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클레어가 사과를 훔쳤대

by 지라르

목소리가 나를 깨웠다.

크로프의 목소리였다.

사실 누구의 목소리든 중요하지 않았다.


믿을 수 없는 말이다.

그런 짓을 할 애가 아니었다.


그의 입은 성경과 신을 담았다.

물론 그런 말을 해도

물건을 안 훔치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날 때리지만, 기도하는 그 또한 그랬으니까.

신을 믿는 것은 착한 것은 별개다.


그 애가 물건을 훔쳤다는 말을 믿을 수 없는 까닭은

신이든 종교든 성경이든 그런 추상적인 것과 상관없이

유약하고 복종적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옆에서 부추겼나?


심장이 조여왔다.

이상한 감정이었다.


그 애를 만나러 가야겠다.


걸으면서 생각했다.


싱클래어는 부잣집 도련님에

부모의 사랑을 아낌없이 받은 애다.


그래서 주위에 시기 질투가 많지만

난 괜찮았다.


세상물정 모르고, 복종적이며,

시간을 낭비하는 멍청이 었기에

나는 그 애를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건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건... 내 영역이었다.


이미 모든 걸 가진애가 여기까지 들어왔다고?


걸음이 빨라졌다.


싱클레어가 보였다.

불안한 마음은 드러내지 않았다.


속내를 숨기는 일은 질리도록 단련해 왔기에

애들은 이런 나의 불안한 마음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너, 사과 훔쳤어?”


"맞아. 밤에 모퉁이에 있는 물레방앗간 집 정원에서

친구랑 사과를 한 자루 가득 가져왔어.

자루 안에는 보통 사과가 아니었어.

최고급 품종인 레네트 사과와

황금 파르메네 사과가 가득했지!"


진짜 한 것처럼 막힘없이 이야기했다.


"한 명은 망을 보고

한 명은 나무 위에 올라가

사과를 아래로 던졌지.

사과를 담은 자루가 너무 무거워서

결국 자루를 다시 열어서

반은 놔두고 와야 할 정도였지만..."


조금 이상했다.

싱클레어의 얼굴은 약간 상기된 듯했고,

그의 눈은 눈치를 보는 듯했다.



"... 30분쯤 후에 다시 찾아가서

남겨 둔 사과마저 들고 왔어."


나는 아니기를 바라며

의심의 눈으로 쳐다보며 이야기했다.


“그게 정말이야?”

“당연하지.”

“그러니까 실제로 있었던 일이란 말이지?”

“그래.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니까.”


거짓이라고 확신했다.

잘 보이기 위해, 모면하기 위해,

살기 위해 했던 거짓 또한 많이 해왔다.


그리고 이 녀석은 우리에게 잘 보이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


나는 알면서도 괘씸한 마음에

이 녀석을 궁지로 몰았다.


“맹세할 수 있어?”

"맹세할 수 있어."

“그럼 하느님께 영혼을 건다고 맹세한다고 말해!”

“하느님께... 영혼을 건다고 맹세해.”


눈이 흔들렸다.

하마터면 웃을 뻔했다.


"그래..."


진짜 웃을까 봐 급히 몸을 돌렸다.


"나... 이제 집... 가야 하는데?"

“뭘 그렇게 서둘러.

나랑 가는 길이 같잖아. 같이 가자”


"알았어..."


나는 싱클레어의 뒤를 따라 걸었고,

그동안 이 녀석을

어떻게 괴롭힐지 골똘히 생각했다.


사실 이미 좋은 수가 떠올랐다.

하지만 계속 생각했다.


이미 떠오른 수보다

더 만족 할 수를 생각하기 위해서다.

더 악랄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이 애가 겪을 수 있는 가장 안 좋은 상황을 만들어

깊고 빠져나올 수 없어서

배불리 잘 먹어도 불안하,

부모의 사랑도 인지하지 못하고,

선생들의 칭찬에도 허기지는 상태로 만들 것이다.


그렇게 만들다고 한들

어차피 이 녀석은 나를 어떻게 할 수 없다.


어느새 싱클레어의 집에 다다랐다.

그 집이었다. 화려한 그 집.


낡은 신발 밑창에 차가운 흙먼지가 달라붙은 내 발걸음과 달리,
저 집 앞마당의 자갈길은 유난히 반짝였다.


창문마다 두툼한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지만,

그 사이로 새어 나오는 불빛은

대낮인데도 거리를 환하게 비춰줄 것 만 같았다.


나는 멈춰 섰다.


밤마다 추위를 견디며 돌아다닐 때,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빛나던 건 이 집이었다.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골목을 지날 때마다
저 안에서는 식탁 위에 따뜻한 국물이 오가고,
아버지가 자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는 장면이
내 눈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가슴 깊숙한 곳이 저릿하게 쪼여 왔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부러움 같기도 했고, 증오 같기도 했으며,
차라리 손을 뻗어 저 빛을 짓이겨 버리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왜 나는 저 안에 있지 못할까.
왜 저 애는 태어나자마자 모든 것을 가진 채 살아갈까.


나와는 다른 세상의 삶이라고 외면한 오만이 느껴진다.

나는 이곳이 필요하다.

이곳을 갖고 싶다


이렇게 들끓는 욕망을 느낄 때

이 욕망을 가라앉게 한건,

따뜻하고 노란
어린 시절 언젠가 꿈꾸었던 ‘집다운 집’을 떠오른 것이다.


나는 이렇게 까지 필요 없다

.
그저 따뜻하고 고요한 집,
술 냄새와 고함 대신 웃음소리가 가득한 집.
그러나 그 그림은 눈을 감자마자 곧 사라졌다.


환상을 현실처럼 살 수는 없는 법이다


잠시 이상한 기분에 젖어 있을 동안 문이 열렸다


재빨리 정신을 차렸다.


싱클레어가 문을 열고 들어가려 했기 때문이다.


쑥 들어가 문을 닫으려 할 때,

발을 문틈 사이로 집어넣었다.


열림 문틈 사이로 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깜짝 놀란 녀석이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이 녀석의 팔을 움켜쥐었다.


“왜 그래? 나한테 원하는 게 뭐야?”

“별거 아니야.

그냥 너한테 뭐 좀 물어보려고.

다른 애들까지 다 들을 필요는 없잖아.”


“그래? 나한테 뭘 물어보려는 건데?

나는 그만 올라가 봐야 해.”


“너 알고 있지?”


"..."


나는 의도적으로 나직하게 말하며 뜸을 들였다.


“모퉁이 물레방앗간에 있는

과수원이 누구네 것인지 말이야.”


“아니, 난 모르겠는데.

아마 물레방앗간 주인 것이겠지.”


싱클레어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내 쪽으로 당겼다.


“어린 꼬마야.

나는 그 과수원을 잘 알아.

그 집에서 오래전부터

사과를 도둑맞아 왔다는 것도 알아.

그리고 주인이 과일을 훔쳐 가는 놈이

누군지 알려 주는 사람들한테

2마르크씩 주기로 했다는 것도.”


“설마 너 그 주인한테 말하려는 건 아니겠지?”

“말하지 말라고?”


이 녀석의 표정은 크게 일그러졌다.


성공했다.


말한다고 크게 문제 될 것도 없는데,

말하지 말라고 하다니!


또 웃음이 터져 나올뻔했다.

더 이상 이 녀석을 잡을 필요가 없다.

손을 놓았다.



“이봐, 친구.

너는 내가 2마르크를

직접 만들어 낼 수 있는

화폐 위조범이라도 되는 줄 알아?

나는 가난한 놈이고

너처럼 부자 아버지도 없잖아.

2마르크를 벌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벌어야지.

어쩌면 주인이 돈을 좀 더 얹어 줄지도 모르고.”


싱클레어는 잠시 생각에

잠기고 나서 말을 꺼냈다.


“크로머, 내 얘기 좀 들어 봐.

나를 고발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대신 너한테 이 시계를 줄게.

미안하지만 이거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

이 시계 가져. 은으로 만든 아주 좋은 시계야.

조금 고장이 나기는 했지만

수리하면 괜찮을 거야.”


나는 시계를 받았다.

이 시계는 팔면

며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배부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몇 달이 될 수도 있다.


그 생각에 잠시 미소가 지어졌지만,

이건 내가 진정으로 원한 게 아니었다.


“난 은이고 뭐고 네 시계 따위는 관심 없어!

시계는 너나 고쳐 쓰든지 말든지 해!”


이 녀석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잠깐 기다려 봐!

이 시계를 가지라니까!

이 시계는 진짜 은으로 만든 거야.

그리고 난 이거밖에는 가진 게 없어.”


“너는 내가 지금 누구한테 가려고 하는지

아는 모양이군.

아니면 경찰한테 말할 수도 있어.

내가 경찰 아저씨를 잘 알거든.”


난 몸을 돌렸다

그러자 싱클레어는 나의 옷소매를 붙잡았다


'그렇지 그냥 가도록 할 수는 없겠지!'


“크로머...”


싱클레어는 쉰 목소리로 애원했다.


“그런 어리석은 짓은 제발 하지 말아 줘!

지금 나한테 그냥 장난치는 거지?”


이 어리석은 놈이 나를 어리석다고 말하는 건가?

화가 치솟았다.


“그럼. 장난이지.

그렇지만 너한테는

아주 값비싼 장난이 될 수도 있겠지.”

“프란츠,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지 말해 줘!

무슨 일이든지 다 할게!”


난 웃음을 터트렸다.

더 이상 참을 수도 없었지만,

이제는 굳이 참을 필요 없는 웃음이다.


“대체 어디서 돈을 구해 오라는 거야?

맙소사. 나는 돈이 정말 한 푼도 없는데?”


내 또래 아이들은

작고 더러운 동전이라도 손에 쥐는 법을 안다.


잡일을 하거나, 구걸을 하거나,

어떤 놈은 무거운 벽돌을 옮기고 돈을 받는다.

어른의 반도 되지 않은 애가

그렇게라도 움직여 돈 번다.


돈 앞에서는 아이는 없다.


이 녀석은

직접 돈을 구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건가?

당연히 돈 걱정 없이 살았겠지


정작 돈은 많지만

돈을 버는 방법을 모른다.


어처구니가 없다.


“네 집에 돈 많잖아.

어떻게 구해 올진 네가 알아서 해.

어쨌든 내일 학교 끝나고 보자고.

그리고 다시 한번 말해 두겠는데

만약 돈을 가져오지 않으면...”


더 이상 말을 할 필요 없다는 생각에,

나는 이 녀석을 가는 눈으로 보고

뒤로 돌아 이곳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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