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가고 싶을 때의 나에게
이직한지 한 달이 되었다.
이전 회사에서 이미 만들어진 제품을 고도화 하는 역할을 약 3년동안 했으니, 아직 시장에 나오지 않은 제품을 만드는 역할을 도전해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도메인도, 고객도, 사람도 익숙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 제로투원을 만들어내는 일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어렵고 고통스러웠다. 내가 고객과 시장에 대해 알아가는 속도보다 결정해야할 사항이 늘어나는 속도가 더 빨랐고, "나따위가 이 정도 규모의 일을 해낼 수 있을까, 사람들이 나를 너무 ㅈ밥으로 보지 않을까" 하는 초조함에 많이 울기도 했다.
성과를 내서 동료에게 신뢰를 얻어야만 회사가 편해지는 내 성격과,
지금의 제품이 출시되어 빛을 보기 시작하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사실을 감안했을 때,
어쪄면 나는 좀 오랫동안 불안하고 막막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포기하지 않아야만 하는지, 도망가지 않고 끝까지 해내야만 하는지 글로 남기려한다.
불안함에 빠져 흐린 판단을 하려고 할 때, 이 글이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라 믿으며 -
1.제로투원은 고객에 대한 이해가 가장 치열하게 요구되는 환경이다.
잘 만들어진 플랫폼 안에 서비스 하나를 개선할 때는, 해당 서비스를 사용하는 고객만 만족시키면 그만이었다. 강남언니의 검색 PO를 할 때는 강남언니에서 "검색"을 하는 고객의 의도에 맞는 서비스를 만들면 되었으니까.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어야 하는 지금은, 애초에 이 플랫폼을 누가 쓸지부터 고민해야한다. 그리고 회사는 자선사업을 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회사에 이익을 가져다 주는 고객은 어떤 고객인지 더 좁혀야한다.
그렇게 좁혀낸 고객들은 현재 자신의 니즈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무엇이 불편하며, 그 불편함을 어떻게 해소해줄지를 각 기능마다 충실히 생각해야 하는 것이 제로투원을 만들어내는 PO가 해야할 역할이다.
고객이 누구인지 정의하고 그들의 니즈를 빠르게 캐치해 낼 수 있는 PO일수록 시장에 큰 임팩트를 가할 확률이 높다. 그리고 나는 그 능력을 부지런히 연습하고 키워나갈 수 있는 환경에 있는 것이다.
2. 제로투원을 회사 밖에서 했을 때 보다 회사 안에서 했을 때 성공할 확률이 더 높다.
특히 토스사람들과 함께라면 더 높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일만 할꺼면 니 사업 직접하지 뭐하러 회사에서 해?" 라는 말을 하지만, 온전히 제품의 성공과 나의 역량만 놓고 본다면 나는 회사안에서 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회사 밖에서 나 홀로 제로투원의 서비스를 만들어 낸다면 사람을 모으는것, 비용을 집행하는 것 등 고객과 제품외에 에너지를 써야 할 영역이 너무 많다. 또 실제로 어렵게 사람을 모았다고 한들, 역량이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할 확률도 높지않다. (능력좋은 사람들이 더 큰 돈 받을 수 있는 곳에서 하지 왜 나랑 일하겠어?)
하지만 회사는 역량이 검증된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특히 인재밀도가 높은 토스팀이라면 더 그렇다. 각 분야에서 뛰어난 역량의 사람들과 함께 했을 때 나는 더 고객에게 집중할 수 있고, 제품이 성공할 확률은 더 높아진다.
냉정하게 말해서, 좋은 회사에서 뛰어난 동료들과 함께하면서도 힘들어서 도망갈 사람이라면, 나홀로 해서 어떻게 성공할 수 있을까.
3. 가치가 높은 일 중 쉽게 이뤄낼 수 있는 것은 없다.
즉 큰 변화를 만들어내고 싶다면, 힘들어서 도망가고 싶어도 도망칠 곳이 딱히 없다.
이직할 때의 마음을 되새겨 보면, 임팩트가 큰 일을 할 때 필요햔 역량을 밀도있게 쌓을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그래서 업계가 비슷한 커머스라도 그간 도전해보지 않았던 분야, 아니면 지금의 토스처럼 아예 다른 산업군으로 지원했다.
고려해보면 임팩트의 크기가 중요한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했던 일들 중 쉬운 선택지는 없었다. 힘들어서 다른 길을 택한다 하더라도, 그 길도 결코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누군가는 뭘 그렇게 다짐할 필요가 있어라고 비웃을 수 있겠지만,
나는 스스로 포기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확실할수록 오랫동안 이 도전을 할 수 있을것이라 생각한다.
자신감이 없고, 주눅들어 있고, 벅차다고 생각하는 순간들을 마주했을 때
잘하고 싶고, 성장하고 싶은 내 자아가 끝까지 이겨냈으면 좋겠다. 이겨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