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곳일수록 외로움은 더 선명하다
24년 6월 크로아티아로 떠났다.
하늘에서 약 14시간 정도를 있어야 했던 여정은 결코 만만치는 않았다. 도중에 키르기스스탄에 잠시 내려 비행기를 갈아탔으며 무릎이 좋지 않았던 난 통증이 느껴져 신경이 쓰였다.
그렇게 크로아티아의 수도인 자그레브에 도착하였고 10일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사실 크로아티아로 떠난 이유는 단 하나였다.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영화 아바타의 배경이 되기도 했던 이곳은 에메랄드 빛깔의 호수와 무성한 나무들로 이루어져 있고 잔잔한 바람이 트래킹을 하는 사람들의 땀을 식히도록 도와주는 곳이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이곳을 필름카메라를 들고 트래킹을 하고 싶었고, 한국에서 미리 구한 동행분과 같이 둘레길을 걷기 시작했다. 해외에서 일을 하고 있는 동행분은 휴가를 내고 미국에서 오신 분이었다.
나보다 1살이 많았고 영어를 잘하셨으며 사람들끼리 친해지는 데 있어 거리낌이 없어 보이셨다.
적당히 선을 거리를 두고 약간의 불편함이 더 낫겠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동행분은 순간순간 당황스러운 질문들과 행동들을 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들을 많이 보여주었다.
아무튼 동행분과 트래킹을 시작하며 약 3~4시간 정도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을 걷기 시작했다.
가장 긴 코스를 선택했고 시작점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입구부터 시작되는 여정의 시작은 너무나도 설렜다. 나뭇잎과 가지들이 햇빛을 가려주고 있었고 그 사이로 내려쬐는 빛이 마치 우리를 반겨주는 것 같았고 한걸음 한걸음 걸을 때마다 천국에 와있는 것 같았다.
만약 내가 추후에 생을 마감하고 눈을 떴을 때 이런 곳이라면 죽음이라는 것이 꽤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점심때가 되어 허기가 느껴진 우리는 미리 챙겨 온 샌드위치를 대충 길에 걸터앉아 먹었다.
동행분은 나에 대해 궁금한 게 많으셨는지 질문들을 쏟아 붓기 시작했다.
여자친구는 있는지? 왜 연애를 안 하는지? 외국인 분을 만나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행을 왜 좋아하는지 등 입안에 가득 채운 샌드위치를 씹을 시간 없이 대답하기에 바빴다.
그때 당시에는 말씀이 정말 많으셔서 살짝 기가 빨렸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렇게 대해주셨기 때문에 나름 경계심이 옅어져 편하게 즐길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손바닥만 한 샌드위치를 다 먹고 다시 걷기 시작했고 주변을 둘러보며 여유를 즐겼다.
여전히 파란 하늘은 청량했고, 에메랄드 빛의 호수를 보고 있으면 넛이 나간 기분이 들었다.
한참을 걸었는지 발바닥과 어깨가 뻐근해지기 시작했고 주변 그늘로 들어가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이 시간만큼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각자 생각에 잠겨있었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왜 여행을 좋아할까 라는 궁금증이 스스로에게 생겼다. 사실 내가 생각하는 여행이란 별거 없다. 그냥 노는 거다.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것이 좋다고 해외여행을 가면 많은 것들을 배운다고 하던데 솔직히 난 그냥 놀러 가는 것일 뿐이다. 자연을 사랑하고 여유로움을 사랑하는 난 복잡하고 삭막한 서울을 떠나 머나먼 낯선 곳으로 놀러 가는 것이 너무 좋기 때문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색다른 건물들을 보고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서 반복적이고 지루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이 얼마나 해방감을 가져오는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홀로 여행하는 것을 선호했다. 내가 하고픈대로 다 할 수 있고, 갈등도 없으며 필요하면 동행을 구하면 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홀로 여행을 한다는 것이 멋지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것도 반복되다 보니 약간의 힘듦이 따라오는 것 같다.
여행을 가면 계획하지 않았던 여러 가지 변수들이 함께 오게 된다. 그리고 난 이런 변수들을 만나게 되면 쉽게 멘털이 흔들리는 편이다. 어떻게 대처해야 될지 모르겠고, 허둥지둥거리기 일쑤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어찌어찌 나름 해결은 했지만 이에 대해 소모되는 감정이 너무나도 컸다. 그리고 이제는 나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의지해가며 해결할 수 있는 분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시 플리트비체 공원으로 돌아와 잠시 고민 아닌 고민에서 빠져나와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아이러니하게도 자연보단 나와 같이 트래킹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젊은 커플과 부모님 뻘로 보이는 중년부부 그리고 애기들까지
사실 생각해 보면 이 이쁜 곳에 놀러 온 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 더 의미 있는 것 아닐까?
크로아티아에 돌아온 후 같이 동행을 하던 분과는 연락을 더 이상 하지는 않는다.
여행 중에는 그 사람이 만들어놓은 흐름에 끌려다닌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막상 헤어지고 나니 그 에너지가 오히려 그리워지기도 했다. 여행이란 원래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불편했던 것들이 나중엔 제일 기억에 남는다.
앞으로 홀로 여행을 떠나는 날이 별로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더 이상 20대처럼 생기 있지는 않고, 무엇보다 공허한 기분이 어느 순간 크게 자리 잡고 있던 탓에.
올해 5월, 2주간 프랑스로 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아마 마지막으로 혼자 떠나는 여행이 될 것 같다. 그게 조금 쓸쓸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홀가분하기도 하다. 프랑스의 향기는 어떨지, 그냥 그 느낌 그대로 받아들이며 걸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