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공부에 뜻이 없었다.
예전부터 뭔가 다른 걸 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은 있었다.
그게 공부일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그녀가 공부를 하겠다고 했을 때의 눈빛은
너무나 벅차올랐다.
세상은 그녀에게 빛을 비추지 않았지만
그녀는 스스로 빛을 냈다
차마 같이 안 하겠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공부는, 아주 힘들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책상 앞에 앉는 일은 고역이었다.
공사장의 먼지와 소음이 아직 귀에 맴돌았고,
손끝에는 시멘트와 철의 감촉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온몸은 피로에 젖어 있었고,
등을 펴고 책을 펼치면
눈꺼풀은 금세 무거워졌다.
글자는 자꾸 흔들려
한 줄을 읽기도 힘들었다.
처음 서점에 들어갔을 때가 생각난다.
모든 게 어색했다.
서점에 들어서는 것도 어색했고,
일을 해서 번 돈을 책에 쓴다는 게 낯설었다.
솔직히 아깝기도 했다.
그 돈이면 며칠은 밥을 먹을 수 있는데.
서점이 불편한 점은 책이 너무 많은 것이다.
나는 책을 사러 온 것이지
책을 고르러 온 것이 아니다.
누가 어떤 책을 사야 하는지 알려주었으면 좋겠다는 기분이었다.
그녀에게도 물을 수가 없었다.
그녀 또한 서점은 낯선 공간이었다.
물론 나보다는 훨씬 자연스러웠다.
어떤 책을 사야 할지는 몰라도
어떤 종류의 책을 사야 할지는 아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목적이 분명했으니까.
그 모습이 어쩐지 어른스러워 보였다.
다시 시선을 돌려 진열대를 보았다.
역사책을 펼쳤다가 내려놓고,
라틴어 교본을 보다가도 느낌이 오지 않았다.
그러다 구석진 곳에 낡은 책 한 권에 멈췄다.
<한 노동자의 일기>
제목은 소박했고, 바랜 표지에는
무표정의 사내가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 눈빛이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그 책은 내 방에 들어섰고,
한동안 펼쳐지지 않았다.
.
그날은 일이 없었지만, 그녀는 바쁜 날이었다.
요한 또한 바빠서 혼자 있을 수밖에 없다
누워서 천장만 보다가
문득 샀던 책이 기억났다.
그녀를 생각하면 나 또한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그 책을 펼쳤다.
책을 펼치자
잉크 냄새가 퍼졌다.
글씨는 작고 빽빽했다.
첫 문장은 이러했다.
“그 공장에는 아직 한 번도 공장감독관이 나타난 적이 없다.”
이런 일은 이 세상 어디에나 있으니까.
그만큼 낯설지 않았고, 현실 같았다.
이 책의 내용은
공장에서 일하다 다친 한 노동자의 이야기였다
그는 독일 중부의 한 작은 공장에서 일하던 젊은 노동자였다.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로 하루가 시작되고,
기계가 멈출 때가 되어야 밤이 되었다.
공장은 낡았고,
안전장치란 게 존재하지 않았다.
쇳조각이 튀고, 톱날이 벌겋게 달아올라도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관리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여전히 고장 난 기계와 불안정한 발판,
방치된 전선이 그들의 곁에서 계속 숨 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곳에 굳이 일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시골에서 올라온 청년들이었다.
이 공장의 사장은 일부러 세상물정 모르는 이 청년들을 만나
좋은 말로 그들을 유혹하고
말도 안 되는 계약에 사인하게 만든다.
당연히 청년들 대부분은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도 많았으니
더 당하기 쉬웠다.
사고가 나면 개인의 부주의로 책임을 돌리고
빛을 지게 만들어 협박을 했다.
그러다가 크게 다쳐 더 이상 일할 수 없는 사람들은
업무방해의 명목으로 임금을 받지 못한 채
퇴직 처리가 된다.
그런 환경 속에서
주인공은 동생을 잃었다
관리되지 않은 낡고 오래된 기계가 말썽이 나서
동료의 손가락이 잘렸고, 회사는 당시 함께 있던
동생의 부주의를 문제 삼았다.
사장은 동료의 다친 손가락과
망가진 기계에 대한 배상을 하게 만들었다.
배상 금액은 평생일을 해도 갚을 수 없는
터무니없는 금액이었다.
결국 동생은 압박갑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주인공은 그런 동생의 불명예와 억울함을 바로 고쳐주고 싶었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이 사회를 조금이나마 바꿔보고자 했다
매일 책을 읽고, 법을 익혔다
자신을 도와줄 사람들을 찾았다
8년간 법적 투쟁 끝에
동생의 명예를 찾았고
안전 규정에 대한 법이 강화되었다.
.
나는 책장을 넘기며 계속 읽었다.
책을 덮는 순간,
창밖의 태양은 이미 붉게 물들어 있었다.
노을은 느리게 흘러,
낡은 유리창과 책 표지를 동시에 비추었다.
하루의 끝이 녹아내리듯,
붉은빛이 내 손가락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
세상은 잠시 멈춘 것 같았다.
이 순간을 잊을 수 없음을 확신했다.
순간 그녀의 눈이 떠올랐다.
강한 목적의식과 함께 빛나는 눈.
나 또한 하고 싶은 것이 생겼다
나처럼 학교를 다닐 수 없던 사람들
(비록 나는 내 발로 뛰쳐나오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
적어도 고생한 만큼은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게
조금이나마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생각이 들자 나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서둘러 옷을 입고 집을 나섰다
하고 싶은 것이 생겼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 말을 건네지 못한 채
나는 그녀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