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코끝에 쿡 찔러오는 날카로운 냄새가 올라왔다.
쇠붙이 같기도 했고,
오래된 고기 같기도 했다.
피비린내는 아마 이것일 것이다.
어릴 적 흘렸던 피에서 나는 냄새보다
더 짙고, 역겹고, 악마 같은 냄새였다
숨을 쉬는 것조차 거북해졌다.
헛구역질에 손이 입으로 올라갔다.
나는 그 자리에 선 채,
눈앞에 펼쳐진 끔찍한 장면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로트만과 그의 일행 두 명 모두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손에는 여전히 칼이 들려 있었고,
바닥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두 사람 중 한 명이 메고 있던
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손끝이 덜덜 떨리는 걸
억지로 누르며 지퍼를 열었다.
안에는 반쯤 마른 물티슈,
오래된 담뱃갑, 열쇠 뭉치…
그리고 작은 수첩.
그 수첩을 들자
사진 한 장이 툭 떨어졌다.
사진 속에는 남자와
그의 아이로 보이는 꼬마가 함께 웃고 있었다.
이 둘은 눈이 닮았고,
아이는 아버지의 손을 꼭 쥐고 있었다.
‘젠장…’
숨을 들이켰다.
지금은 감상에 젖을 틈이 아니었다.
사진을 수첩 속에 다시 넣고,
가방 안을 더 뒤졌다.
다행히, 칼 하나가 더 있었다.
날은 짧았지만 충분했다.
나는 로트만이 떨어뜨렸던 칼을 주워
그의 손에 쥐어 주고 손가락을 말았다
그리고는 그의 몸을 틀어,
옆에 쓰러져 있는 남자 위로 엎드리듯 기울였다.
또 다른 남자의 손에는
가방에서 꺼낸 칼을 남겨두었다.
양쪽 손가락에 피가 묻도록 쥐여주고,
서로가 싸운 것처럼 팔과 어깨의 위치를 조정했다.
혈흔은 이미 사방에 튀어 있었고,
칼자국이 서로를 향한 방향이 어긋나 보였다.
상처의 깊이를 흘깃 보고,
피의 번짐을 손으로 문질러 가며 조작했다.
더 면밀하게 만들고 싶지만
오래 시간을 끌면 좋지 않을 것 같았다.
이 정도면… 누가 봐도 그들의 싸움이었다.
아니 누가 봐도 그들의 싸움이길 바랐다.
내가 아닌, 서로가 서로를 해친 흔적처럼.
숨을 내쉬며, 입술이 저절로 움직였다.
“됐다.”
입술이 바싹 말라붙었다.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이 연극 같은 현장이
내 손에서 나왔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주위를 살폈고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돌아섰다.
달리려는 순간,
사진 속 아이와 남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젠장!"
다시 돌아서 가방에
사진을 꺼내어 안주머니로 넣고 뛰었다.
골목을 빠져나오고,
속도를 줄이고 아무 일 없듯 걸었다.
심장이 요동쳤다.
주변에 누군가 없는지 힐끔 거리며 걸었다.
이상하게 보이지 않도록
똑바로 걸어야 된다는 강박에
한걸음 한걸음이 아찔했다.
차라리 걸음을 인식하지 않는다면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정신이 아늑해지지만,
잠깐 멈춰 서서 눈을 감고 크게 숨을 들이켰다.
한결 나았다.
평소 즐겨 부르던 노래를 입으로 흥얼거렸다.
어느 순간에는 노래 박자에 맞춰
깡충거리기까지 했다.
그렇게 걷다 보니,
도착할 수 없을 것 같던 집 앞에 도착했다.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한 번에 열쇠가 들어간 게 어쩐지 위안이 되었다.
세상이 도와 운을 일으켜
나를 감싸는 느낌이었다.
문을 열어다
옷을 벗고 따뜻한 물로 몸을 씻었다.
세상의 모든 죄가 녹아내리는 듯했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침대에 누워 다리를 뻗었다.
눈이 스르르 감겼다.
다음 날 아침,
시장 골목을 지나는 사람들 사이에
어수선한 웅성거림이 오갔다.
“셋 다 죽었다지?”
“칼에 찔렸대. 얼마나 피가 났으면
골목이 피바다가 됐다고 하더라고.”
“차라리 잘되었어. 지난달에도
우리 아들더러 공짜로 빵 가져오라고 협박했잖아.
그 꼴로 간 게 어디야.”
“그놈 때문에 내 아들이 괜히 일자리 잃었지.
싸가지 없이 굴고, 지들끼리 툭하면 손찌검하고.
언젠가는 피를 볼 줄 알았어.”
“야, 그놈 없으니까 공기부터 다르지 않냐?”
“맞아, 이 동네 하수구 냄새가 줄어든 것 같아.”
누구 하나 애도하지 않았다.
로트만의 이름이 언급될 때마다
누군가는 코웃음을 쳤고,
누군가는 말끝을 흐렸다.
“서로 싸운 거 아니겠어.
지들끼리 끝장 본 거지.”
“그놈들 사이 안 좋은 거야
누구나 알았잖아.
로트만이 수틀리면 부하들한테도
주먹부터 날렸다는 건 동네 애들도 다 알아.”
“싸움 날 줄 알았어요,
그 인간 평소 하는 짓 보면요.”
“부하들이라고 데리고 다녔지,
사실은 종처럼 부렸다고요.”
조사에 나선 경찰도 비슷한 의견을 냈다.
범인의 흔적이 없었다.
"패거리 안에서 싸움이 난 모양이지.
서로 찔러 죽은 거야."
"아니, 뭐... 놈들이 그렇게 죽은 게 이상해?
그쪽 인간들이 다 그렇지."
죽은 자를 두고 지나친 말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도 그를 두둔하진 않았다.
모두 그의 죽음에 기뻐한 듯했다.
아마 단 한 사람만 빼고
조사는 빠루게 마무리가 되었다.
세상은 고요했고,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움직였다.
사람들은 그의 죽음에 관심을 잃기 시작했고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나 또한 이전처럼, 일상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해는 뜨겁고, 일은 거칠고,
땀은 목덜미를 타고 흘렀다.
부딪히는 공구 소리와 욕설,
그리고 먼지가 가득한 공기.
여전히 나의 일은 쉽지 않다.
그럴 때마다 생각했다.
그녀를 만나면,
괜히 어깨를 으쓱이며 웃고 떠들고 싶다고,
그저,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들자,
일은 더디고 해는 더 길어졌다.
일이 마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리고 해가 노을로 물들 무렵,
곧장 그녀를 보러 달려갔다.
가게 앞을 지나던 순간,
유리창 너머로 보인 얼굴. 그녀였다.
“레나!”
바삐 움직이며 테이블을 정리하던 그녀는
고개를 들고, 손님에게 활짝 웃었다.
그 미소는 거짓이 아니었다.
숨기려는 흔적도,
무너짐도 없는 맑고 생기 있는 얼굴.
사랑애 빠진 것일까?
그녀가 나를 발견했다.
반가운 듯 손을 흔들었다.
마치 아무 일 없었던 사람처럼
손을 들어 보이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 일은 일찍 끝난 거야?"
"응, 들렀다가 집에 가는 길이었어.
너는 바빠 보여."
"바쁘면 힘들긴 한데
그래야 사장님도 좋아해서
나에게 떨어지는 게 좀 많아"
나는 웃었고, 그녀도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평소처럼.
"그럼, 나 서점에 갔다 올게
사고 싶은 책이 있거든"
"오! 하고 싶은 게 생겼구나! 뭔데?"
그녀는 웃었다.
"나중에 알려줄게"
가게 문을 나섰다.
나의 발걸음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았다.
향한 곳은 집이 아니었다.
조금 더 멀리,
조금 더 조용한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햇빛이 느릿하게
땅 위를 기어갔다.
그리고,
회색 벽돌로 지어진
커다란 건물 앞에 섰다.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은 고요했다.
종이 넘기는 소리와
구두 굽이 바닥을 톡톡 치는 소리만이 울렸다.
데스크에 앉아 있던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또박또박 입을 열었다.
“크로머라고 합니다. 자수하러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