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30일부터 2020년 2월 27일까지
거리도 하얀 이불속으로 몸을 숨기는 것을 보니 다시 겨울이다. 손이 트길래 입대할 때 선물 받았던 핸드크림을 꺼냈다. 일 년 만에 집은 핸드크림의 뚜껑을 열고 손등 위에 펴 바르다가, 문득 기억의 도화선에 불이 붙었다. 스파크는 다름 아닌 핸드크림 냄새. 이는 시냅스 회로를 영위하던 일 년 전 기억을 한 곳에 불러 모았다.
나는 관물대 위에 올려두었던 손바닥 만한 노트 세 권을 꺼내 들었다. 훈련소에서 썼던 일기장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노트를 펼쳤다가, 킥킥거리며 앉은자리에서 한 달간의 일기를 모조리 읽어버렸다. 꼭 맞는 안경을 쓴 것처럼 논산의 추억이 보다 선명해졌다. 가만히 감상에 젖다가 문득 "나중에 꼭 보여달라"던 몇몇 동기들의 얼굴이 한 명 한 명씩 떠올랐다. 눈에 띄는 몇몇 대목을 발췌해서 이곳에 올리며, 그들의 남은 복무 또한 무탈하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2월 2일(일)
눈을 뜨면 모든 훈련병은 연병장으로 모인다. 아침 점호를 하고 도수 체조를 하며 허리 스트레칭을 하는데, 이것이 생각보다 사소한 위안이다. 두 손으로 허리를 받치고 허리를 뒤로 눕혀 하늘을 바라본다. 하루하루 미묘하게 달라지는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음악도, 영화도, 인터넷도 없는 이곳에서 유일하게 허락된 즐거움이다. 유일하게 달라지는 것도 그것뿐이고.
2월 4일(화)
오늘 처음으로 기상나팔 소리가 들렸다. 미디어에서만 보던 광경 속에 내가 있자니, 신기하기는 한데 별로 기분이 좋지는 않다. 부디 하루만이라도 푹 자고 싶다. 입대한 지 일주일도 안 됐는데, 일상의 사소한 것들이 그리워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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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기가 유난히 힘들었다. 훈련병 개인의 컨디션은 전혀 관심 없이, 훈련소 아침은 그대로 흘러간다. 도수 체조, 그리고 체력단련. 멀리 보이는 동쪽으로는 해가 타오르며 노랗고 퍼런 그러데이션이 짙게 깔려 있었다. 아직 해가 닿지 않은 서쪽 하늘에는 노란 별 하나가 처연히 빛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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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실내 교육이다. 다만, 강당에서 진행되지 않고 이십 여분을 걸어가면 나오는 교육센터에서 진행됐다. 쳇바퀴처럼 움직이던 영내에서 벗어나니 그것만으로 나는 한층 들떠있었다. 고인 물웅덩이도 두꺼운 얼음 이불을 덮을 정도로 무척 추운 날씨였으나, 쭉 펼쳐진 도로와 메타세쿼이아 나무들 사이를 거닐고 있자니 마음은 마치 봄처럼 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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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니 총기를 불출받았다. 어깨 끈 사이즈를 맞추기 위해서였다. 총기는 생각한 것 이상으로 무겁다. 맨날 장난감으로만 보다가 실제로 보니까 신기하기까지 하다. 관물대에 등을 붙이고, 총을 두 팔로 감싼 채 이 글을 쓰고 있으니 마치 혹독한 전투를 치르기 직전,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는 학도병이라도 된 것 같다.
2월 5일(수)
배식을 위해 밖으로 나오니 하늘은 늘 그렇듯 슬프도록 아름답다. 마치 터키에서 보던 하늘 같다. 사회에 있을 때는 일찍 일어나 봤자 아홉 시에서 열 시인데, 매일매일 맑은 새벽 공기와 투명한 하늘에 흩뿌려진 여명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이곳에 있으면 이렇게라도 즐거움을 찾게 된다.
2월 6일(목)
생활관으로 돌아오는 길에 수료하는 사회복무요원 친구들을 보았다. 그들은 우리를 보며 손을 흔들고 우리는 그들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움직이는 손끝에서 비치는 감정이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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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당에 도착했다. 생일을 맞은 병사들에게 줄 케이크가 준비돼 있었다. 내일이 생일인 나와 1월 31일이 생일이었던 진석이가 케이크를 받았다. 가장 큰 목소리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는 우리 분대원들의 모습에 나는 적잖이 감격했다. 훈련소에서 생일을 보낸다는 것이 달갑지는 않지만,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한 달 동안 곁에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분명 몇몇 이들은 수료 이후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반드시 연락처를 주고받고, SNS로 친구도 맺을 것이다. 그들이 더듬어가는 삶의 궤적을 나는 오래도록 지켜보고 싶다.
2월 7일(금)
일기를 쓰는 것이 너무나 즐겁다. 아마 누군가가 읽는다는 부담이 이곳에는 결여되었기 때문이리라. 인터넷 편지에 답장을 쓰는 일도 마찬가지다. 군대에 온 나를 생각해 편지를 써주고, 내가 또 천천히 시간을 들여 답장을 적을 대상이라면, 구태여 미문을 떠올릴 필요도, 훌륭한 구성을 생각할 필요도, 적당히 나를 포장할 필요도 없다. 김연수 소설가가 말한 그대로이다. 이런 글쓰기라면 매일 써도 즐거울 것이다. 사건의 나열과 자유로운 사고의 유영. 한 달 동안 나는 이것을 충분히 연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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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뜀걸음은 유난히 재밌었다. 이 또한 글쓰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잘 뛰려고 하지 않으니, 이처럼 즐거울 수 없다. 군가를 부르고 발을 맞추며 종종 분대원들과 농담을 주고받는다.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갈 때마다 몸이 점점 가벼워지는 신비로운 경험을 한다. 달리기에 관한 얘기는 아니었지만, 이는 김중혁 소설가의 말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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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식 업무를 하다가 승민이와 나, 준희와 준헌이, 희호까지 테이블에 한데 모여 담화를 나누고 있다. 슬쩍 들어보니 게임 얘기인 것 같다. 이제 보니 준희는 엎드려서 자고 있다. 내가 일기 쓰는 것을 지켜보던 석재는 내 연락처를 물어보고 사라졌다. 이따금 삶을 엿볼 이들이 하나둘 늘어간다.
2월 8일(토)
생활실로 돌아오니 분대원들은 온데간데없고, 매트와 침낭이 침상 위에 너저분히 널브러져 있을 뿐이었다. 열린 창으로 들어온 햇볕은 표면이 있는 모든 사물 위에 살갗을 맞대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평화로운 오후이다.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새근새근 대는 햇살의 숨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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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대장님이 타 소대 애들이 식사를 해야 한다며, 배식 업무 도중 휴식을 취하는 승민이와 나를 일으켰다. 우리는 젠트리피케이션에 밀려나는 골목 상인들처럼 문밖으로 밀려났다. 파스텔톤으로 확장된 하늘 가운데 드높은 소나무가 가운데를 가르고 있었고, 그 사이로 빛이 가늘게 새어 나왔다. 옆으로 몇 발자국 걸어가니 완벽한 구를 이루는 달이 시계처럼 걸려있다. 승민이와 나는 흐르는 시간을 관조하듯이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며칠 전은 반달이었는데 오늘은 보름달이다. 변하면서 예쁘다는 말을 듣는 건 달밖에 없다고, 김소연 시인은 얘기했다.
2월 9일(일)
승민이와 배식 업무를 하던 도중, 날씨가 너무 좋아 보여 밖으로 나왔다. 초승달을 등 뒤로 숨긴 소나무가 푸른 배경을 끼고 차분하게 흔들렸다. 그 흔들림은 너무나도 차분하여, 사랑하는 이에 눈동자를 바라보듯 오래도록 바라봐야 슬며시 눈치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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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한 통을 쓸 때 보통 두 시간에서 세 시간 정도를 할애한다. 단어와 단어 사이에 조응을 고민하고, '나아가다'와 '누진하다'의 미세한 차이를 고민하고, 물음표와 마침표의 위치를 심각하게 고민하기 때문··· 은 아니고, 중간에 자꾸 무언가를 시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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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관으로 돌아오는 길, 군인 아파트 뒤로 넘어가는 오렌지 같은 태양을 보았다. 다디단 진물이라도 터뜨렸는지 온 하늘이 주황색으로 번져있다.
2월 11일(화)
겨울이기에 몰려온 추위를 어찌할 순 없었지만 그래도 날이 많이 풀렸다. 하늘도 어제보다 밝은 빛을 뗬다. 동쪽으로 보이는 산 너머 마을에는 어느 청년이 오랜 짝사랑이라도 이룬 듯 온통 붉은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내일은 조금 더 밝은 하늘이 되어있으라고, 속으로 나는 몰래 빌어주었다.
2월 12일(수)
총기 손질을 하는 도중 내 훈련 번호가 호명됐다. 필경 소포일 것이다. 소포 올 곳이 없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 아버지가 손편지를 쓰겠다고 하셨던 말이 떠올랐다. 역시나 행정반에서 받은 두툼한 종이봉투에는 '최노환' 석자가 또렷하게 적혀 있었다. 생활관에서 뜯어본 봉투에는 노트를 찢어 투박하게 적은 일기 형태의 편지가 가득했다. 편지를 읽으며 나는 적잖이 아연할 수밖에 없었는데, 내가 쓰는 이 일기와 놀라울 정도로 흡사한 문체를 채택했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외모도, 목소리도, 키도 닮지 않았는데···, 문학적 DNA가 닮아있을 줄은 당신도 상상조차 못 했을 것이다.
2월 15일(토)
미세먼지가 심한 아침이다. 실내 점호를 한다고 좋아했는데, 하필 우리 소대가 청소 담당이었다. 결국 점호 때와 같은 외피와 비니를 꺼내 쓰고, 공기 중에 넓게 퍼져있는 미세먼지를 온몸으로 맞이하고 들어왔다. 공기 중에는 파리바게트에서 풍겨오는 갓 구운 빵 내음이 얼핏 섞여있었다. 순식간에 내 머릿속은 오전 열한 시, 텅 빈 카페에서 먹는 갓 구운 크루아상과 따뜻한 아메리카노 생각으로 가득 찼다. 언제쯤 돼야 그런 고즈넉한 일상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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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X에 가려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판초우의 냄새를 맡고 난 후부터 비가 달갑지 않다. 사회에서는 카페에 가서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기에 훌륭한 명분이 돼주었지만 이곳에서는 아니다. 눈살부터 찌푸려진다. 보슬비밖에 내리지 않아, 판초우의를 챙기지 말라고 할 줄 알았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시 그 끔찍한 썩은 단무지(라고 동기 정훈이는 표현했다) 속으로 머리를 집어넣을 생각을 하니 PX고 뭐고, 그저 침상에서 쉬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2월 16일(일)
식사를 하고 생활관으로 복귀할 때쯤 날씨가 추워졌다. 비는 눈으로 자신의 몸을 단단히 하고 있었다. 얼굴에 맞닿는 바람이 더욱 묵직하고 정확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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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눈발이 더욱 거세졌다. 손가락 마디만한 눈발이 강하게 흩날렸다. 하늘에서 파견된 천만 대군에 온 땅이 하얗게 지배됐다. 녹색 전투복은 위장 효과를 잃은 지 오래이다. 논산의 모든 병사들은 모두 고개를 하늘에 고정한 채 그 아름다움에 백기를 들었다. 우리는 발을 맞춰 걸으며 '전선을 간다'라는 군가를 불렀다. 곡에는 "눈 내린 전선을 우리는 간다."라는 가사가 나오는데, 정말로 전방 전선 한가운데를 가로지르고 있는 기분이었다. 방탄모에 소총이라도 들고 있었더라면 서너 배는 더 몰입되었으리라.
2월 19일(화)
오래간만에 꿈을 꿨다. 하나로 이어진 긴 꿈은 아니었고, 단편적인 기억이 세 편 정도 이어졌다. 그러나 그 기억들은 독립된 개체로 나누어져있지 않고 큰 틀 안에서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소설에 빗대어 말하자면, 연작 소설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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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꿈은 열차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장면이었다. 옆에는 유원이가 앉아 있었다. 시간은 밤이었고 열차는 한강대교 위를 지나는 중이었다. 여의도의 찬연한 빛이 눈 앞에 오렌지 빛으로 펼쳐졌다. 그것은 서울이라기보다는 홍콩이나 도쿄의 야경과 가까웠다. 이어지는 빛의 산란을 보며 아름다움에 넋을 놓은 채 다리를 지나쳤다.
2월 21일(금)
기상 방송이 나오고 아무런 얘기가 없길래 점호가 없는 줄 알았으나, 실외 점호를 한다고 한다. 분대장님이 하도 춥다고 겁을 주길래 내복을 착용했다. 관성처럼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본다. 어젯밤 한참을 찾아도 튕겨나간 손톱이 한참을 찾아도 안 보이더니, 저기 저 위에 걸려있다.
2월 23일(일)
코로나 때문에 종교 행사가 취소됐다. 휴식 시간이 갑자기 늘어났다. 인터넷 편지가 일찍 불출되어 누워서 편지를 읽었다. 분대원 중 삼분의 일은 답신을 쓰거나 독서에 몰두해있고(나도 여기에 해당한다) 나머지는 모두 단잠에 빠져있다. 햇살이 창틈 사이로 스며든다. 둘 중 어느 행위를 선택해도 이상하지 않은 날씨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만 있으면 정말 더할 나위 없을 텐데.
2월 24일(월)
오전 행군을 마치고 막사로 돌아왔다. 휴식을 하다가 총기를 받고 다시 행군에 들어갔다. 아까 왔던 길과는 반대로 걸어간다. 처음 가보는 길이다. 나무는 촘촘히, 그늘은 길게 펼쳐져 있다. 불어오는 바람이 너무나 산뜻하다. 저 멀리 논산 시내가 자그맣게 보이는데, 잠시나마 사회와 맞닿은 기분이 들었다. 곧이어 햇살을 등지고 멍하니 걷다 보니 휴식 시간이 되었다. 햇살이 정면으로 파고든다. 방탄모는 총알이 아닌 태양볕을 막을 막는데도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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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을 마치고 다시 돌아왔던 길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땀에 젖어있는 전투복으로 바람이 들어와 달궈진 몸을 잠시 식혀주었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잠시 봄날에 다녀온 것 같다. 비록 눈앞에는 난분분 흩날리는 벚꽃이 아니라, 장엄한 장벽만이 길게 펼쳐져 있다. 그 위에는 예리한 철조망이 덩굴처럼 이어진다. 이다지도 칙칙한 풍경 뒤로는 높은 봄날의 푸르름이 엷게 퍼져있다. 나는 계속 하늘에 시선을 고정하며 세상에서 네 번째로 쓸데없는 생각을 늘어뜨린다. 애인이 있다면 '오늘은 누워있지만 말고 천변이라도 걸어보아요' 하고 문자라도 보내고 싶은 날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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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를 마치고 저녁을 먹기 위해 줄을 섰다. 하늘에는 웅장한 구름이 색이 빠진 연분홍색으로 물들어, 광활한 핑크뮬리 밭이라도 옮겨 놓은 것 같다. 뚫어지게 그것을 바라보다가 등 뒤로 풍경을 양보하고 식당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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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해 한동안 우리 생활관에 시끄러운 소동이 일렀다. 그 소동이 잠잠해지자 나와 재성이형의 소곤거림이 다시 빈 공백을 메꿨다. 진석이랑 희호는 내가 말이 많다고 나무랐고, 승민이는 어디 라디오를 틀어놓았느냐고 투덜거렸다. 우리는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귓속말에 가까운 소곤거림으로 대화를 잇다가 잠에 들었다. 우리는 술에 관해, 꿈에 관해, 과거에 관해, 그리고 군생활 목표에 관해 한참을 얘기했다. 두 사람의 생애가 한 시간의 대화 속으로 촘촘히 압축되었다.
2월 25일(화)
총기 손질을 하느라 샤워를 못 했던 애들이 샤워를 하러 갔고, 나는 거의 다 읽었던 『슬픔이 없는 십오 초』를 완독 했다. 예전에 읽었던 심보선의 시집보다 훨씬 좋다. 이 시집은 왠지 모르겠지만, 논산훈련소에서의 감정과 닮아있다. '집에 가고 싶다', '커피를 먹고 싶다'와 같은 감정 말고, 분대원들과 웃고 떠들고, 혹은 남몰래 고민을 늘어뜨리던 그런 순간의 감정들. 시의 소재 혹은 언어의 형태가 닮아있지는 않다. 그렇지만, 멋 훗날 이 시집을 다시 읽을 때와 논산을 떠올릴 때면 가슴 안에선 데구루루, 비슷한 떨림이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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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준헌이와 태호의 외모 대결을 진행했다. 6:4로 ○○이가 승리했다. 막상막하이긴 한데, 4명이나 기권을 했다. 이 일기를 나중에 분대원들이 볼 수도 있으니, 내가 누굴 택했는지는 적지 않겠다. 우리는 재밌는 게 더 없을까 하다가 예전부터 궁금했던 서로의 첫인상을 얘기하기로 했다. 그런데 바로 병영 일기 작성할 시간이 되었고, 송 분대장님이 생활실로 들어오셨고, 저녁 점호까지 이어져, 결국 단 한 명의 첫인상도 듣지 못하고 잘 시간이 되었다. 한번쯤 꼭 듣고 싶었는데···, 아직 하루가 더 있으니 그때 물어보자. 그러고 보니, 정말로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2월 26일(화)
누군가 등을 툭툭 건드리길래 잠에서 깼다. 마지막 불침번이다. 눈을 떴는데 깨운 사람은 온데간데없고, 전 근무자가 남기고 간 허물(그러니까 불침번 때 몸에 차는 X반도)만 내 머리맡에 놓여 있었다. 주변을 살펴보니 준희는 자기 자리를 내버려 두고 내 자리를 침범해 단잠을 자고 있다. 불침번을 다녀와서도 내 자리에서 꿈을 꾼다면, 공이 되어 내리막길을 굴러가는 꿈을 꾸도록 사정없이 밀어버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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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고 있는 박건희 분대장님을 지나쳐 신발을 갈아 신었다. 시계를 보다가 다음 근무자인 준희와 준헌이를 깨웠다. 기어코 마지막 불침번이 끝났다. 어둑한 저 관물대를 바라보며 이렇게 누워있는 것도 이제는 마지막이다. 잠깐 눈을 붙이고 점호를 하러 갔다. 마지막인 만큼 오늘은 평소보다 도수체조에 열심히 참여했다. 허리 스트레칭을 하며 하늘을 바라본다. 온 시야가 다 퍼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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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끝났다. 잠이 오지 않았다. 몸을 뒤척이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노곤한데 정신은 그대로였다. 장범준 <노래방에서>의 가사처럼 '그렇게 계속 잠은 안 오고' 흥얼거리듯 지난 한 달을 머릿속에 그렸다. 어둑한 생활관을 한번 훑어본다. 오른쪽에는 연거푸 인터넷 편지를 넘기는 승민이의 기척이, 왼쪽에는 2분대에서 떠들고 있는 김정현 분대장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 사이에서 나는 오랫동안 뒤척였다. 눈이 점점 감겨온다. 긴 꿈을 꿀 것 같은 밤이다.
2월 27일(수)
의경인 우리는 더블백을 들고 우측 강당으로, 같은 날 입소했던 사회복무요원들은 사복을 갈아입고 좌측 강당으로 줄을 지어 들어갔다. 몇 시간 후면 저들은 집에, 우리는 경찰학교에 있을 것이다. 뻣뻣하게 날 선 군복이 괜히 낯설다. 명찰이 삐뚤어지지는 않았는지, 베레모 각은 잘 잡혀있는지 확인하는데, 서울로 배치된 인원들이 호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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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더블백을 들춰 매니 몸이 휘청거렸다. 막사를 빠져나와 버스를 타러 향했다. 햇볕은 몸을 통과할 것처럼 매섭게 떨어지고 있다. 이남웅 소대장님이 주체가 되어 군가를 부르자 하셨다. 나는 평소보다 신경 써서 제식을 맞추고, 평소보다 훨씬 크게 목청을 높였다. 영원할 것 같은 4주도 이것으로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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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시작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치 전역을 앞둔 사람처럼 벅차올랐다. 경찰학교에서의 훈련도 남아있고, 전역까지는··· 멀고도 험한 여정일 것이다. 아무렴 어때. 앞날을 걱정하는 것은 조금 미뤄둔 채, 그저 솟아오르는 감정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기로 했다. 다시는 보지 못 한다는 마음에 창밖으로 훈련소의 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다, 버스가 영내를 벗어나자 나는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인생의 가장 푸르른 한 대목이 등 뒤로 묵묵히 멀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