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기자를 준비했다. 논술 강의를 듣고 카메라 테스트도 연습했다. 지금은 아쉽지만 꿈을 접었다. 계기는 두 가지 회의감이었다. 첫 번째는 언론사라고 해서 팩트를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사실 팩트는 환상 속 동물과도 같다. 말 한마디에 따라, 영상 편집에 따라 얼마든지 가치관이 개입된다. 두 번째는 언론사만 언론 기능을 수행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유튜브를 비롯한 SNS나 각 분야 전문가의 글 등이 권력을 견제하고 여론을 형성하는 데에 더 효과적일 때도 있다.
다큐멘터리는 영화에서 특이한 위치를 지닌다. 다큐멘터리 영화를 접한 관객은 일반 극영화를 볼 때와는 다른 스탠스를 보인다. 작품 속 이야기가 진짜라고 가정하고 감상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다큐멘터리도 감독이 있고 각본이 있고 주연이 있다. 글쓴이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는 수필이 비문학이 아닌 문학에 포함된다. 다큐멘터리도 결국 영화이고, 실제 현실과는 어떠한 형태로든 다르다.
하나의 사건을 오랜 시간 취재하여 많은 분량으로 담아내는 탐사보도는 언론의 꽃이라 불린다. 탐사보도에 다큐멘터리 영화는 꼭 들어맞는다. 뉴스라는 타이틀이 아니므로 팩트 강박에 빠질 필요가 없다. 동시에 영화이므로 수용자의 진입장벽이 낮아 여론의 반향을 일으키기 좋다.
탐사보도 다큐멘터리인데 영화적 재미까지 충분하다면 금상첨화다. <이카로스>는 여기에 운도 작용했다. 원래는 사이클 선수의 약물복용 실태를 담는 게 목표였다. 재밌게도 (동시에 무섭게도) 감독이 직접 약물을 투약받으며 사이클 경기에 참가한다. 그런데 스포츠와 약물에 대한 취재를 하던 도중, 러시아 사람 한 명을 소개받는다. 놀랍게도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러시아 국가대표팀의 약물복용을 총감독하던 간부였다.
사이클 종목 실태 고발에서 러시아 정부 차원의 조직적 약물복용까지. 영화는 먼지 한 톨을 털었는데 집이 무너져내리는 걸 가감 없이 담았다. 속된 말로 얻어걸렸다. 하지만 마냥 운이 좋았다고 치부할 수 없다. 작은 문제를 파서 큰 문제를 뿌리째 뽑는 게 탐사보도의, 언론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영화가 언론의 빈틈을 잘 메웠다. 아니, 말에 어폐가 있다. 언론이 언론의 일을 잘했다.
<이카로스>
2017, 15세 관람가
감독: 브라이언 포겔
출연: 브라이언 포겔, 그리고리 로드첸코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