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하라

by 지라르

그녀가 일하는 술집에 갔다.

하지만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레나는요?"


나는 카운터 안쪽에 있던 술집 사장에게 물었다.

술집 사장은 키가 작고 뚱뚱한 체형에,

항상 기름때 낀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이름은 브루노였다.


그는 나를 보더니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오늘 쉬는 날이야.

왜? 너 그 애만 보면 얼굴이 확 펴지더라.

혹시 마음 있는 거 아냐?"


나는 헛기침을 했다.


"그냥 물어본 거예요."


브루노는 여전히 장난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보다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근데 말인데... 이 얘긴 그냥 귀에만 담아 둬."


그는 주변을 흘깃 둘러본 뒤,

조용히 말을 이었다.


"며칠 전에 로트만이 왔었어."


그날의 일이 뚜렷하게 떠올랐다.

시끄럽게 굴던 그 남자,

그리고 그녀의 따귀,


당시엔 그저 못난 취객이라 생각했지만,

알아보니 당시 주변의 이상한 반응들이

퍼즐처럼 맞춰졌다.


그 남자의 이름은 로트만.


이 근방에서 웬만한 사람들은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 집안의 자식이었다.


시장 골목에서 가게를 여는 사람들도 눈치를 보고,

동네 순경들조차

그 일가에 얽히는 걸 꺼릴 정도였다.


로트만은 그의 아버지를 믿고

설쳤던 것이다.


그래서 어린놈이 시비를 걸어도,

웃으며 그의 비위를 맞춘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다.


그렇게 사람들은 길들여진 것이다.


그러니 나와 그녀가 당당히 나설 때

모두 그런 반응을 보였다고 생각했다.


"남자 두 명이랑 같이 와서

술은 안 마시고 레나 출근했냐고 묻더군.

내가 없다고 하니까,

짜증 내더니 혹시 어디 사는지 아냐고 묻는 거야."


브루노는 고개를 저었다.


"느낌이 좀... 싸했어. 모른다고 했지만.

그랬더니 갑자기 욕을 퍼붓고 나가더라고.

그놈들, 그냥 취한 게 아니었어.

뭔가 꿍꿍이가 있는 눈빛이었지.

내일 출근하면 한 동안 집에 있으라고 하려고"


마음이 서늘해졌다.

밖으로 나왔다.

바람이 매서웠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무언가 시작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발걸음을 재촉했다.


걷는 속도를 올렸고,

그다음엔 뛰었다.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이 뒤엉켰다.


'설마 저놈들이 레나를 찾아간 걸까?

무슨 짓이라도 하려고? 진짜로…?'


목덜미가 서늘했고,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레나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생각이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그러다, 그녀의 집 앞에 있는 모퉁이를 돌자

낯익은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였다.

나는 그 자리에 멈췄고,

안도의 숨을 삼켰다.


"레나!"


나는 소리쳤다.

그녀는 놀란 듯 돌아봤다.


"어? 여기서 뭐 해?"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려 애썼다.


"걷다가... 그냥. 잠깐 바람 좀 쐬려고."

"밤공기 차가운데."


그녀가 나를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근데 왜 얼굴이 그래? 무슨 일 있어?"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의심의 눈으로 보다가 웃었다


"그럼 됐어"


걱정과 동시에 화가 났지만,

그녀의 미소에 보니 그런 내가 바보 같았다.


.


마음이 편한 날이 없었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지만,

자꾸만 나쁜 예감이 들었다.


그녀가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로트만과 직접 마주해 해결해야 할까?

아니면 레나와 함께 이곳을 떠나야 할까?


하지만 도망치고 싶지 않다.

그러면 정면으로 부딪쳐야 한다.


도대체 뭐 때문에 이렇게 불행한 일을 겪는 것일까.


로트만. 그날 로트만에게 했던 말은

모두 옳은 말이었다.


그런데 그는 비뚤어졌다.


바른 소리에 상처받기 싫어서

더 날카로워진 것뿐일지도 모른다.


확실한 건 하나였다.

어쨌든, 로트만을 만나야 한다는 것.


싸움이라면 질 자신이 없었다.

로트만이 데리고 다니는 놈들이 어떤 수준이든 간에,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은 있었다.


그들을 제압해서 겁을 줄까?

문제는 겁을 준다고 해서

그가 진짜로 물러설까 하는 것이었다.


그는 뒷골목에서 자라난 놈이다.

무지하고 무모하며, 자존심 하나로 살아가는 놈이다.


힘 앞에 굴복한 척은 하겠지만,

마음속까지 꺾이진 않을 것이다.


언젠가는 더 큰 힘을 끌고 와서,

나와 내 주변을 철저히 파괴할지도 모른다.


사람의 감정은 예측할 수 없어서

힘으로 해결하지 못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말 내가 무릎을 꿇고 빌어야 하나?


그녀가 다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면,

그 자존심쯤은 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로트만 같은 부류는

굴복할수록 더 악해진다


악해도 될 힘을 얻었다고 생각할 테니까


대화로, 설득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그 순간, 어릴 적 성경학교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한 아이에게 겁을 주고 괴롭혔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싱클레어.


나는 그 아이에게 시기심을 느꼈고,

그래서 그를 파괴하려 했다.


시간이 지나서는 그 아이가 보잘것없다는 걸 알았고

그런 놈에게 시기심을 느낀 내가 부끄러웠다

나는 그의 정신까지 짓밟으려 했다.


선생들이 말린다면 겉으로는 얌전한 척하며,

몰래 다시 찾아가 괴롭혔을 거다.


그런 나를 멈추게 한 것은 싱클레이의 용기가 아니었다.

데미안. 그 덕분에 나는 그 어리석은 행동을 멈출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멈춘 이유는

단순히 남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비뚤어진 나를 되돌려 내가 더 이상 상처받지 않도록,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데미안은 그 길을 보여주었다.


내가 로트만에게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그렇게 해야 된다고 생각은 든다.


하지만... 방법을 모르겠다.


데마안이 나를 이해했던 것처럼

내가 그를 이해할 자신도 없다.


가장 큰 걸림돌은

나는 지금, 로트만에게 분노하고 있다.


솟지 않는 감정을 애써 솟아

그를 용서하고 싶지 않다.


들끓는 유황불 같은 이 마음이

결국 비극으로 이어졌다.


.


나는 요한의 도움을 받아 그의 거처를 알아내었다

정확히는 요한의 여자친구의 도움이었다.


“우리 가게에… 그놈이 빠진 여자가 있어.

이름은 셰리. 어리고 아주 예쁜 아이지.

로트만은 그 여자한테 완전히 미쳐 있었나 봐.

하지만 그놈은 선을 넘었어.

사랑한다는 둥 하면서. 실제 연인이 되어달라나?

우리 가게에 로맨스를 외치는 사람만큼 진상인 사람이 없어.

그래서 셰리는 거절했지.”


“거절?”


“그 집 사장님이 직접 말했다더라. 서로 소리 지르고 난리도 아니었대.

술병을 던지고, 탁자를 걷어차고, 셰리의 머리채를 잡고 나왔는데,

가게 사람들이 겨우 말렸다는 것이다.
그 이후로 그는 올 때마다 술만 마시면 여자들을 모욕하고 욕을 퍼부었대.

‘다들 결국 돈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야’라며

'그때 곧 거래 성사되면 이 가게를... 아니 이 골목을 모조리 사서

너희들을 내 발아래로 둘 거야. 건방진 x들'

고래고래 소리 질렀지"


"거래는 뭐죠?"


“그래 그 거래!

그놈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술술 얘기하고 다니더군.

무기 밀매 같은 일도 손대는 것 같아.
아버지 뒤를 잇겠다고 설치는 모양이지.”


그녀는 펜을 잡고 작은 종이에 무언가를 쓰고 내게 건넸다

그 거래라는 장소와 시간인 듯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는 어떻게 되었나요?”


“그날 이후로 가게에 안 나왔어.”


그녀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사라졌는지, 어딜 간 건지 아무도 몰라.”


.


종이에 적힌 글씨는 또렷했다.


쿠크스하펜 항구, 구 창고 지구 12번 부두, 밤 11시.


엘베 강이 북해와 만나는 그곳.


내가 잘 알던 동네 이름은 아니었지만,

차갑게 부는 바닷바람과 기름기 도는 부두의 냄새가 떠오르는 이름이었다.


나는 가부좌를 틀고 방에 앉아 눈을 감았다.


분노가 끓어올라 뜨거워진 몸을

가라앉기 위해서는 심호흡이 최고다.


크게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쉰다.


공기가 나를 정화하여 나갔다.


호흡은 규칙적이면서

성스러웠다.


그리고 창밖은 이미 어두웠다.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비치자 창유리에 내 얼굴이 겹쳐 보였다.

눈빛은 생기와 결심으로 빛났다.


나는 천천히 일어나 짧게 몸을 풀었다.


아까는 떨렸지만 지금은 떨리지 않는다.


분노라는 파도가 나를 덮쳤지만

그 파도에 올라탔다.


난 지금 완벽하다.

집밖으로 나왔다.


칼은 챙기지 않았다.

칼이 있으면 칼을 찔렀을 거다.


난 그를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를 바닥에 눕히고,

그가 다시는 사람을 짓밟지 못하도록 만들 것이다


바람이 바다 냄새를 몰고 왔다.
항구로 접근할수록 공기는 차갑고 습해졌고,

멀리서 헛간문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월광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밝았다.

마치 나의 무대인 듯


멀리서 로트만과

그를 따르는 두 명의 건장한 남성이 걸어가고 있는 걸 보았다.

나는 그곳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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