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soo Kim Jul 11. 2021

변호사가 상대방과 격하게 공감할 때

숨기고 싶은 비밀

변호사들을 힘들게 하는 의뢰인들이 있다.


변호사를 힘들게 할 뿐만 아니라 변호사들의 심정을 극한으로 몰고 가는 분들인데,


오로지 자신의 주장만을 고집하는 분들이 첫 번째 유형이다.


이런 분들은 변호사가 아무리 법률적으로 조언을 해도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이 우선이고, 변호사가 애써 이야기를 추려 놓으면,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변호사가 쓰는 법률서면에 다 쓰라고 한다.


그런 말은 그 사건과 법률적으로 아무 관련이 없기 때문에 그 걸 써 놓으면 읽는 판사의 화만 돋울 뿐만 아니라 판사의 집중력을 흩트려 놓아서 막상 변호사가 제대로 쓴 주장마저 판사가 흘려듣게 만드는데도 말이다.


주위 모든 사람들을 의심하는 분들은 두 번째 유형이다


일단 주위 사람들을 모두 의심하기 때문에 사건에 관계한 경찰도 의심하고 검사도 의심하고 판사도 의심한다. 의심병이 있기 때문에 경찰이 한 일 검사가 한 일 다 확인해 달라고 해서 변호사가 할 일이 많아질 뿐만 아니라, 의심을 당한 경찰 검찰 판사들을 적으로 돌려 의뢰인의 입지가 위태롭게 된다.


정말 까다로운 사람들은 세 번째 유형이다.


모든 일에 완벽을 기하자는 게 나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은 완벽하지 않으면서 남에게만 선택적으로 완벽할 것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참 어렵다.


물론 가장 어려운 분들은 이 세 가지 유형을 모두 갖춘 분들이다.


한 가지 절기를 갖추기도 힘든데 세 가지 절기를 모두 갖춘 분들을 만나면 변호사의 마음도 점점 무녀 져 가고 심성은 피폐해진다.


그러다 보면, 의뢰인의 상대방의 심정이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변호사로서는 정말 큰 일이자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자신도 모르게 상대방의 주장에 동조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저 쪽으로 편을 바꿔 붙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 이후 변호사의 마음과 몸은 따로 놀게 되고, 변호사는 정신이 녹아내리며 분열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혼소송에서는 상대방 배우자가 측은하게 느껴지고, 형사소송에서는 피해자와 검사의 입장에 공감하게 된다. 


변호사만 힘들고 다 끝날 노릇이면 사실 이게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정말 위험한 건 이런 분들이 자신의 운명도 구렁텅이로 몰고 간다는 사실이다.


의뢰인 중 아무리 말을 해도 자신의 말만 반복하는 할머니가 있었다. 그 할머니가 다른 할머니를 밀치고 그 할머니가 넘어지면서 8주의 상해를 입은 것이 증거기록상 명백한데, 그 할머니는 자신이 밀친 적이 없다고 끝까지 고집했다.


기록상 나타나는 사실이 그게 아니라고 수 차례 경고를 했지만, 할머니는 요지부동이었고 게다가 상대편 피해 할머니가 거짓말 장이라고 법정에서 적극적으로 주장해달라고 변호사에게 요청을 했다.


변호사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할머니의 아들을 변호사 사무실로 데리고 오라고 했다. 변호사가 설명해주고 아들이 말려주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 할머니는 아들도 말릴 수 없는 분이었다. 결국 변호사는 법정에서 할머니가 원하는 대로 그대로 변론을 했다. 할머니는 법정 바깥으로 나와 변호사의 손을 잡으며 연신 고맙다고 했다. 속이 너무 시원하다면서


변호사는 직업병상 이렇게 조용히 할머니에게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도움이 안 되실 수 있어요, 그럴 것 같습니다.' 할머니는 단호하게 한 마디 덧붙였다. '아니에요. 정말 잘 변론하셨어요. 이렇게 해 주셔서 정말 좋습니다.'


할머니는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2주일 후 선고기일에 실형을 받고 법정 구속되었다.


변호사가 보기에 시인하고 치료비라도 주었으면 구속될 일이 없는 사안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변호사를 용서하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