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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soo Kim Jul 09. 2021

그 놈 목소리

그 놈 목소리

어디서 들어본 날이다. 물론 좋은 뜻으로 쓰이는 경우는 없다. 그 놈 목소리는 항상 전화로 들려온다.


그 놈 목소리를 들은 사람치고 놀라지 않는 사람은 없다. 손발이 떨리고 가슴이 쿵쾅거리고 목소리가 갈라진다. ‘네 ? 뭐라고요? 제 개인 정보가 유출되었다고요?’


그런데, 요즈음은 그 놈 목소리가 전혀 사납지 않다. 첫 만남은 달콤하기까지 하다. ‘아, 대출을 알아보고 계시는군요. 저희가 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그 달콤한 목소리를 계속 듣기 위해서는 할 일이 있다. 디지털 시대에 걸맞게 대출 실행을 위한 앱을 깔아야 한다. 물론 그 목소리를 듣기도 전에 앱을 깐 분들은 더 많다.


일단 그 앱을 깔고 나면 그 분의 세계에서 벗어날 분은 없다. 여러 사람들을 부지런히 만났는데 다 그 분의 친구들이다. 부처님 손바닥 안의 손오공처럼 아니면 메이즈러너의 토마스처럼.


그 세계안의 목소리는 다 같다. 서로 다른 길 같은데 어느새 한 길로 모여있고 강이 갈리지나 싶었는데 푸른 바다로 합쳐진다.


‘네, 더 낮은 금리로 더 많이 대출해 드릴 수 있어요. 저희가 도와 드릴께요.’ ‘일단 대출받으시려면 기존 대출을 먼저 갚으셔야 되요.’


이렇게 반가울 데가 없다. 가뭄에 단 비라고. 숨이 곧 넘어갈 판인데 돈도 빌려주고 이자까지 싸게 해 준다니!!!


그런데, 목소리가 달콤한 건 딱 그 때까지만이다.


봄 바람이 지났으니 이제는 천둥과 번개다.

갚으려고 했던 기존 대출 은행에서 전화가 온다. ‘약정 기한전 해지는 불법입니다. 위약금을 물어야합니다.’ 검찰청에서도 전화가 온다. ‘불법 금융업체와 관련되셨군요. 조사를 받아야 합니다’ ‘어허 지금 수사중인데 어디를 가시려구요. 전화 끊지마세요.’


이쯤 되면 전화받은 분의 정신은 어디로 가출하고 없고 그 분의 목소리대로 손 발이 움직인다. 졸지에 불법자산이 된 자산의 돈을 안전하고 합법적인 곳으로 예치하기 위해 급하게 지하철 역 등의 물품보관소로 달려간다. 그 분이 시키는대로 아무도 모를 비밀번호를 자기가 설정하고 소중한 돈을 잘 모셔 놓는다.


물론 그 지하철 역의 물품보관소는 물건을 넣어둔 사람이 비밀번호를 잃어버려 물건을 못 찾아갈 위험이 있기 때문에 맡길 때 입력하는 맡긴 사람의 휴대폰으로 비밀번호를 전송해 준다.


물론 그 분은 앱을 통해서 맡기신 분에게 온 문자를 잘 보고 계신다. 그리고 그 돈이 행여나 없어질까봐 재빨리 찾아서 아무도 찾지 못하는 그 분의 비밀 장소에 꼭꼭 숨겨두신다


그 비밀 장소는 보통 바다 건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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