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을 듣는 당신의 기분은 어떠신지?
이런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내가 듣게 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꿈에서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그 말을 듣고 나서, 두 손이 묶인 후 차디찬 감방 안에서 절망하는 사람들이 있다.
빌린 돈은 갚지 못한 죄로 이런 말을 듣게 되는 사람들은 차라리 낫다. 물론, 돈을 빌렸다가 갚지 못했다고 해서 다 사기범이 되는 것은 아니다. 돈을 빌릴 때 돈을 갚을 의사나 능력이 있었던 사람은 민사상 채무불이행 책임을 질 뿐, 사기범이 되지는 않는다.
돈을 빌릴 때 갚을 의사가 없었거나 갚을 능력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엣다 모르겠다.'라고 돈을 빌린 사람만 사기가 된다. 그러면, 돈을 빌릴 때 돈을 갚을 의사 나 능력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어떻게 아나? 그건 돈을 빌릴 당시 채무자의 경제형편을 실사해보고 판단하게 된다.
빌릴 당시에 틀림없이 갚을 전망이 확실했을 때(받을 수 있는 돈이 확실히 있었거나, 확실한 사업 진행 중 단순한 일시적 자금경색을 만난 경우라든가. 우선 목돈이 필요했지만 지속적 수입이 있어서 갚을 전망이 확실한 경우 등)는 무죄가 되고, 그렇지 않으면 유죄가 된다.
그런데, 돈을 빌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빌릴 때 이런 전망이 불확실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결국 돈을 갚지 못하면 사기로 기소되고 유죄 판결까지 받게 되는 경우가 아주 많다.
그래도 남의 돈을 빌렸다가 갚지 못해서 사기죄로 기소된 사람들은 경찰로부터 사기범이라는 소리를 듣고 재판을 받게 되어도, '남의 돈을 갚지 못한 게 죄지요.'라고 말하면서 그 처지를 담담히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런데, 남의 돈을 빌린 것도 아니고 자기도 사기범에게 속았을 뿐인데, 경찰이 쫓아오고 1억 원이 넘는 빚을 갚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면 어떨까? 도대체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뭔 이상한 소리를 하느냐고?
오늘의 이야기는 그렇게 하늘에서 떨어진 벼락을 맞은 사람의 이야기이다. 시골교회 목사님이 계셨다. 시골 교회에서 한 평생을 목회활동에 바치셨고, 한 권의 목회활동 책도 쓰셨으며, 시골 교인들의 감사와 성원 속에 목회활동을 마치시고 은퇴한 목사님이시다.
막상 은퇴를 하시고 나니 목사님은 깊은 허전함을 느끼셨다. 원래 농사짓는 일을 좋아하시던 분이어서 농사일을 해 보려 하셨는데, 농사일을 아무리 해도 적자였고 농지가 협소해서 농사일 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목사님은 대출을 받아 영농자금으로 쓰려고 했는데, 다른 사람들을 쉽게도 잘 받는 영농자금을 받는 것이 목사님께는 너무 어려웠고,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것도 목사님께는 너무 어려웠다. 평생 소득활동이라고는 시골교회에서 주는 목회비밖에 없었는데 그 정도 금융거래 실적만으로는 대출을 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목사님이 그렇게 대출에서 어려움을 겪던 중, 어떻게 알았는지 00 은행에서 전화가 왔다. 대출이 필요하시냐는 말이었고 목사님은 선뜻 대출을 해준다는 말이 너무 고마웠다.
00 은행에서 하는 말은 '신용거래 내역이 너무 없으셔서 원하는 대출을 당장 받기는 어렵다. 실적을 쌓으셔야 한다.'라고 했고, 목사님이 '돈이 없는데 어떻게 실적을 쌓느냐'라고 했더니, 00 은행 00 과장은 '월급이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것만으로도 실적이 되니까, 돈을 넣었다 뺐다 하라.'라고 가르쳐 줬다.
목사님은 '은퇴했는데 넣었다 뺐다 할 돈이 어디 있느냐.'라고 했고, 00 은행은 고맙게도 '사정이 딱하시니 도와드리겠다. 통장번호를 가르쳐 주면 우리가 돈을 넣었다 뺐다 해 주겠다. 믿고 도와드리는데, 넣었다 뺐다 하는 돈은 남의 돈이니까 통장에 돈이 들어오면 우리에게 꼭 전달해주어야 한다. 중간에 남의 돈을 잃어버리거나 돌려주지 않으면 큰 일 난다.'라고 당부를 했고 목사님은 '그럴 일은 전혀 없으니 걱정하지 마시라.'라고 시원하게 대답을 했다.
목사님은 실적을 올려 대출이 가능하게 해 준다는 고마운 사람들의 당부를 충실히 따랐고, 자신의 계좌에 들어온 돈을 찾아 상자에 차곡차곡 넣어서는 택배로 00 은행 00 과장에게 보내주었다. 감사의 인사를 담아서 자신이 재배한 당근까지 덤으로 듬뿍 넣어서, 그렇게 보내주었다.
그렇게라도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어서였다. 택배를 보낼 때 상자가 필요하자 목사님은 아들이 자신에게 보내준 택배 상자를 그대로 재활용해서 썼다.
그런데, 목사님의 대출을 도와주겠다던 00 은행 00 과장은 있지도 않는 사람이었고, 실제로는 보이스 피싱 일당 중 한 명이었다. 이 놈은 보이스피싱을 당한 피해자들에게 송금할 계좌로 목사님 계좌를 알려주었고, 아무것도 모르는 목사님은 보이스 피싱당한 피해자들의 돈이 입금되자 그 돈을 00 은행 00 과장에게 택배로 그때 그때 보내주었는데, 보이스피싱 일당은 피해자들의 피 같은 돈을 목사님의 같이 부쳐준 당근과 함께 꿀꺽꿀꺽 삼키고 있었던 것이다.
보이스피싱 피해 신고가 되자 경찰이 수사를 시작했고, 경찰은 보이스 피싱 일당에게 보내진 현금이 들어있는 사과상자를 찾았고, 그 택배로 보낸 사과상자에 쓰여있는 목사님의 주소지를 파악한 후, 목사님을 보이스 피싱 일당의 한 명으로 특정하고 목사님을 사기죄로 입건하였다.
경찰관과 검사는 목사님께 똑같은 말을 했다. "계좌로 들어온 돈을 현금으로 찾아서 부쳐준다는 게 말이 돼요? 보이스피싱 일당이 하는 뻔한 수법인데, 보이스 피싱이라는 것을 몰랐다는 게 말이 돼요?"
목사님이 보이스피싱 일당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나 피해자들이 보이스피싱 일당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나 다 똑같은 이야기였지만, 똑같은 이야기를 듣고 피해자는 돈을 부쳤고, 목사님은 받은 돈을 보이스피싱 일당에게 부쳐 주었다. 당근과 함께...
목사님이 당근과 함께 돈을 부칠 때 00 은행 00 과장은 목사님에게 부칠 돈 중 10만 원은 수고비 겸 차비로 빼고 보내시라고 해서 목사님은 그렇게 했는데, 경찰은 바로 그 10만 원이 보이스피싱 일당으로서 목사님이 받은 이익이라고 했다.
목사님은 사기죄로 기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