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며 놀라는 얼굴, 당황한 얼굴이
가슴속에서 이상한 뜨거움을 차오르게 했다.
동시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건 아마 양심일 것이다.
하지만 괜찮았다.
지금 나에게 양심은 위선이다.
부끄러움을 외면하는 일이 더 선하다
게다가 누구도 내게 뭐라고 할 수 없기에 상관없다.
처음엔 분필을 던졌다.
칠판에 적힌 글자를 지우려는 척하며,
앞자리에 앉은 녀석 머리맡을 스치게 날렸다.
“야, 뭐야!” 하고 소리치는
그 얼굴이 우습게 느껴졌다.
뒤에서는 킥킥거리는 웃음이 터졌다.
그 아이는 분명 내가 한 짓인걸 안다.
내가 무서우니 일부러 모르는 척할 뿐이다.
그게 묘하게 짜릿했다.
점점 더 장난은 커졌다.
쉬는 시간, 교실 문을 살짝 걸어 잠갔다.
밖에서 선생이 노크를 하는데
안에서는 일부러 못 들은 척했다.
아이들이 허둥지둥하며 문고리를 잡고 우왕좌왕했다.
“열어! 선생님 온다니까!”
다급한 속삭임에 나 혼자 피식 웃었다.
결국 문이 열렸을 때,
선생은 잠깐 인상을 찌푸렸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조금 더 대담해졌다.
책상 위에 몰래 지우개 가루를 모아두고
옆자리에 앉은 녀석이 앉자마자
옷에 잔뜩 묻히게 만들었다.
녀석은 얼굴을 찡그리고 옷을 털어냈지만,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웃었다.
뒤에서는 또 웃음소리가 번졌다.
하지만 그 재미도 오래가지 않았다.
더 이상 교실에서의 장난은 흥미를 끌지 못해
수업시간인데도 학교 밖으로 자주 나갔다.
학교 뒤편, 체육 창고 옆 담벼락은
늘 우리의 자리였다.
쉬는 시간마다 거길 돌면,
누군가 바닥에 침을 뱉고 있었고,
누군가는 욕을 섞은 말을 자연스럽게 내뱉었다.
“야, 어제 그 미친 아줌마 가게에서
껌 하나 또 챙겼지?”
코르프가 입꼬리를 올리며
옆에 있는 브루노를 쿡 찔렀다.
코르프는 덩치는 작지만
목소리는 날카롭게 높았다.
말끝마다 욕을 붙이고,
눈동자는 늘 장난에 굶주린 듯 번뜩였다.
주머니 속에는 늘 껌 종이나 돌멩이 같은
쓸모없는 것들이 굴러다녔다.
그걸 꺼내 흔들며 허세 섞인 농담을 던졌다.
어른들이 보기엔 그냥 불량한 꼬마였지만,
우리 눈에는 늘 사건을 만들고 다니는 장본인이었다.
브루노는 코르프와는 달랐다.
키가 크고 어깨가 넓었지만,
늘 코르프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따라 웃었다.
스스로 무언가를 주도하기보단
옆에서 끄덕이며 힘을 보태는 쪽이었다.
얼핏 보면 코르프보다는 무거운 분위기를 가졌기에
아이들은 브루노를 더 무서워했다.
하지만 수동적이었고,
주변에서 움직이면 쉽게 휩쓸려 같이 움직이는 아이다.
실제로 나쁜 일을 주도하는 일은 코르프가 더 많았다.
“나만 봤냐? 계산대에서
잔돈 흘린 척하고 뒤에서 그냥 쓱 챙기더라.”
브루노는 뿌듯한 표정으로 말하며 웃었다.
애들은 박수를 치며 웃었고,
누구 하나 그걸 나쁘다고 말하지 않았다.
‘잘 훔쳤다’가 곧 ‘잘 살고 있다’는
증거가 되는 듯했다.
우리들의 셈법은 고약했지만
즐거웠으니 되었다.
나는 말없이 벽에 등을 기댄 채,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 짓거리도 지루해지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재미없는 수업을 듣는 것보다는 즐겁다.
우리는 담 너머로 가게 사람들을 흉보고,
수업시간에 교과서에 낙서를 하고,
선생이 지나가면 뒤에서 욕을 속삭였다.
별거 아닐 수도 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우리가 세상을 조종하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우리가 조종할 수 없는 아이들이 몇 있었다
우리와는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애들이다.
바로 부잣집 도련님들.
싱클레어는 그중 하나였다.
.
싱클레어.
그 애도 같은 성경학교를 다녔다.
언제부턴가 나의 무리에 서 있곤 했지만,
관심을 두진 않았다.
부잣집 아이라는 건 누구나 알 수 있었다.
늘 다려진 옷을 입었으니까.
손톱은 언제나 짧고 깨끗했고,
도시락은 유난히 정갈했다.
표정은 또래 아이답게 웃기도 했지만,
말투는 어딘가 정돈되어 있었다.
조금은 어른 같았는데,
분명 저런 모습은 오랫동안
사랑받은 아이의 특권에서
나온다는 걸 나는 안다.
그래서 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이 무리에 섞여 있는 건지.
아무리 봐도 여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얼굴이다.
하지만 곧 떠날 것 같았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부잣집 사람들이 흔히 보이는
잠깐의 유희겠지.
얘랑 나는 애초에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이니까.
처음 나는 싱클레어를 이렇게 생각했었다.
내가 그 애를 신경 쓰지 않은 이유는
사실 그 이유가 아니었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서야 알았다.
상대가 되지 않아 무관심했다는 것을.
이 애는 세상을 모른다.
너무 몰랐다.
온실 속에서 자란 화초처럼
예쁘고 반듯하지만,
거친 바람 한 번 불면 부러질 것 같은 애다.
어른스럽고 말도 조리 있었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그게 약해 보였다.
가끔 선악을 이야기하는데
그게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그런데 왜 우리 무리에 있는 걸까?
자신이 선하다고 믿기 위해서 말하나?
도대체 무엇을 했길래 선하다고 믿는 걸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아니면 누군가를 악으로 만들어
자신을 선하게 만드는 걸까?
그렇다면 싱클레어는
나와 다른 빛의 세계에 있고
나는 언제라도 빛의 세계를 무너트릴 수 있는 존재다.
그 애를 하찮게 여기니까
분노도, 자격지심도, 화도 나지 않는다.
관심을 둘 필요조차 못 느낀 것이다.
그러나 큰 사건이 일어난다.
적어도 내겐 아주 큰 사건이다.
그 사건 이후로 싱클레어를
이전과 다르게 볼 수 없게 되었다.
.
“싱클레어가 사과 훔쳤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