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크로머, 내 이름은 데미안이야

by 지라르

싱클레어.


한때는 반듯하게 다려진 셔츠를 입고 있었던

그 애가 요즘은 소매 끝이 자주 접혀 있었고,
손톱 끝은 자주 깨져 있었다.

눈빛은 항상 흐려있다.


또박또박했던 발음과 어른스러운 말투는 사라졌다.


“도시락 가지고 와.
네 거는 안 먹어도 되잖아.”


그 애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시락이 내 책상에 올라왔다.
정갈하게 싸인 천, 예쁘게 정리된 빵과 치즈.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이상하게도 메스꺼운 맛이 느껴졌다.
달고 짜고, 기름졌다.


이것도 먹어본 놈들이 잘 먹는다고 하던데

그 말을 실감했다.

나는 억지로 크게 씹으며 웃어 보였다.


주변 애들이 킥킥거렸다.

싱클레어는 입술만 꾹 다물고 있었다.
그 표정은 화도 아니고 울음도 아니었다.

그저, 멈춰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포크를 집어 들었다.
호밀빵 조각을 찢어 치즈 위에 눌러 얹었다.
포도알이 옆으로 굴러 나와 빵부스러기와 섞였다.


“이렇게 비싼 것들을 많이도 싸왔네”


싱클레어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싱클레어는 말없이 서 있었다.

그의 귓불은 아주 천천히 붉어졌다.


그 작은 변화가 내 눈에 들어왔다.


보자마자, 혀에 눌어붙는 느낌이 들었다.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목을 타고 내려가면서도, 갈증은 이상하게 남았다.


다음날에도 책상 위에 도시락이 올라왔다.


그의 도시락 천을 건드렸다.

깨끗이 빨아 말린 비누와 햇볕 냄새가 났다.


그 냄새가 낯설게 느껴졌다.
기름 냄새와 비누 냄새가 섞여,
입안에서 향이 어설프게 뒤틀렸다.


나는 천을 더 세게 움켜쥐며 짜증을 냈다.
싱클레어는 움찔했지만, 눈을 들지 않았다.

그의 가슴팍이 얕게 오르내리는 게 보였다.


“왜 가만히 있는 거야?”


나는 속삭이듯 물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나를 더 자극했다.


나는 억지로 빵 한 조각을 집어
그의 입 앞에 내밀었다.
싱클레어는 잠시 망설이다가,
천천히 입을 열어 받아먹었다.


턱이 미세하게 떨렸고,
그가 씹는 소리가 고요한 교실에 크게 들렸다.


그 순간, 내 안에서 알 수 없는 기분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이건 웃음도, 승리도 아니었다.
마치 내가 그를 부수고 있으면서 동시에,
내가 이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싱클레어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입술에 묻은 빵 부스러기를 혀끝으로 훔치고 있었다.


나는 포크를 내려놓았다.
손끝에 기름이 묻어 있었고,
그것이 내 피부를 따라 번지는 듯했다.
문질러도 잘 닦이지 않았다.

싱클레어가 아주 잠깐 나를 올려다봤다.
겁에 질린 눈빛이었다.


보기 싫은 내 얼굴이
그 안에 비친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시선은 여전히 그의 도시락 위에 머물러 있었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도시락은 내 책상 위에 올라올 것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이거, 너네 엄마가 싸줬냐?”

“응.”


“너네 엄마는 참 한가하겠다.

도둑 자식 밥 싸줄 시간은 있나 봐?”


그 애의 어깨가 진동했다.

고개를 숙인 채 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 있었다.

나는 더 세게, 쿡 찔러보고 싶었다.


이렇게 까지 버티는 걸까?

솔직하게 말하면 되지 않나?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하는 일이

이런 모욕을 당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일까?


나의 괴롭힘은

착한 아이 가면을 벗기기에는 미약한가?


나의 괴롭힘은

그저 도시락 위를 더럽히는 장난에 지나지 않는가?


나의 괴롭힘은

결국, 그 정도뿐인 걸까?


나의 괴롬힙은

적어도 착한 아이의 명에에 숨어있는

싱클레어의 위선적이고 나약한 모습을 들춰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이렇게 모욕적인 일을 겪고 있지만

부모가 이 사실을 모르기에

마음 한편에는 안도감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자신은 이렇게 무너지고 있지만,

엄마 아빠는 여전히 나를 착한 아이로 믿고 있겠지!

이렇게나 어리석을 수가 있나!


근데 나는 이 어리석고 별 볼일 없는 놈에게

왜 이렇게 열을 내고 있었을까


갑자기 내가 바보 같았다.

흥미가 식어 돌아섰다.


더 이상 이 애의 상대로 열내지는 않아야지.

하지만, 얼마나 버틸지는 궁금하다.


상관없다.


이미 나의 장난감이 되었기에

언제 확인해도 괜찮았다.


.


그날 밤,

불도 켜지 않은 방 안에서

가만히 누워 있었다.


천장에 그려진 얼룩 하나가 자꾸 눈에 밟혔다.

손을 올려봤다.


그 애의 어깨의 어깨를 움켜졌을 때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이 집에서 보고 있는 이 손은 이상했다.


문득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무언가가 식탁을 넘어뜨리고,

유리잔이 깨지고,

벽이 덜컥거릴 정도로 문이 닫히던 소리.

그리고, 그 남자의 손이 생각났다.

그 손이 닿으면 뭐든 작아지고,

울고, 조용해졌던 것 같다.


기억만으로도 따가운 촉감을 느껴져

눈살을 찌푸렸다.


그 애를 미워했지만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오히려 조금은… 심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애도 자초한 일이다.


시계를 준 것도, 돈을 가져온 것도,

도망치지 않고 내 말을 들은 것도 전부

그 녀석이 선택한 거다.


내가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있던 것일까?


만약에라도,

그 애가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더라면?

‘싫어 ‘라고 한마디라도 했더라면?


나는, 그렇게까지는 안 했을 것 같다.

어쩌면 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 애는 끝까지 조용히 있었고,

나는 그 조용함을 받아들였을 뿐이다.


얼마나 모순적이고, 위선적인 놈이었는지

볼 수 있었다.


착한 아이인 척,
손에 더러운 것 하나 묻히지 않으려는,
그 거만한 삶의 태도는…
내 눈엔 역겨움 그 자체였다.


집에 돌아가면 따뜻한 난롯불이 켜져 있을 것이다.
식탁에는 언제나 빵과 고기가 놓여 있을 것이다.
그는 그저 앉아서 먹기만 하면 된다.

돈을 버는 법조차 알지 못하면서

돈 걱정 없는 환경에서
누릴 건 다 누리며 자라온 놈이다

한마디로 무능력한 놈이

모든 권리를 다 누리고 있다.


그리고는 좋은 아이, 착한 아이를

고집한다.


내가 본 가장 역겨운 아이다.


그런 놈 잠깐 괴롭히는 것쯤이야

나쁜 것도 아니다.


그 애 또한 시키지도 않은 거짓말을 했으니

자발적으로 허락한 것이 아닌가?


눈을 감았다.


그 애에 대한 생각이 정리되었다.

하지만 어째서 나는 여전히 초조한 걸까.


내가 놓친 무언가가 있었을까?

아니, 생각해 봤자 소용없다.


그럴 때는 일단 움직여보는 게 좋다.

집 밖으로 나왔다.


밤공기는 시원하게 불어와

나를 씻겨 내는 듯했다.


달빛이 비쳐주는 길을 천천히 따라갔다.

너무나 고요해서 세상에 나만 있는 것 같았다.


밤하늘의 주인은 달이다.

나는 밤하늘의 주인에게 선택받은 느낌이다.


그렇게 몇 분을 걸었을까.


길게 뻗은 그림자가 마음의 정막을 깼다.


저 앞에 누군가가 서 있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

그 누군가는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조금씩 실루엣이 선명해졌다.

그는 내 또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덩치는 나보다 작은 듯 보였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겁이 나지는 않았다.


그는 가까이 다가왔다.

그의 얼굴이 보였을 때

눈빛은 또래의 것이 아니었다.


그 애는 걸음을 멈추고

또래의 것이 아닌 깊은 눈동자로

나를 가만히 보았다.


그가 입을 열었다.


“너 그러다가 괴물이 돼.”


갑작스러운 말이었다.
내 앞에 선 낯선 애가 뜬금없이 내뱉은 소리에
나는 잠시 멍해졌다.


의아했고,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은
내 가슴을 덜컥 내려앉게 했다.


“괴물이 되면, 누구도 널 다치게 하진 못할 거야.
하지만… 누구도 괴물의 마음을 알려고 하지 않겠지.”


그 애는 한 발 다가왔다.

작은 발소리지만

그 발소리에 놀라 나도 모르게

오른쪽 발을 뒤로 뻗어버렸다.

그 애는 조용히 이어 말했다.


“안녕, 크로머. 내 이름은 데미안이야.”


데미안...


그가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순간,

공기는 이미 다른 것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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