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아진 이파리, 커버린 나 #7

볕이 그리운 나의 추억 이야기

by JipDolE

마로니에 길이라고 아려나?


'광양' 빛과 볕이 항상 마주하는 작은 도시.

빨간 벽돌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으며 바다와 산이 함께 공존하는 금호동은 4계절의 색이 뚜렷한 작은 동네이다.


초등학생 때는 학교가 끝나고 가끔 친구들끼리 위험한 산길로 하교를 했었다.

무성한 나무들로 둘러싸이고 사람들로 인해 만들어진 길이 아닌 곳들을 탐험하면서 기다란 나뭇가지를 들고 피터팬이 되었다.

운이 좋은 날에는 고인 빗물을 마시는 고라니를 보기도 했고, 청설모와 딱따구리는 이런 우리가 익숙한 듯이 눈길만 주고 신경 쓰지도 않았다.

선생님께 걸려서 두 번 다시 위험한 길로 가지 말라고 혼나기도 하였지만 뭐가 그렇게 재밌었는지 몇 번 더 마로니에길을 벗어났었다.


무더운 더위가 찾아오는 여름에는 마로니에 이파리가 가장 큰 때이다.

거대한 마로니에 나무들이 만들어낸 부채와 같은 이파리를 결을 따라 뜯어내면 마치 생선을 다 발라먹고 남은 모양이 되는데 고이 학교에 들고 가 교과서 사이에 껴놓기도 했었다.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면 마로니에 나무가 우산이 되어주었다.

유독 비가 오면 마로니에 냄새가 짙어졌는데 나무 아래서 빗물에 젖은 냄새를 맡고 친구들과 왁자지껄 떠들고 있으면 어느덧 비가 그치고 구름사이로 비치는 볕이 작은 꼬마들을 반겨주고 있었다.


시간을 돌아보면 항상 같이 오는 감정은 아련함이다.

교실에 앉아 수업을 듣는 와중에 매미소리가 왜 그렇게 좋았는지 창밖을 바라보며 멍 때리는 시간이 너무 좋았고, 저녁을 먹고 좁은 공간에 따닥따닥 붙어 야자를 했던 기억은 미화가 되어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가끔 고등학교 친구들은 만나면 잊고 있었던 친구들의 소식을 듣는 게 너무 재밌다.

잠시나마 그때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간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잠시뿐이다.


어느덧 30대가 된 우리는 더 이상 천진난만하게 놀기에는 순수함이 그만큼 무뎌졌다.

고등학교 시절 재밌었던 이야기를 해도 어느덧 자연스럽게 결혼, 집, 직장 등 사회에 찌든 사람이 할 법한 이야기로 화제가 옮겨져 있다.

다 비슷했다. 내 시간과 감정을 억지로 소비하면서 까지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지도 않았고,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저 오늘 하루 각자 삶에 큰 이슈가 없는 것에 대해서 감사함을 가지면서 그렇게 살고 있었다.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사람은 오죽할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만큼 서로가 필요하지 않게 된 30살의 나는 왜 이렇게 된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내일 출근을 걱정하며 잠에 들게 된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나는 느리게 사는 법을 생각한다. 20대가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갔고, 앞으로 있을 30대는 더 빠르고 지나갈 것 같지만 그 속에서 난 어떻게 서든 느리게 사는 법을 생각할 것이다.

이불 빨래를 하면서 포근함을 느끼고 바닥 청소를 하면서 복잡했던 생각을 비워내는 연습을 할 것이다. 또한, 아무 목적 없이 밖으로 나가 땀이 날 정도로 뛰어보기도 하고 허름한 음식점에 들어가 끼니를 때우기도 할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나에게 성취감과 행복함을 느끼기 때문에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돌아가고 싶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물론이다.

어렸을 적 천진난만하게 뛰어다니면서 마로니에 이파리를 뜯어댔던 그 감정을 느껴보고 싶다.


가끔 광양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매일 걷던 등굣길을 걷는다.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는 마로니에 나무 아래를 지나며 고개를 든다.

크게만 느껴졌던 마로니에 이파리가 이렇게 작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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