6세대와 애플 펜슬을, 마지막으로 맥북 에어 m1까지   안에 수백만 원을 긁어버렸다. 멀쩡하던 삼성의 것들은 '가성비 중시'라는 나의 핵심 가치관과 함께 모두 당근으로 보내  주인들을 찾아주었다.


이후에 구매한 아이패드, 맥북, 기타 액세서리는 넣지도 못했다.



가성비 중심의 미니멀리스트가 이제 맥시멀리스트가 된 것인가?


 나이가 들고 성향이 변했던 걸까? 아니면 내 의사와는 무관하게 올라가는 사회적 지위를 따라 늘어난 연봉 때문에 재정상 여유가 생긴 걸까? 구매한 지 2~3달이나 지났지만 지난 5월의 가계부를 보고 있자니 아찔하다. 평화롭던 내 재무제표에 무슨 짓을 한 것일까 이때의 나는 내가 아니었던 걸까 하는 의문이 들지만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잘한 소비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이제 미니멀리스트가 아닌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여전히 최소한의 구매만 하고 있었다. 당장 7월의 가계부만 보더라도 원래의 내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굳이 자기 합리화를 해보자면 기존의 삼성을 판매하고 애플을 구매하니 생각만큼 엄청 큰돈이 들어가지도 않았다. (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럼 나는 미니멀리스트인데... 집을 돌아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미니멀리스트가 맞다는 확신이 들었다. 아무것도 사지 않는다는 개념이 아닌 나만의 미니멀 개념이 새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핵심이 변했다. "가성비"에서 "같은 기능 단위의 물건의 수"로


 평소에 고민과 생각을 굉장히 많이 하는 성격이다. 물건을 살 때도 그렇다. 2018년쯤 카메라 구매를 고민했던 일이 나라는 사람의 사고의 흐름과 고민의 단계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사례라 나를 소개할 때 종종 이야기하곤 한다.


때는 직장 3년 차인 2018년, 문득 카메라가 사고 싶어졌다. 사진/동영상 촬영은 영 나의 취미와 거리가 멀었다. 한 번은 현장 기업 실습으로 대학교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일본 도쿄를 방문했던 적이 있다. 그곳에는 카메라용 가방만 2~3개를 챙겨 올 정도로 사진 전문가인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의 여행은 오로지 사진을 위한 것이었다. 하루에 고작 한두 곳만 즐길 뿐 아니라 몇 시간이고 같은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며 내가 카메라에 관심을 갖는 일은 없을 것이라 확신했다. 이만큼이나 카메라에 무관심한 나는 막연히 스마트폰보다 좋은 사진을 찍고 싶었다. 그날 퇴근 직후 판교역 근처의 일렉트로마트로 향했다.



나의 고민 범위는 렌즈까지 갈 수준은 아니었지만, 거기까지 고민하지 않아도 매우 복잡했다... [출처 - 엔돌슨의 IT이야기]



카메라의 세계는 정말 어렵고 복잡했다. 직접 물건을 보고 직원들의 설명을 듣고 유튜브와 인터넷을 뒤지고 나에게 가장 맞는 제품을 찾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힘겹게 상품을 선택한 후에 내가 한 행동은 구매가 아니었다. 정말 나에게 카메라가 필요한가를 다시 고민했다. 다시 고민의 첫 단계로 돌아온 것이다.

카메라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리기까지 또다시 며칠이 걸렸다. 결정을 하고 나니 다시 이왕 사는 거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사고 싶어 졌다. 실컷 조사해서 결정했었지만 이전의 조사와 선택에 한번 더 확신이 필요했다.

또다시 카메라를 공부했고 결국은 사지 않았다.



나에게 필요한 (need) + 나와 어울리는 (fit) + 가장 좋은 것 (best)을 사자.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고민의 늪에서 얻어낸 결과는 Don't buy 였다. 그 당시에는 심오하게 생각해보진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need와 fit에서 NO!라는 답을 내렸던 것 같다.


4년이 지난 지금, 삼성에서 애플 생태계로 갈아탈 때도 같은 프로세스를 밟았다. 아이폰, 애플 워치, 에어팟, 아이패드, 맥북까지 애플 유저들은 생태계를 강조하기에 고민해야 할 범위가 너무 넓었다. 각각에 대해 '나에게 올바른' 선택을 해야만 했고, 구매를 결정하기까지 유튜브 영상만 "각각" 10~20개씩은 본 것 같다. 케이스부터 충전기와 같은 액세서리 고민까지 들어간 나의 시간을 생각해보면 (지나고 나서 일까)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아마 아이패드 미니를 고민하던 당시 보던 시청기록인 것 같다. 정말 열심히 많이 봤다. 사기도 전에 이미 사용해본 기분이랄까



내 주변엔 나와 다른 성향의 사람들이 많다. 살면서 "뭘 그렇게 오래 고민해. 갖고 싶고 필요하면 사는 거지"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나는 그들의 틈에서 나만의 미니멀리즘을 나도 모르게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기능을 하는 물건이 필요하면 고르고 골라 그중에 가장 좋은 것을 사야 했다.

그 기능을 하는 물건이 정말 필요한지가 먼저였고, 다음은 나에게 가장  맞는  하나면 충분했다. 가장 잘 맞는 것을 찾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지만, 사놓고 사용하지 않거나 잘못 샀다는 생각에 다시 구매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애플도 그러했다. 아주 많은 시간을 들여 나에게 필요한 것들을 구입했고, 같은 기능을 하던 기존의 삼성은 나에게 필요 없어졌다. 당근마켓이라는 훌륭한 플랫폼을 통해 그것이 필요한 사람들의 품으로 보내줬다.


거침없는  미니멀리즘 실천으로 점점 뜨거워지고 있는 나의 당근마켓



소비는 주변을 채우는 것이고, 그 결과로 나의 가치를 만드는 행위이다.


 몇 달 전쯤인가 Tistory의 블로그를 통해 한창 Personal Branding이라는 문구에 대해 많은 글을 썼었다. 요즘은 상품도 그것을 판매하는 회사의 가치를 담아야 잘 팔린다던데, 사람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표현하고 나타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소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내가 사고 입고 들고 다니는 것들이 나를 설명한다. 물론 사람을 설명하는 데 있어 외적인 부분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그게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나의 첫인상이기도 하고 지속적으로 어필되는 나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더불어 소비를 고민하고 행하는 과정에서 내가 추구하는 방향은 물론 나라는 사람 자체를 이해하게 되기도 하고 가치관도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에게 소비는 그렇게 어려운 것이다. 지폐라 불리는 종이 몇 장의 소유권을 넘기고 은행 어플 속의 숫자가 작아지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나를 이해하고 나를 만드는 게 몇 배고 더 어렵다. 소비한 물건에만 가치를 두지 말고 소비라는 행위 자체에 가치가 있다고 느낀다.


예전에는 가성비만을 생각하며 물건 구매를 했다면

지금은 상품이 갖는 가치와 의미를 잘 알아보고

가치가 나를 설명해도 괜찮은지를 고민하고

나에게 잘 맞는지를 까다롭게 따져가며 구매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멋진 형 클래씨 [출처 - Youtube 클래씨 채널]

[클래씨 형 영상 보러 가기]






돌고 돌아 나는 미니멀리스트다.

정말 필요한 기능을 하는 것을

따지고 따져

나와 가장 잘 맞는 것으로

나를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으로

내가 가장 잘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최소한의 구매를 하는 나는 미니멀리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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