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 슈필라움의 심리학
저자는 이 책에서 타인에게 방해받지 않는 자기만의 공간 ‘슈필라움’에 대해 언급한다. 독일어에만 있는 단어인 슈필라움(Spielraum)은 ‘놀이(Spiel)’와 ‘공간(Raum)’의 합성어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율의 주체적 공간’을 뜻한다. 물리적 공간은 물론, 심리적 여유까지 포함하는 슈필라움이 있어야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자존감과 매력을 만들고 품격을 지키며 제한된 삶을 창조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
위의 내용은 이 책을 소개하는 구절 중 인상깊은 부분을 인용한 것이다. 평소 좋아하는 김정운 교수의 책이자, 다루고 있는 내용도 평소 관심있던 주제와 관련이 있어 읽게 되었다.
필자도 계절마다 혹은 수시로 집안 가구를 재배치해야 직성이 풀리는 습관이 있다. 늘 동일한 가구 배치와 동선을 따라서 생활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답답하고 지겨워지는 순간이 온다. 혹은, 뭔가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공간을 재구성 하고 싶은 욕구가 치솟을 때가 있다. 그럴때면, 머릿 속으로 상상하며 집안에 놓인 가구를 재배치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머릿속에 존재하던 도면은 현실의 공간이 된다. 그러고 나면, 단순히 가구의 위치만 바꿨을 뿐인데도 마치 새로운 집으로 이사온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한다. 그리고, 내가 공간을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 때문인지 뭔가 모를 성취감과 뿌듯한 마음도 생긴다.
내가 수시로 공간 재구성을 시도했던 것이 바로, 이 책에서 말하는 '슈필라움'을 실현하기 위한 나름의 몸부림이지 않았을까 싶다.
갈수록 공간의 가치는 부각되고 있다. 한쪽에서는 공간의 경제적인 가치에 몰두하는 반면, 또다른 한편에서는 공간의 사용적 가치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어떤 형태로든지, 공간의 가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점점 높아져가고 있고, 앞으로도 더 뜨거워 질 것 같다. 의식주를 포함한 인간 모든 활동이 일어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라는 점에서 사용적 가치가 좀더 본질적인 가치라고 할 수 있겠지만, 돈이라는 수단으로 거래가 되고 가치가 매겨지는 한 경제적 가치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공간을 누리는 것이 점점 더 힘들어지기 때문에, 오히려 많은 이들이 공간을 더욱 갈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