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살 유럽, 낭비와 낭만 사이 #3

일그러진 완벽 속에서

by JipDolE

19년 7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은 여름날

2년 동안 악착같이 모은 돈으로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났었다.


냉정과 열정사이에 나왔던 두오모 성당이 보고 싶었고

노을빛이 번지는 세비야 광장에 서있고 싶었으며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이 되어보고 싶었다


낭비가 있어야 낭만이라 그러던데 23살의 나에겐 그냥 순간순간이 낭만 그 자체였다.

돈을 아끼기 위해 특가로 나온 항공을 예약하고, 4인 호스텔만 예약했다.

또한, 너무 사랑하는 젤라또는 하루에 1번만 먹기로 마음을 먹었으며 여권만큼이나 소중했던 국제학생증을 발급받아 그렇게 구름 사이를 지나갔다.


모든 것이 일그러졌다. 그랬기에 완벽했다.


비행기 앞자리에서 씨끄럽게 소리 지르고 떠드는 아이를 방치한 3 가족

아침 5시에 알람을 맞춰두고 끄지도 않는 인도인,

막상 젤라또를 먹어보니 맛에 반해 첫날부터 3개씩 먹고 배탈 난 하루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 이것마저 왜 이렇게 설렜는지

앞으로 어떤 경험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소년이 되어 모든 걸 받아들이자


커피를 좋아하지도 않은 내가 에스프레소를 시켜 홀짝거리고,

술 한잔 마시지도 못했던 내가 낯선 땅에서 와인 한잔은 꼭 마셨으며,

낯을 가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 내가 어느새 한 식탁에서 같이 대화를 나누고 있더라

마치 꼭 그랬어야만 하는 사람인 것 마냥


로마를 떠나기 하루 전, 우연히 만난 작가님이 있었다.

흙으로 삶을 빚으며 살아가는 분이었다.

"많이 아팠지만, 지금은 하루하루가 감사해요."

그렇게 말하는 작가님의 눈이 유독 선명했다.

순수한 사람은 그만큼 상처도 깊게 받아왔을 것 같았다.


지금은 가끔 개인전에 몰래 찾아가 작품 앞에 선다.

작품을 잘 알진 못하지만, 그 시간이 좋다.

어쩌면 그날을 상기시키려 가는 것일수도 있겠다.


25년 12월 지금 이 글을 적고 있는 난 아직도 23살의 나를 그리워한다.

절대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리워한다.


그때의 순수함이, 열정이, 웃음이, 따뜻함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주었기 덕분에 그리워할 수 있는 것이다.


여행이란 별거 없다.

낯선 땅에서 어쩌면 평생 마주치지 못할 사람들을 만나며 맛있는 식사와 따뜻한 대화를 나누는 것

그리고 서로의 앞날을 응원해 주며 그렇게 헤어짐을 받아들이는 것

돈, 명예, 사회적 위치가 아무 소용이 없는 곳에 만났기 때문에 대화의 결이 더 따스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벌써 여름이 그리워진다.

아니 어쩌면 초록빛 아래 산책하고 있는 내가 그리운 것 일수도


KakaoTalk_Photo_2025-12-28-17-40-04.jpeg 로마, 일렁이는 어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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