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엄마를 떠나 '나'를 찾아가는 여행
1년 중 가장 중요한 업무를 마치자마자 떠났다.
남편도, 아이들도 두고.
일명 ‘혼여’.
혼자 떠나는 여행이다.
I인 내가 살아남기 위한 방법은 오롯한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정적인 I라기보다는 활동형 I에 가깝다.
가끔은 어디든 훌쩍 떠나야 숨이 트이고, 움직여야 비로소 내가 살아 있는 느낌이 든다. 떠날 수 없다면 카페라도 가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다. 조용한 음악 아래 펼쳐지는 책, 나만의 글, 나만의 호흡.
결혼 후의 혼여는 세 번.
뱃속 아이를 생각하면 사실 두 번이겠다.
첫 혼여는 첫째를 키우며 둘째를 임신한 줄도 모르던 때였다. 이미 계획한 일정이었고, 제주도 하늘 아래 버스를 갈아타고 걸으며 시간을 보냈다. 입덧으로 꽤 고생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잘 즐기다 왔다.
두 번째는 2년 전이었다. 5년간 몸담았던 일터를 떠나던 겨울, 퇴근하자마자 속초로 향했다. 그땐 숨을 쉬고 싶었다. 두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으로서 나만의 시간이 좀처럼 허락되지 않았고, 감정은 쌓이고 쌓여 어느 순간 터지려는 상태였다. 차가운 바람이 부는 속초의 거리들을 뚜벅뚜벅 걸으며, 가슴이 시원하게 열리던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리고 오늘. 직장에서 가장 중요했던 핵심 업무를 마친 바로 다음 날, 나는 또 훌쩍 떠났다.
기차를 타고 창밖 풍경을 바라보는 설렘.
역에 내려 모르는 동네를 걷는 기쁨.
낯선 여행지의 카페에 앉아 조용히 글을 쓰는 이 분위기.
지금 내 안은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충만해진다.
이게 바로 활동형 I가 충전되는 방식이 아닐까.
활동형 I는 혼자서도 밥을 잘 먹는다. 아직 혼자 고깃집이나 패밀리 레스토랑 같은 ‘난이도 높은 코스’를 도전하진 않았지만, 뭐 어떠랴. 언젠가 해볼 수 있을 것만 같다.
예전에 속초에서 혼자 먹었던 대구탕 맛이 잊히지 않아 다시 찾았던 날, 최소 2인분 주문이 기본이라 혼자서 2인분을 모두 해치운 적도 있다. 오늘도 혼자 푸짐한 미역국 한 상을 잘 먹었다.
활동형 I는 잘 걷는다. 낯선 골목을 기웃거리며 새로운 길을 찾아다니는 걸 즐긴다. 숨겨진 풍경을 발견하는 순간의 반짝임이 좋다.
그리고 활동형 I는 조용히 앉아 있기도 하지만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정적인 것 같으면서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한다.
지금 이 순간, 낯선 장소에서 크리스마스 재즈를 들으며 글을 쓰고 있는 나.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까.
이번 여행이 어떻게 흘러가고 또 어떻게 마무리될지 모른다.
그러나 그 ‘모름’ 자체가 여행의 묘미이고, 나를 설레게 한다.
충전된 에너지를 가득 안고 돌아가면
그 힘을 내 일상에서 또 잘 나누며 살아가고 싶다.
그리고 다시 꿈꾼다.
또 다른 충전의 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