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어난다는 것 #6

하루를 맞이하는 태도

by JipDolE

퇴근 후 운동, 저녁, 샤워. 그리고 침대에 기대 머리를 말리며 잠시 눈을 감고 머릿속을 비우는 것.

이게 내 하루를 대하는 루틴이었다.

우린 모두 하루를 대하는 데 있어 본인만의 루틴이 존재한다.


누구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스트레칭을 하고, 누구는 정해진 시간에 산책을 하며, 누구는 친구와 통화를 하며 하루를 정리한다.

나는 루틴에 집착했다.

약속은 반드시 일주일 전에 잡아야 했고, 번개는 절대로 가지 않았으며, 집에 있어도 시간을 쪼개 정해진 루틴대로 움직였다.

이렇게 사는 것이 건강한 삶이며 멋지게 사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과거 만났던 연인과 매주 토요일마다 만났었다. 그게 우리의 규칙이었다.

어느 평일날 퇴근길에 전화가 와 오늘 보자는 말을 하곤 했었다.


"갑자기? 토요일에 보는 거 아니었어?"

"왜? 꼭 토요일에 봐야 하는 거야?"

"아니... 그냥 오늘은 갑작스럽잖아"


괜스레 오늘 뭘 할지 생각해 둔 것들이 있었는데 데이트를 하러 나가면 못할 거라고 생각하니 불편했었다.

거절을 했고 그날 러닝을 하면서 괜한 찝찝함이 들었었다.


'그냥 만나러 갈걸 그랬나? 뭐 별거하지도 않는데 뭐가 그렇게 중요했길래....'


어느 순간부터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만 해서 하는 것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는 걸 그때는 몰랐었다.


회사에서 늦게 퇴근하는 날이면 루틴을 지킬 수 없었다. 그럼 그날 하루는 '망가진 날'이 되어버렸다.

이미 루틴이 깨졌다는 생각 때문에 감정에 타격을 입었고, 일상 전체가 영향을 받았다.

다시 루틴을 회복시켜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고, 조금의 여유도 허락하지 않는 이상한 하루로 변질됐다.

행복해지려고 정해둔 루틴이 어느새 나를 갉아먹는 가시가 되어버린 것이다.

결국 나는 나만 중요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난 그런 사람이 아닌데, 그냥 루틴을 지키려는 거였을 뿐인데'라고 애써 위로해 봤지만, 잠시 멈추고 되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일부러 삐뚤어진 하루를 보내려고 애썼다.


저녁을 같이 먹자고 전화해 뜬금없이 식사를 같이 했고, 밤늦게까지 손을 잡고 공원을 걸었다.


처음엔 쉽지 않았다. 마치 숙제를 해야 하는데 핑계를 대며 피하는 사람 같았다.

괜히 나태해진 것 같았고, 어딘가 모르게 무엇인가 잃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익숙해지고 하나씩 벗어나자, 마음의 껍질이 벗겨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단단하게 감싸고 있던 무언가가 녹아들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야근을 하면서 일 외적으로 루틴에 대한 스트레스가 줄었고, 친구들의 갑작스러운 만남 제안에 고민하지 않고 가겠다고 답장할 수 있게 되었다.

일부로 퇴근길에 걸어서 집에 갔으며, 집에 일찍 도착하더라도 밥만 먹고 거실에 누워 천장을 멍하니 보기도 했다.

여유를 받아들이고 사소한 변수에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자세를 배우게 된 것이다.


365일 모든 하루가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이제는 안다.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했던 말 중에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 대로"라는 문장이 있다.

나는 처음에 전자에 의미가 집중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야 인생 전체를 맞이할 수 있는 것이라고. 그런데 평론가의 말은 후자에 무게가 실려 있다고 한다.

하루라는 작은 시간은 인간의 의지로 통제할 수 있지만, 얼마든지 외부 요인에 따라 쉽게 표류하거나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갈 수 있다.


오늘내일 마음처럼 되는 일이 없었다 한들, 이 또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인생이라는 긴 시간 속에서 오늘이라는 하루는 그냥 수많은 하루 중 하나일 뿐이다.

오늘 하루 나태한 시간을 보낸다 한들 뭐 어떤가. 앞으로 있을 수많은 하루를 위해 잠시 쉬었다 가는 것뿐인데.


집착하지 말자. 당신의 하루가 엉망이었다 한들, 내일도 엉망일 거라는 생각은 삶의 시간 속에서 증명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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