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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vendays Dec 03. 2018

우리는 왜 아재개그에 분노하는가?

'아재개그'에 숨겨진 우리 사회의 분노


필자는 평소에 아재개그를 종종 하는 편이다. 그런데 가끔 별 생각없이 던진 아재개그에 심각하게 정색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왜, 아재개그에 그토록 분노하는가?


아재개그에 분노하는 아재도 있을까?


아재개그를 녹색창에 검색해보면 "아저씨들이 하는 개그라는 뜻으로, 재미가 없는 농담을 이르는 말"이라고 나온다. 아재개그라는 단어는 그 개그를 하는 사람인 '아재' 가 강조된 단어다. 주로 아재개그를 하는 사람이 아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재개그를 아재만 하는 것은 아니다. 아재가 아닌데도 아재개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가끔은 아재개그를 좋아하면 아재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아재가 아님에도, 아재개그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억울하게 비난(?)을 받는 경우도 있다.


사실 아재개그로 불리는 유머는 예전에는 썰렁개그라고 불려졌다. 썰렁개그라는 단어와 아재개그라는 단어가 지칭하는 개그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지만, 단어의 뉘앙스는 약간 다르다. 썰렁개그는 '썰렁하다' 라는 유머의 특징이 그대로 반영된 반면, 아재개그는 그 개그를 애용하는 주체가 강조된 것이다. 과거에는 썰렁개그로 불리던 것이 왜 이제는 아재개그가 되었을까?


걸그룹 마마무의 <아재개그> 뮤직비디오. 마마무도 아재인가?


‘전화기로 세운 건물은 콜로세움’ 같이 아재개그는 주로 1차원적인 언어유희가 많다. 정말 아무런 맥락도 없는, 밑도 끝도 없는 개그다.


유난히 아재개그에 치를 떠는 이유가 뭘까? 단순히 재미가 없어서 일까?


그럴수도 있겠지만, 또 다른 이유 중에 하나는 아재개그 뒤에 숨겨진 폭력성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재는 사실 꼰대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잘 생각해보면, 아재개그는 표면적으로는 개그의 '주체'를 강조하지만, 그 이면에 개그의 '맥락'을 전제하고 있는 단어다. 아재개그는 주로 수직적인 관계를 전제한다. 아재개그가 사용되는 상황은 일반적으로 상급자가 아랫사람에게 웃음을 주고자 할때 사용된다. 아재들끼리 서로 아재개그를 주고 받는 그림을 상상해보라. 뭔가 낯설다.


문제는 이 아재개그가, 하는 사람만 재밌다는 것이다. 듣는 사람이 재미있을지에 대해서는 개의치 않는다. 꼰대의 가장 큰 특징은 나의 경험이 상대방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이것이 유머에도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다. 재미없는 개그를 하면서 재미를 강요하는 것이다. 권위에 기대어 아랫사람의 웃음을 강요하는 꼴이다. 먹기싫은 음식을 억지로 먹으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아랫사람은 재미가 없어도 재미있는 척을 할 수 밖에 없는, 정말 웃지 못할 상황이 펼쳐진다. 결국 내가 재밌으면 너도 재밌어야 한다는 아재들의 폭력성, 듣는 사람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결여에 대한 어떤 부정적인 감정이 '아재개그'라는 말에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제발 좀 공감하고 소통해달라는 우리의 아재들에 대한 간절한 바람이 담겨있는지 모른다.


살다보면 유난히 아재개그를 혐오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왜 그토록 아재개그를 혐오할까? 조심스레 추측을 해보자면, 아마도 아재개그를 듣는 순간, 그들이 과거에 꼰대들로부터 경험한 소통과 공감의 부재에 대한 마음속의 잠재된 분노가 건드려졌기 때문은 아닐까. 결국 아재개그에 대한 분노가 꼰대들에 대한 분노의 연장이라고 본다면 지나친 일반화일까.


언어유희라고 해서 무조건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아재개그를 혐오하는 이들에게는 아재들에 대한 분노가 일상의 활력을 주는 가벼운 유머에 대한 분노로 까지 확대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아재개그 중에 가끔은 재밌는 것도 있다. 솔직히, 재밌었으면 편하게 웃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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