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인사이드 아웃 2 - 핵심신념
작은 아이는 6월 모의고사를 봤습니다. 수시에 집중하고 있어 일단 모의고사는 마음을 내려놓자고 했으나, 과목마다 등급 편차가 심해 조금 불안합니다. 일단 기말고사에 집중해야 합니다. 이래저래 수행과 세특 준비로 바쁘기도 합니다. 1학기가 마무리되고, 본격적으로 방학이 시작되면 수능 준비를 하자고 약속했습니다. 시간이나 공부의 양이 부족할 것 같습니다. 이러니 재학생들에게 수능은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서서히 종강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벌써 한 학기가 끝나가고 있네요. 일단 수요일에 공휴일이 많아 못했던 수업을 보강하고 있습니다. 전공인 ‘자기표현 글쓰기’에서는 기말 시험 대체로 자기를 표현하는 7~10분 영상을 제작하고 발표하는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영상 속에 자신을 담아내고 있는 학생들의 창의력을 봅니다. 작년부터 진행한 이 수업에서 저는 많은 것을 얻습니다. 그림으로 또는 사진이나 브이로그 형식의 영상을 보면서 한 학기 동안 학생들이 자신에게 몰두한 결과를 봅니다. 각자의 개성이 묻어난 영상을 보면서 한 학기 동안 함께 했던 한 명 한 명을 떠올립니다. 물론 평가를 하기 위해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특히 자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새롭게 쓰고 있는 학생들이 앞으로 이 수업을 계기로 긍정적으로 거듭났으면 좋겠습니다. 종강 멘트를 좀 더 임팩트 있는 내용으로 하기 위해 고민합니다. 이 수업은 자기를 표현하는 과정을 통해 치유, 성장과 함께 진정한 자기를 찾고 ‘자기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수업 날, 학생들의 기억에 남을 만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는 생각에 고민이 깊어집니다.
지난주에는 친정어머니의 생일이 있었습니다. 대청호가 보이는 분위기 좋은 브라질 식당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었습니다. 올해는 이래저래 형제들이 다 함께 하지 못하고, 남편도 참석하지 못해 막내 식구들과 애기들 그리고 저와 작은 아이만 참석했습니다. 음식도 맛있었지만, 주변 경치가 더 맛을 돋우어 주었습니다. 경치에 홀딱 반하고 말았네요. 비가 그친 후 대청호의 풍경은 말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었습니다. 아마, 저에게 시적 능력이 장착되어 있었다면 그림 같은 시 한 편이 나왔을 텐데 재능의 한계를 느낍니다.
막내와 올케가 준비한 이벤트에 어머니는 함박웃음이 됩니다. 선물이라면서 내민 보약상자 안에서 현금 다발이 쏟아집니다. 역시 최고의 선물은 현금입니다. 제가 사드린 멋스러운 블라우스는 빛이 바래고 말았네요. 그래도 다행입니다. 중년의 나이가 되고 보니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때로는 서글픈 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그러니 어머니는 더 그러시겠지요. 그 마음을 잘 알기에 어머니가 오늘만이라도 그냥 즐거우셨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금요일 저녁, 우리 가족은 영화 ‘인사이드 아웃 2’를 관람했습니다. 고3 이의 기말고사가 코앞이어서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으나, 수험생이 봐야 한다는 말에 예매를 했습니다. 보강 수업을 끝내고 간단히 저녁을 먹은 후 영화관으로 향했습니다.
인사이드 아웃 1편을 재미있게 봤습니다. 특히 심리학을 공부하고 있는 필자에게 마음속 감정들을 다루고 있는 이 영화는 정말 매력적입니다. 영화는 항상 속편이 전편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험을 많이 했기 때문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2편도 정말 96분의 러닝타임 동안 몰입해서 봤습니다. 메시지와 주제 의식을 전달하기 위해 감정들의 이야기를 구체화하는 과정은 전편을 뛰어넘은 속편이라 칭송할 만했습니다. 작은 아이는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립니다. 자신의 상황과 동일시가 된 모양입니다.
영화는 주인공 라일리가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하키부 캠프에 들어가 고군분투하고 있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 ‘좋은 아이’라고 생각했던 신념이 ‘나는 부족하다’라는 신념으로 바뀌면서 불안이 라일리의 모든 것을 장악합니다. 작은 아이는 이 상황이 본인과 매우 비슷하다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성취도 있었지만 본인이 원하는 만큼 성적이 나와 주지 않을 때마다 겪었을 무수한 실패경험은 아이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을 겁니다.
큰 아이도 작은 아이도 크게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고 느리지만 자신들의 길을 잘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매일매일 이 과정을 겪어내야 하는 길 위에서 아이들이 느끼는 불안은 그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불안은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정서입니다. 어느 정도의 불안은 상황에 대비하도록 하고 적절한 수행을 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러나 불안으로 인한 긴장이 고조될수록 정서적인 각성 수준이 높아지면서 오히려 수행 능률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위협에 대처할 수 있는 자아 능력이 취약하거나, 자극의 강도가 강할 때 누구든지 불안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불안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적절히 다루어나가지 못한다면 삶은 불행으로 치달을 수 있습니다. 강렬한 형태의 불안을 경험할 경우에는 통제 불가능한 두려움과 공포에 의해 압도되는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특히 인지심리학에서는 이러한 불안이라는 감정이 상황을 바라보는 생각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는 핵심 신념과 관련이 있습니다. 즉 주인공 라일리는 ‘나는 좋은 사람이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밝은 모습으로 어려운 친구를 도와주기도 하고, 새로운 환경에서 친구들도 만들 수 있었다. 엄마 아빠에게는 사랑스럽고 무엇이든 잘하고 열심히 하는 딸이었습니다.
그러나 고등학교 진학이 결정되었다는 친구들의 고백을 듣는 순간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이번 캠프에서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아 반드시 고등학교 입학에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불안은 가중됩니다. 이 불안은 ‘자신은 부족하다’라는 왜곡된 신념에 의한 것입니다. 이러한 신념이 자리한 이유는 그동안 자신이 겪었던 많은 실패 경험들이 쌓였기 때문이지요. 특히 경기 중 반칙으로 퇴장당했던 경험은 라일리가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느끼도록 만들었고, 이로 인해 자기 효능감을 저하시킨 것입니다.
영화의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진정한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이고 좋은 감정으로만 살아갈 수 없습니다. 불안 역시 우리가 삶에 적응해 나가기 위해서는 필요한 감정입니다. 이러한 감정을 외면하지 말고 가만히 들여다볼 수 있는 자기 인식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내면을 잘 들여다보고 통제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물론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장통과 같은 이런 과정이 전제되어야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도 이러한 핵심신념의 변화입니다. 그리고 본인들이 겪고 있는 일이 모두의 고민이라는 것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스로 부족하다 생각하고 있다는 것, 그러나 여기서 머물지 않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면서 살고 있다는 것을 말이지요. 이 과정을 거쳐야 좀 더 괜찮은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말해 줍니다. 엄마가 쓴 블로그와 브런치 글을 읽으면서 좀 더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주인공 라일리처럼 우리 아이들도 힘든 과정을 잘 극복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최근 들어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이만큼 충만한 경험도 드물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