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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경석 Jul 26. 2020

진정한 표현의 기술

유시민, 정훈이 《표현의 기술》

흔한 얘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자고로 창작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라면 자신만의 색과 확고한 가치관이 있어야 한다. 영화를 하든, 문학을 하든 (아니면 모래성을 쌓든) 그것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물론, 취미라면 이런 엄중한 잣대를 들이댈 필요가 없다.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해보자. 모방을 하든, 아예 베껴 그리든, “짜잔! 내가 그린 그림이야.”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오우, 너 화가 해도 되겠는걸?”하면 된다. 그걸로 끝이다. 그곳에는 어떤 여론의 형성도, A4용지 4장 분량의 신랄한 비평도 없다. 그렇지만,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떠올려 보라. 알만한 창작자들은 모두 자신만의 색과 확고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가령, 쿠엔틴 타란티노처럼 혈흔이 낭자하는 폭력성을 스타일로 가져오는 경우도 있고, 홍상수처럼 솔직함을 무기로 드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타란티노와 홍상수가 평생을 고수해오던 가치관의 산물일 것이다. 결국 스타일이란 창작자 자신이 가진 것을 어떤 앵글로 보여주느냐 하는 표현의 기술이기 때문이다.


유시민 작가와 정훈이 만화가의 저서 『표현의 기술』은 이런 고민을 가진 젊은 창작자들을 위해 집필된 본격 스타일 찾기 100일 프로젝트… 는 당연히 아니고, ‘표현’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그들이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글과 만화로 풀어낸 책이다. 읽는 건 힘들지 않았다. 유시민 작가의 읽는 맛이 살아있는 글과 눈이 지칠 때쯤 등장하던 정훈이 만화가의 삽화 덕분이다. 이틀이 되기 전에 훌쩍 완독 했는데, 읽는 내내 순백의 언덕에서 ‘오겡끼데스까’를 외치는 러브레터의 여주인공처럼 한 문장을 부르짖었다.


‘그래서, 표현의 기술은 언제 알려주시옵니까아아.’


제목을 보면 으레 그렇듯 내용을 상상하기 마련이다. 『표현의 기술』이란 딱딱하지만 작가의 지적 산유물이 한가득 묻어있어, 읽기만 해도 IQ가 제곱 배수로 늘어날 것만 같은 제목이다. 그렇다고 명성만큼이나 유명한 <항소이유서> 같은 문장을 쓰는 마법의 비법이 술술 적혀있을 거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작가는 원고료를 통해서 돈을 벌어먹는 사람이니, 밝히고 싶으나 밝힐 수 없는 선생의 마음도 나직이 이해할 수 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던 홍길동만이, 유시민 작가의 깊은 뜻을 같이 헤아릴 것이다. 그렇지만 책을 읽는 내내 “교과서만 보고 공부했습니다. 하하하.”하는 수능 만점자를 보는 기분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악의는 없습니다. 유시민 선생님).


비록, 학생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있지만 나도 한 사람의 창작을 (공부) 하는 사람이다. 이 말의 속뜻은 ‘자신만의 색과 확고한 가치관이 있어야 한다’는 규칙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뜻한다. 그것이 글이 됐든 영화가 됐든 (혹은 모래성이 됐든), 엇비슷한 잣대를 들이댈 수밖에 없다. 그로 인해 나는, 그리고 나와 같은 또래들에게는 ‘자신만의 색’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며 청춘을 연소시킬 의무가 부여된다.


청춘이라는 이름의 무거운 질량 아래서 조급함을 느끼는 사람도 더러 있다. 해서 몇몇 사람들은 대안책으로, 유명 연사의 강연을 찾아 듣거나, 이런저런 책을 찾아서 읽기도 한다. 가만히 투정만 부리느니 과히 훌륭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조금 더 냉철한 현실을 말하면, 강연을 몇 번 듣거나 다독을 한다고 모두 빼어난 작가가 되는 건 아니다. 즉각적인 해결책을 기대했던 독자에게는 큰 실망을 줄 수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렇지만 이 책을 다 읽은 나는 아주 본질적이고도, 적확한 조언을 건네고 있다고 생각한다. 즉, 교과서에 집중하는 것이다.


수능 만점자에게 강남의 유명한 학원이나 인터넷 강의는 중요하다. 물론, 매우, 몹시, 중요하다! 그러나 모든 공부는 기본적으로 교과서에서 시작된다. 표현의 기술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어떻게 유려한 문장을 쓰는지, 더 좋은 비유를 가져오는지, 책 어디를 둘러봐도 그런 창작의 비법 같은 건 적혀있지 않다. 아니 그런 건 애초에 없을지도 모른다(라고 적겠습니다. 유시민 선생님과 정훈이 선생님의 밥줄을 위해). 저자는 그저 자신들의 창작 활동을 둘러싼 생애와, 또 여러 가지 사건을 바라보는 태도와 이야기한다. ‘으음, 이런 글을(만화를) 쓰는(그리는) 사람을 이런 태도로 살아가는군.’하는 것뿐이다. 이것이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전부라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하루 24시간 표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꼭 예술가나 작가가 아니라도 그렇다. 말을 하고, 메시지를 보내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울고, 그리고 웃는다. 여기엔 어떠한 전문성이나 기술은 필요하지 않다. 그저 삶의 태도에서 비롯되어 나올 뿐이다. 어떻게 말하는지, 어떤 어휘를 쓰는지, 어떤 노래를 흥얼거리며, 무엇 때문에 울고, 웃는지 말이다.


결국 훌륭한 창작자가 된다는 것은, 훌륭한 표현을 구사할 수 있는 것이고, 훌륭한 표현을 구사한다는 것은 훌륭한 마음가짐을 가졌단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창작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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