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있을 웃을 날을 위하여
"할머니가 치매래...."
"..."
덜컹거리는 지하철 안에서 수화기 너머 울먹거리는 엄마의 목소리는 선명하게 들렸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21년 가을 코로나가 시작되고 학교 수업들이 모두 비대면으로 전환되어 더 이상 학교 근처에 머물 이유가 없었다. 4학년 막학기도 했고 이제 전주를 떠날 때가 된 것 같았다.
취업을 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갔고 운이 좋게 할머니집에 머물기 시작했다.
22살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친구분이랑 살고 계신 할머니는 유독 외로움을 많이 타는 편이셨다.
같이 생활하던 할머니 친구분이 떠날 때쯤 내가 왔으니 얼마나 좋았으려나
그러나 할머니와의 생활은 편하지만은 않았다.
모든 것이 달랐다.
사사건건 내가 하는 것에 트집을 잡고, 잔소리를 하고 성질을 내셨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전화를 받을 때까지 해대었고,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새벽 6시에 밥을 먹으라고 깨우기 일쑤였다.
방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으면 수시로 들락날락거리면서 방에 있는지 확인하며 귀찮게 굴었다.
참다 참다 터져버려 할머니와 소리 지르며 싸우기도 하였고, 서로 상처가 되는 말을 서슴없이 해대기도 했다.
그렇게 6년을 지냈다.
애증이라는 단어를 형상화할 수 있다면 할머니와 나의 관계가 아닐까?
정크푸드라곤 먹어본 적도 없는 할머니는 햄버거를 포장해 오면 절반만 먹고 웃으며 난 감자튀김이 맛있다고 깔깔거렸다.
청소기는 돌릴 줄도 몰라서 매번 빗과 쓰레받기로 바닥을 청소했다. 그 모습을 보고 청소기로 할 테니깐 들어가 쉬라는 말을 하면 소파에 앉아 내가 청소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뭘 그리 뚫어지게 쳐다보냐고 묻자 "좋아서 그런다!"라고 퉁명스럽게 소리 지르는 모습이 재밌었다.
할아버지가 쓰던 지팡이를 쓰기 싫어 내가 아끼는 우산을 주니 두 손 꼭 붙잡고 지팡이처럼 쓰는 모습이 짠하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화나기도 이해가 안 되기도 짜증 나기도 했던 장면들이 서로 손을 잡고 웃으면서 걸었던 영상 속 군데군데 숨어있었다.
나이 90이 넘어도 걷는 게 아무렇지 않았고, 밥도 잘 드셨으며, 나에게 잔소리까지 하는 모습을 보고 100살까지 건강하게 살 것 같다는 약간의 안도감이 있었다.
그런 할머니가 알고 보니 치매였다더라
생각해 보면 문뜩문뜩 의심될 만한 순간들이 있었다.
저녁을 같이 먹었음에도 밤 11시에 갑자기 부엌에 나와 물에 밥을 말아먹었고,
갑자기 집 비밀번호가 생각이 나질 않는다며 나에게 전화를 했었다.
또, 잘만 누르던 핸드폰 단축키를 자꾸만 물으면서 어떻게 해야 하냐고 발을 동동 굴렸다.
왜 몰랐을까
나이가 들고 노인이 되면 자연스럽게 건망증이 심해지고 깜빡하고 잊어버린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대수롭지 않게 우리 할머니뿐만 아니라 다른 노인분들도 다 그러겠지라고 넘겨짚었다.
치매가 온 시점은 4~5년 전쯤부터란다. 그리고 독립을 한 지금 환경이 달라져 할머니의 증세가 더 심해졌던 것이다.
울면 안 된다.
울면서 통화하고 있는 엄마 앞에서 울면 안 된다. 나보다 더 마음이 아파할 딸이니깐
괜찮다고, 다 잘 될 거라고 다독이면서 전화를 끊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참고 있던 울먹임이 터져버렸다.
모든 게 내 탓 같았다.
내가 할머니와 같이 살면서 소리를 지른 것 때문에 그런 걸까?
할머니가 나를 신경 써서 스트레스를 받아 그래서 치매가 온 것일까?
만약 내가 할머니와 같이 살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지 않았을까?
왜 항상 좋은 일만 일어나는 건 아닌지 괜히 도로 위에 쌓여있는 눈을 밟으며 화풀이를 해댔다.
불쌍했다.
나도 할머니도 너무 가여웠다. 평생을 광장시장에서 힘들게 장사했던 할머니는 세상물정 모르고 살았었다.
비싼 음식 하나 먹을 줄도 모르고 좋은 옷 한 벌 사 입는 것도 몰랐다. 가끔가다 하나씩 사주면 늙은이는 싼 게 어울린다고 돈 낭비하지 말라고 성질을 내시면서 거절하기 일쑤였다.
그런 할머니는 날 위해 소고기는 꼬박꼬박 사 오셨고 동네 옷집에 가 뭔지도 모르는 비싼 니트는 사서 오곤 했었다.
할머니는 이럴 줄 알았던 것일까?
별빛이 그을린 새벽하늘처럼 눈이 어여뻤던 할머니였는데 치매가 심해지면 나조차 못 알아볼거리 생각하니 울컥해졌다.
언젠가 그 시간이 다가오겠지
돌아보지 말자
앞으로 있을 날들만 생각하며 웃으면서 마주하기로 다짐했다.
행복했으면 좋겠다
할머니도 나도
언젠가 헤어질 것이라는 걸 알지만 지금은 웃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