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by 지라르

“안녕 크로머, 내 이름은 데미안이야”


이름을 들은 것뿐이지만

그의 이름은 공기 속에 번개가 스친 듯, 내 가슴을 휘저었다.


데미안. 혀끝에서 맴도는 순간,

데몬을 부르는 소리.


어둠 속에서 피어오르는 그림자

금단을 속삭이는 기운이다.


하지만 동시에, 빛나는 그의 눈동자는

교회에서 들었던 성인의 이름처럼,

누군가를 구원하고 치유하는 맑은 힘이 깃든 듯도 했다.


한쪽은 심연으로, 한쪽은 빛으로 이끄는 듯한 이름.


그 모순된 울림이 내 가슴을 번개처럼 가르며 스쳐갔다.


천사의 이름인지, 악마의 이름인지 알 수 없었다.


빛인지 어둠인지,
나는 끝내 알 수 없었다.
비천한 나로서는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신의 마음처럼 모호하고 아득한 이름.


그 모호함은 나를 더욱 경계하게 만들었다.

“……뭐야. 그래서 나더러 어쩌라는 건데.”


데미안은 가만히 고개를 기울였다.


그 눈동자는 흔들림이 없었고,
내 속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알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거든.”

“뭐?”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알이 부서졌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


데미안은 조용히 말했다.


“나는 너를 알아.
너는 힘을 믿고, 친구들을 괴롭히는 나쁜 녀석이지.

이미 한 명은 네 장난감이 된 것 같더라.

하지만 그렇게 더럽게 얻은 재미는 오래가지 않아.”


그 말에 싱클레어가 떠올랐다.
그 녀석의 얼굴이 스치자 불편한 기운이 올라왔다.


“그딴 말하지 마. 세상은 원래 그런 거잖아.
누군가를 밟지 않으면 내가 밟히는 거야.”


터져 나온 말은 멈출 수 없었다.


“싱클레어? 그 녀석은 위선자야.
부모한테 사랑받고, 축복받은 삶을 살았지.
그런데도 아무것도 못 해.

잘못을 정면으로 마주하지도 못하고,
체면 깎일까 봐 거짓말이나 해대잖아.

겁쟁이 주제에 옳다고 믿고.
그런 애도 편하게 살고 있잖아.


근데 나는 뭐야?

그 녀석보다

더 치열하게 살고 있어


하지만 나의 삶은

숨소리 하나에도 눈치를 봐야 했다고.

그게 내가 잘못해서야?
아니면 그냥… 태어난 게 잘못인 거야?

내가 살아남으려면 이렇게 살 수밖에 없어.
대부분 다 그렇게 산다고.
옳은 일만 하면서 사는 사람에게는
기회와 축복이 따르지.
그건 특권이야.

넌 그냥—”


그 순간, 한동안 흘리지 않았던 눈물이
땅에 떨어졌다.


“옳은 일만 강요하는 위선적인 어른들처럼,
공허한 성경책처럼,
너도 나를 훈계하려는 거지.
세상이 잘못된 건 나 때문이라고,
내가 착해져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거잖아.

하지만 알아?
그런 말은 힘이 없어.
타인의 악행 뒤에 숨는 비겁한 자들이
하는 소리일 뿐이야.
나는 그런 말에 당하지 않아.
그딴 말하는 애들,
다 부숴버릴 수 있어!”


심장이 미친 듯 뛰었다.
만지지 않아도 얼굴이 뜨거워 진 것을 느낄 수 있다.


나의 격동에도

데미안의 눈은

변하지 않았다.


너무나 깊은 바다라서

나의 감정이 아무리 뜨거워도

바다를 따뜻하게 할 수는 없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 그래. 세상은 네 말대로 더러워.
비겁하고, 오만하고, 위선적이지.
그리고 너는, 그 더러운 세상에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사람이야.”


깊은 눈동자를 가진 그는

놀랍게도, 따뜻했다.


“싱클레어는… 어쩌면 지나치게 보호받은 아이일 거야.
자기 입으로는 아무 말도 못 하지.


무서워서.


왜냐하면 그 애도, 너처럼 약하거든.”


"난 그놈처럼 약하지 않아"


"그렇다고 강한 것도 아니지"


“…그럼, 내 잘못이 아니야?”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넌 정말, 그 순간이 좋기만 했니?”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네가 맞을 때,
그 무서웠던 감정, 원망했던 마음,
숨고 싶었던 마음…
사실은 다시는 그러고 싶지 않았잖아.
그게 얼마나 소중했는지, 네가 알잖아.”


“무슨 소리야?
그 지긋지긋한 게 소중했다고?”


“넌 그때, 행복해지고 싶었잖아.”


그 말에 안에서 ‘뚝’ 하고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랐지.
하지만 세상은 언제든 같은 상처를 만들 거야.
그리고 너 같은 아이에게
그 일을 반복하게 하지.

하지만 크로머, 그건 옳지 않아.
그건 네가 지키고 싶었던 걸 무너뜨리니까.

그리고 그렇게 강하게 나아가면

다른 사람이 너를 소중하게 대할 수 없게 되니까.”


“난 충분히 강해!
다른 사람이 날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어!”


“넌 충분히 강해.

네 나이에 이렇게 삶을 치열하게 고민하는 건
정말 드문 일이야.
그건 대단한 거고, 강하다는 증거야.

하지만, 크로머.
세상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쉽게
강한 사람조차 무너뜨려.”


나는 숨을 들이켰다.
조용했지만, 속을 울렸다.

데미안은 한 걸음 물러섰다.


거리가 벌어졌지만,

눈빛은 여전히 선명했다.


“하지만, 크로머. 넌 아직 무너지지 않았잖아.”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바람이 스쳤고, 풀잎이 흔들렸다.


어느새 데미안은 뒤를 돌았고, 멀어져 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멈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이 열리지 않았다.


이름 없는 감정, 설명할 수 없는 감각,
말로는 닿지 않는 무언가가
내 안에서 천천히 꿈틀거렸다.


나는 혼자 남았다.
세상은 그대로였지만,
모든 게 조금 달라 보였다.


익숙한 풍경이 낯설게 느껴지고,
내 그림자가 더 무거워진 듯했다.


문득, 손을 내려다봤다.
이 손은 여전히 누군가를 움켜쥘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손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선이
내 안에 있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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