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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이로스 Nov 17. 2023

[백수일지 EP.5] 백수 200일 차 회고록

(feat. 퇴사를 꿈꾸는 당신에게 전하는 솔직 후기)

평범한 나의 보통의 날들
내가 사는 광희동 뷰. 너무 좋다

알람을 맞춰두지 않고 깨어났는데 시계를 보니 오전 11시다. 늦게 일어났다는 죄책감도 없고, 나한테 오는 연락도 없고, 점심 약속도 없다. 어제 새벽까지 핸드폰 하다가 새벽 2시에 잠들어서일까? 조금 더 자고 싶어서 베개에 코를 박고 눈을 붙인다.

오후 1시 유튜브에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반복 재생 해놓고 슬슬 일어날 준비를 한다. 오늘은 뭐하지? (마음에도 없는) 구직활동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구직 정보를 확인한다. 부스스한 머리를 정리하고 모자를 쓴 채 집 근처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이랑 빵 한 개를 사서 방으로 돌아온다. 노트북으로 넷플릭스에서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정주행한다. 무려 6년 전 드라마지만 어느새 드라마에 몰입해 그때 그 대사와 시절을 기억하며, 분명 이미 본 장면 속 대사이지만 어느새 눈물이 맺히고 이윽고 눈물을 흘린다. 시청하는 동안에도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침대에 누워 드라마를 본다.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11시 이다. 이게 어제의 나의 하루였다. 완벽하지 않은가? 백수의 삶 ^^


백수 D+200일을 자축합니다!!!
퇴사 200일 축하해요

 지난 5월 1일, 새로운 꿈을 가지고 당차게 퇴사를 선언하고 어느덧 200일이 지났다. 분명 추운 패딩을 입고 입사해 에어컨을 킬 여름쯤에 퇴사한 것 같은데 말이다. (이렇게 백수를 날짜를 세어가며 기념하는 사람은 나 밖에 없을 것이다.. ㅎㅎ)

 아무쪼록 퇴사 후 100일보다, 그 이후의 100일이 더 정신없이 흘러간 것 같다. 늘어난 건 나의 몸무게와 게으름, 줄어든 건 역시 돈뿐이었다. 바쁜 회사 생활 속에도 꼬박꼬박 쓰던 나의 일기장도 찾아보면 한 달에 1번 글을 쓸까 말까였다. 나라는 사람이 얼마나 게으른 사람인지 다시 확인하게 된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내 삶에 있어 시간이 없다는것은 핑계인걸로... 내가 그것을 하지 않는 이유는 우선순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 지금 행복하니?" 주변 사람들이 묻는다. 나의 대답은 "행복해요! 그런데..." 오늘은 200일을 자축하며 퇴사의 현실적인 후기를 남긴다.


가을과 겨울 그 어느 쯔음에... 세렴폭포에서
퇴사 후의 삶은 오롯이 '나'로서만 온전히 살아가는 과정이다.

  '내가 회사만 나가면...' 회사에 다닐 때는 회사 밖에서의 내 모습을 꿈꿔왔다. 그러나 현실은 잔혹했다. 특히 내 경우에는 회사의 자본으로 해왔던 일들이 많았기에, 내가 아무리 큰 꿈이 있고 계획이 있고 능력이 있다고 한들 회사라는 타이틀이 없어지고 난 후의 내 모습은 그저 꿈 많은 31살 청년이었다. '100억짜리 사업을 맡았던 공공기관의 대리'라는 타이틀은 나 혼자만의 프라이드고, 나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쥐뿔 하나도 없었다. 회사라는 큰 울타리 없이 오롯이 '나' 혼자 홀로서기를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세상(밖)에서 내가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게 가장 중요한데, 정작 나는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몰랐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깨닫게해준 2023 웰컴대학로

그래서 이것저것 다양한 프로그램을 경험 했다. 콘텐츠 수출·마케팅 전문인력 양성 과정을 시작으로 투어케어 양성 교육, FM 필드 매니저 양성 교육, 미래직업크리에터 창직프로그램, 콘텐츠아카데미까지... 정말 많은 교육프로그램을 경험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혹했다. 콘텐츠 수출마케팅 과정에서는 미국 연수를 못 가게 되었고, 미래 직업크리에이터 과정도 개발단계까지 가지 못했고, 뉴콘텐츠아카데미 과정마저도 프리스쿨을 통과하지 못했다. 결국 나의 멘탈은 무너졌다. '퇴사 후에 더 돈도 많이 벌고, 더 성공한 사람이 되어야지'라는 마음으로 퇴사 후 이렇게 열심히 살아온 건데, 내가 기대했던 새로운 도전이 모두 실패하던  와중에 내가 나온 회사가 망해가기는커녕 회사의 규모만 커지는 소식을 들을 때면 퇴사한 것을 속으로는 땅을 치고 후회했다. 내가 붙잡고 있던 작은 '희망의 끈'들이 떨어지자 내 마음은 무너졌다.


나 왜 퇴사했지? 이럴려고 퇴사한거 아닌데...

회사를 나오면 눈에 보이는 것들 그리고 그 안에서 발견한 '나'
제주도 정방폭포에 있는 무지개 (직접 촬영)

그러나 실패의 쓴맛(?)을 경험하고 한 달이 지나고 돌이켜 보니, 이 과정 또한 나를 조금 더 성장하게 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난 다양한 HRD 프로그램을 경험함으로써 어떤 교육프로그램도 완벽한 것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디스코드, 노선, 슬랙 등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툴을 사용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Chat GPT, 미드저니, 뤼튼 등 다양한 AI 툴들을 사용했고, 언리얼 엔진과 유니티라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사용해 보았다. 내가 직접 '시니어 스마트 서비스 네트워커'라는 직업을 만들어 보기도 했고, 플러터를 활용한 앱 개발을 해보기도 했다. 무엇보다 젊은 친구들과의 경쟁 속에서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더 공부하고 개발해야 하는지 알게 해 주었다. 결과적으로는 나는 홀로서기에는 아직 더 무르익을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은 내가 지난 200일이라는 시간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깨닫지 못했을 것들이다. 누군가 보기엔 뚜렷한 결과는 없겠지만. 나는 분명 성장했다. 그리고 더 넓은 세상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퇴사하기 전에, 백수가 되기 전에 당신의 통장잔고를 확인하세요!
제주도 서귀포에서 찍은 일출

 퇴사 후 백수의 삶은 우선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고, 하고 싶은 일만 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이 너무 좋다.

지금 당신은 퇴사를 꿈꾸고 있는가? 나의 솔직한 후기는 '추천' 한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퇴사는 나처럼 시행착오를 겪게 될 것이다.

 내가 깨달은 사실 한가지는 자본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퇴사 이후에 맘 편히 살 수 없다는 것이다. 나 역시 쥐꼬리만큼이지만 모아둔 돈이 없었다면, 특히 이런 나를 이해해 주는 가족들이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비교적 다양한 활동을 하며 지낼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백수의 삶은 재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퇴사 이후의 삶이 마냥 행복한 삶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통장 잔고가 줄어들 때 마다 걱정이 된다) 그러므로 퇴사하기 전에, 백수가 되기 전에 최소 6개월 이상 일 안 하고 당신의 삶을 유지할 수 있는지 꼭 확인하고 퇴사하길 바란다.

지금의 나 역시도 이제 비워버린 통장 잔고를 채우기 위해서라도 일을 하려고 한다.



인생의 2막 1장 이제 다시 시작합니다!

 내 나이 만 31살. 나는 이제 인생의 2막 1장을 시작하려고 한다. 1막 2장에서 꿈을 좇는 청소년기를 보냈다면 1막 2장에서 나의 꿈을 좇아 살다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하지만 이제는 나의 모든 고민과 경험을 마음 한쪽에 품고 새로운 2막 1장을 쓰려고 한다. 나의 새로운 꿈을 위해 다시 하나씩 하나씩 채워가려고 한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나의 미래 계획을 공유하고 싶다. (아직은 나 혼자만의 꿈...ㅎㅎ)

 아무쪼록 난 다시 일을 하게 될 것 같다. 막연했던 백수의 삶을 떠나보내려고 하니 아쉬움이 크다. 그러나 내 소중했던 이 시간을 나는 두고두고 기억할 것이다. 먼 훗날 나의 이 기록이 내가 회사에 들어가거나 일을 하다 포기하고 싶을 때, 그때마다 나의 마음을 붙잡아 줄 수 있는 위로의 일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 물론 나의 미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에세이 10편 쓰기...)


다음은 꼭

[ep.5 일과 삶을 분리할줄 아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로 돌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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