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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수 Mar 01. 2021

죽음에 대하여

죽음은 퍽 슬프다. 소중한 사람을 다시는 보지 못한다는 의미니까. 하지만 나 자신의 죽음만은 그렇지 않다. 죽음이 슬프지 않다. 두렵지도 않고, 딱히 피하고 싶지도 않다. 주변 사람들이 들으면 놀랄 말이다. 그래도 뭐, 생각을 바꿀 생각은 없다.


나는 차라리 삶이 두렵다.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건 분명 행복한 일이지만, 동시에 힘든 일이다. 발버둥 쳐도 변하지 않는 오늘에 힘들고,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내일에 또 힘들다. 내 말 한마디와 행동 하나가 사람과 세상에 어떤 크기로든 미칠 영향이 무섭다. 어색한 동료와의 대화 주제를 찾는 일, 조금만 청소하지 않아도 쌓이는 먼지와 머리카락을 치우는 일, 보행자 신호에도 거침없이 들어오는 우회전 차량을 곁눈질하는 일. 침대에 누워 그날을 돌아보면 생각만으로도 지친다.


죽음은 삶의 무게를 내려놓을 수 있는 확실하고 유일한 방법이다. 죽음이라는 결과로 향해 가는 과정이 삶이다, 는 문장이 내게는 역설처럼 들리지 않는다. 어떻게 사느냐 만큼 중요한 게 어떻게 죽느냐다.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 그러니 이제 내게 남은 숙제는 남겨진 이들의 슬픔이다.


호상은 없다고들 한다. 하긴 어떻게 사람이 죽었는데 그 앞에서 웃을 수 있을까. 그렇지만 나는 내 장례식에서 사람들이 슬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만나는 자리에서 마지막으로 생기는 감정이 나를 기억하는 수식어가 되지 않을까? 웃지는 못하더라도 울리고 싶지는 않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원인을 찾았다. 장례식을 안 하면 되겠다! 그리고 또 한 번, 남들은 해괴하다고 말할 생각이 떠올랐다.


장례식 대신 전시회를 열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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