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묘 입양 이야기 1편
2020년 2월 2일
그날은 유독 숫자 2와 인연이 깊은 날이었다.
나는 몇달 전부터 고양이에 빠져있었다. 내 유튜브 피드는 고양이 관련 영상으로 가득찼고, SNS에서 소위 말하는 '스타 고양이'들을 팔로우하고 있었다. 나는 나중에 언젠가 고양이를 키우게 되면 꼭 키우고 싶은 품종도 정해놓았다. 내가 좋아하는 동그란 외모, 초롱초롱한 눈, 통통한 몸매의 소유자인 스코티쉬폴드가 딱이었다.
2월 2일 오전, 입버릇처럼 '고양이 키우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산 나에게 남자친구는 문득 '고양이 보러가지 않을래?' 라고 넌지시 물었다.
"갑자기? 어디로?"
"유기동물 보호소에 가서 우리가 찾던 그런 고양이가 있는지 봐보자. 분양비용도 적게들고 너가 워낙 좋아하니까 한번 보고 오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그냥 구경만 하다 와도 되니까 부담은 갖지 말고."
막연히 생각만하다가 직접 가서 고양이에 대한 내 마음을 확신할 수 있겠다 싶어 그러자고 했다.
잠깐 사이에 인터넷으로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브랜드 인지도가 있는 유기동물 보호소를 발견해 발걸음을 옮겼다. 불쌍한 동물들이 따뜻한 보호자의 손길 안에서 커가는 그림을 상상했던 나는, 보호소 앞에 도착하자마자 눈을 의심했다. 펫샵과 다를바 없이 꾸며진 으리으리한 외관, 손바닥 두개만큼의 진열장 안에 갇혀 있는 작고 귀여운 생명체들. 거기 있는 동물들도 물론 귀여웠지만, 이왕이면 버림받거나 아픔이 있는 아이들을 돌보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직원에게 유기동물은 어디에 있냐고 물었더니 지하 1층으로 가면 된다고 일러줬다.
'유기동물 보호소라고 하더니 정작 유기동물은 지하에? 아무래도 장사를 해야해서 그렇겠지...'
유기동물을 진정으로 아끼지 않는듯한 느낌을 받아 기분이 약간 상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다시 돌아갈수는 없었다. 직원의 안내를 받고 지하 1층으로 들어갔다.
코를 찌르는 냄새가 제일 먼저 나를 반겨주었다. 태어나서 처음 맡아보는 정말 지독한 암모니아 냄새였다. 1평 남짓한 방에 고양이 6마리가 살고 있었는데, 환기도 되지 않고 햇빛도 들지 않아 완전히 꽉 막힌 방이었으니 그동안의 대소변 냄새가 그대로 방에 베어있었다. 너무 강력한 냄새에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가 조금 시간이 지나서야 고양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4남매의 코리안숏헤어 치즈고양이(흔히 황토색 털을 가진 고양이를 치즈고양이라고 부른다)였다. 그중에 두마리가 캣타워에서 내려와 나와 내 남자친구 주위를 빙빙 돌았다. 아주 작은 소리로 냥냥 거리던 고양이는 오랜만에 찾아온 사람이 반가운듯 했다. 초롱초롱한 눈과 푸석푸석한 탈, 겨울인데도 헬쓱한게 티날 정도로 얼굴 살은 홀쭉했다. 한마리는 아예 내 앞에서 벌렁 드러누웠다. 고양이의 행동에 대해 무지했던 나는 직원에게 물어봤다.
"얘가 지금 갑자기 누웠어요. 왜 눕는거에요?"
"친근감의 표시에요. 원래 고양이들은 경계가 심해서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안눕는데... 아무래도 이전 보호자님도 여자분이셨는데 목소리가 비슷하셔서 친밀하게 느끼나봐요."
원래 고양이들이 안그런데 나한테만 이렇게 애교를 부리는게 너무 신기했다. 나를 유독 따라다니고 내 주위를 빙빙 도는 고양이가 내 마음 한 켠에 자리잡았다. 이렇게나 사람을 좋아하는데 또 다시 외롭게 남을고양이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이 아이 제가 입양하고 싶어요."
나도 모르게 덜컥 입 밖으로 내뱉었다. 정말 그러고 싶은 마음은 충분했다. 진심이었다. 하지만 그 뒷감당을 어찌할지 깊게 생각해보지 않고 내뱉은 말인 것도 분명했다. 이말을 듣자 직원은 새로운 제안을 했다.
"혹시 한마리만 데려가지 마시고 두마리를 입양해보는건 어떠세요? 직장 다니시면 집을 비우는 시간이 거의 12시간정도는 되는데 혼자 지낼 아이를 생각해서라도 두마리가 좋을 것 같은데요. 이 아이들이 워낙 사이도 좋고 계속 함께했던 아이들이라 낯선 환경에 적응도 잘 할거고, 보호자님도 부담이 덜 할거에요."
고양이를 처음 키워보는 내가, 한마리도 아니고 두마리를 입양한다고?
처음에는 말도 안된다 생각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한마리만 하루종일 내 방에 두기에는 너무 미안한 마음이 클 것 같았다. 고양이를 위해서라면 두마리가 맞겠구나 싶었다. 내 앞에 벌렁 드러누웠던 고양이와, 남자친구를 졸졸 따라다니던 고양이. 이렇게 두 마리를 입양하겠다고 직원에게 말했다. 그리고 바로 계약서를 쓰고 책임비 입금을 했다. 고양이는 내일 데려가기로 했다. 아직은 고양이 물품이 하나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오늘은 물건부터 사야했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은 펫마트 5여군데를 돌면서 고양이용 화장실, 사료, 모래, 장난감, 캣타워, 스크래쳐 등 모든 것들을 장만했다. 이 모든 것이 단 하루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2020년 2월 2일, 나는 덜컥 2마리의 고양이를 입양했다.
이렇게 나처럼 대책없이 입양 계약부터 하면 안된다. 혹시나 나처럼 하는 사람이 있을까봐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다. 고양이에 대해 충분히 공부하지 않고 이렇게 입양을 쉽게 결정해버리면 고양이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문제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몰라 입양을 후회하기 쉽상이다. 나 역시 그랬던 적이 많으니까.
그래서 1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키우고 있느냐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주 잘 키우고 있다!
누구보다 행복하고 소중하게 말이다.
다음 편부터는 내가 덜컥 입양한 고양이를 키우면서 어떤 시행착오가 있었는지, 이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에서 뭘 느꼈는지를 진솔하게 써내려갈 예정이다.
나는 그렇게 고양이 엄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