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하고 삭막하지만, 그래서 더 빛나는 도시
'복잡하고 삭막하지만 생기와 화려함이 공존하는 도시'
내가 생각하는 서울이다.
해가 뜨기 전 맞춰놓은 알람소리로 하루를 시작한다. 침대를 벗어나고 싶지 않은 마음은 대한민국 모든 직장인들의 마음일 테니 유난떨지 말자 싶으면서도, 몸은 그대로 이불 속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요란스럽게 몸을 일으켜 불을 켜고 냉동실에 얼려놓은 식빵을 꺼낸다.
버터, 계란, 마늘햄, 케첩, 토마토. 토스트 한 끼를 위해 꺼낸 재료들을 후라이팬에 하나씩 올리기 시작한다. 마늘햄을 얇게 써는 건 아직도 미숙하다. 엄마는 어떻게 균일하게 잘 잘랐는지, 순간의 존경심이 드는 찰나에 못난 모양으로 마늘햄을 잘라버렸다. 아,,, 이래서 칼질할 때는 다른 생각하면 안 되는데... 어찌어찌 못난 모양으로 만든 토스트를 먹고 설거지를 한다. 설거지는 왜 이렇게 귀찮은지. 그래도 먹고 나서 바로 안 하면 괜히 게으른 사람이 된 것 같아서, 꾸역꾸역 수세미에 세제를 짜 박박 닦는다.
집 밖을 나가고 지하철을 타는 순간 서울의 하루가 시작된다.
난 지방 사람이다. 서울로 올라오고 가장 처음으로 놀랐던 것은 바로 지하철이다.
새벽같이 일어나 준비하고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에, 나만큼 일찍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웬걸. 지하철 칸에 사람이 못 들어갈 정도로 꽉꽉 차있더라.
와,,, 지금까지 내가 살고 있던 세상과 너무나 다르구나 싶었던 것이다.
보이지도 않는 틈을 비집고 들어가면, 찌부가 된 것처럼 사람들 사이에 납작하게 눌린다. 가끔씩은 사람들끼리 싸우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왜 밀치느니 팔꿈치가 닿지 않냐니 등등... 아침부터 싸울 힘은 어디서 나는지 한편으로는 궁금하기도 하다.
이게 서울인가 싶었다.
뭐가 그리 여유가 없는지 사람들은 극도로 예민한 상태이고, 조금의 너그러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점심을 먹으면서 하는 이야기는 집값이 너무 올라 대출을 얼마나 받아야 하느니 마느니, 전세 말고 매매를 해야 된다느니 등 긍정적이지 못한 이야기들이 들리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서울을 사랑하는 것 같다.
누가 그러던데, 사랑이란 100퍼센트 애정만 있는 것이 아니라 50퍼센트의 미움도 품어줄 수 있는 것이 사랑이라고.
너무나도 정신없고 예민함의 끝인 서울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고요한 서울의 장면들이 너무 이쁘다. 탁 트인 광장 너머로 하늘과 산이 맞닿은 광화문에서부터, 아이스크림 하나 들고 안국역 방향으로 걷다 보면 이른 아침 화가 잔뜩 나 있는 사람만 있을 것 같았던 분위기는 찾아볼 수도 없고, 평온한 표정을 가진 사람들만 있더라.
해방촌에 올라가 화덕 피자를 먹고 해가 지는 시간쯤에 창밖을 바라보면, 이 넓은 서울 한복판에 나 홀로 남아있는 듯한 기분이 찾아오기도 한다. 서울에서 혼자라는 기분은 외롭다기보다는, 이상하게 자유로웠다.
토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한강으로 가 뛰어보자. 윤슬이 일렁이는 강을 바라보다 다시 앞을 향해 뛰기 시작하면, 어느샌가 나를 괴롭히고 짜증나게 하던 생각들은 저 멀리 날아가고 없다.
그러고 보면 청계천을 걷는 사람들의 표정이 다 비슷하다. 이어폰을 끼고 멍하니 물을 바라보거나, 벤치에 앉아 아무것도 안 하거나. 아침에 지하철에서 그렇게 예민하게 굴던 사람들도, 결국 각자의 10분짜리 숨구멍을 찾아 여기 온 거겠지. 서울 사람들이 여유가 없는 게 아니라, 여유를 간절히 원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는 이런 건 서울이 아닌 곳에서도 충분히 경험해볼 수 있는 것들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오히려 서울이기에 더 가치가 있는 것 같다. 삭막함과 복잡함이 심할수록 약간의 여유가 더 귀한 게 아니겠는가.
오늘의 나는 내일이 되면 다시 일을 하러 을지로를 향해 출근을 하게 된다. 50분 동안 지하철에 묶여 있어야 하며, 8시간을 키보드를 두들기며 일을 하겠지만, 10분의 청계천 산책을 위해, 주말의 한강의 청량함을 위해 하루를 버텨보려고 한다.
너무나도 다양하고 별의별 일들이 일어나는 이곳은 '서울'이기 때문에 뭐가 이렇게 매력적인지 모르겠다. 아마 내일도, 모레도 이 도시에 치이면서 살아가겠지. 그래도 괜찮다. 서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