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 비용 #8

Trade-Off, 삶이란 작은 거래의 연속

by JipDolE

밤 12시 반 컴퓨터 앞에 앉아 영어로 덕지덕지 이루어진 코딩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익숙하기만 하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한 지 4년이 다돼 가고 있지만 아직도 모르는 것들이 대부분이고 내 역량은 한참 멀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지금 잠에 들지 않으면 내일 아침 알람 소리가 너무 힘들게 느껴질지 잘 알고 있다.

몽롱한 상태로 침대를 벗어나고 하품을 하며 지하철을 탈 것도 안다.

그런데도 뭘 그렇게 놓고 싶지 않은지 괜한 키보드만 두들기다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잠에 든다.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면 한 번쯤은 듣게 되는 단어가 있다.


'trade off' : 어떤 선택에 의해서 이득을 취하는 부분이 있다면 반대로 손해를 보는 구조라는 뜻


처음엔 그저 기술적인 용어라고만 생각했다. 메모리를 아끼면 속도가 느려지고, 속도를 올리면 메모리를 잡아먹는다. 그런 종류의 이야기. 그런데 이 단어를 곱씹을수록, 이상하게도 코드 바깥의 세계에서 더 자주 마주치게 된다.


우린 살아가는 데 있어 수많은 선택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한쪽을 선택하게 되면 항상 그에 따른 후회도 딸려온다. 이상한 것 같다. 행복해지기 위해 더 나은 선택을 했음에도 왜 후회라는 감정은 반드시 오는 걸까??


중식을 좋아했다.

매운 걸 먹지도 못하지만 짬뽕 국물을 한 숟갈 떠먹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탕수육 하나를 베어 먹고, 짜장면에 올라가 있는 완두콩을 좋아했던 사소한 취향까지. 중식당에 들어갈 때 약간의 설렘이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식당을 나오고서부터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속이 더부룩해서 배를 쓰다듬고, 식곤증이 심해 업무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기름진 요리들이 주는 행복의 뒷면에는 항상 불편함이 있었다.

지금은 누군가 중식을 먹자 하면 행복함 보단 먹고 난 뒤의 불편함에 대한 걱정부터 든다.

좋아하는 것이 하나 줄었다고 생각하면 서운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좋아하는 것의 무게를 알게 된 것이 아니었을까


사람을 좋아했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같이 떠들고 밥을 먹고 산책하고 하는 시간들이 너무 좋았다.

내 편이 생긴 것 같았고 나 또한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사람이 된 것 같아서 뿌듯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내가 감당할 수 없음에도 애써 모른 척하고 버텨내려고 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침대에 누워 쉬고 싶었음에도 누군가의 감정을 통화로 받아줘야 했고, 하루를 집에서 조용하게 마무리하고 싶었지만 놀자는 전화에 애써 좋은 척하고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왁자지껄 웃고 떠들고 놀고 들어오면 어딘가 모르게 공허하고 지쳐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나는 사실 사람을 이렇게까지 좋아하지는 않았는데 좋아하는 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 시간, 감정을 쏟아부으면서 까지 이게 과연 내게 어떤 의미를 줄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그렇게 나를 위한 시간을 점차 가지기 시작했다.

혼자가 되니 외로웠다. 하지만 그 외로움 속에서 비로소 나를 위한 숨을 쉴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다정한 사람인 줄 알았다.

나라는 사람은 누군가에게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많았고, 내 걱정을 해주는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내 주변에 많은 이유는 내가 그만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좋은 사람이 내 주변에 많았던 이유는 내가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분들이 좋은 사람이었던 것이었다.

어리광 부리고 징징거리는 모습들을 진심으로 헤아려주고, 사고 치고 어쩔 줄 몰라하는 내 모습을 보고 괜찮다고 다독여주고, 철없고 해맑은 모습을 보여주면 마찬가지로 미소로 답하면서 좋은 말씀만 해주셨다.

돌이켜 보면 이런 나에게 지금보다 더 좋은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대해주셨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분들이 내게 준 다정함에는 비용이 있었을 것이다. 나를 위해 써야 했던 에너지, 참아야 했던 순간들, 바빠서 하지 못했을 자신만의 시간.

나는 그 비용들을 모른 채 받기만 했다.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다정함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처음 알게 되었다.


이 모든 것들이 어쩌면 우리들에게 균형의 깨달음을 주기 위한 것들이 아닌가 싶다.

정말로 네가 좋아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고. 작은 거래들로 인한 손해들을 감수하면서 살아가고 싶은 게 무엇인지? 모든 선택들에 대해서 후회는 딸려오지만, 그 후회를 감안하면서까지 너에게 가치 있는 선택은 무엇인지 한번 더 생각해 보라고

결국 그 선택이 현재의 너를 만들어주고 소중한 것들을 하나씩 만들어 주기 때문에


손해라고 생각하지 말자

우리가 선택에 의해 뒤따라오는 모든 것들은 손해가 아닌 거래 비용일 뿐이다.


토요일 새벽,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이 글의 마지막 문장을 쓰고 있다.

소중한 주말의 시간을 몇 명이나 볼지 모르는 글에 쏟아붓고 있는 풋내기 청년.

친구들은 어딘가에서 맛있는 걸 먹고 있을 테고, 글을 마무리하고 와주길 바라는 침대는 포근할 것 같다.


이 시간들이 모이고 모여 책 한 권을 집필할 수 있는 작가로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니 지금 이 순간도 손해가 아니다.

이건 내가 선택한 거래일뿐


새벽 공기는 계절과 관계없이 항상 차다.

나쁘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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