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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수 Mar 05. 2021

소장품 2: 레고



스물아홉 번째 생일에 산 레고다. 해리포터 시리즈 중 하나인데, 킹스 크로스 역 9와 3/4번 정거장에 호그와트 급행열차가 들어오는 걸 재현했다. 최애인 해리포터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장면이다. 용산 아이파크몰 레고 매장에서 구매했다. 안양까지 4호선을 타고 오는 동안 명품을 손에 넣은 듯 혼자 얼마나 으스댔는지 모른다.


레고는 대부분의 부모에겐 비싼 장난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브릭을 삼킬 위험이 크고 한번 어지르면 정리가 어렵다. 무엇 보다 밟으면 극상의 고통을 선사한다. 단점이 꽤 많지만 결국 레고 구매를 망설이는 이유는 가격이다. 어린 시절 내 눈에도 망설일만한 가격이었나보다. 부모님께서 내게 무엇을 사주려 치면 ‘가정 경제는 괜찮아요?’ 따위의 소름 돋는 애늙은이 소리를 했더랬다.


사실 가정 경제가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물론 부모님의 노력과 희생 덕이었다. 생일이나 크리스마스에는 소소한 플렉스를 할 수 있었음에도, 나의 사회 인식이 지나치게 예민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뉴스 시청을 즐겼다. 마침 당시 뉴스는 IMF로 시작된 경제 위기였다. 경제 관념이 어렴풋이 잡혔고 빠르게 동심을 밀어냈다.


텐텐을 대용량으로 사다 놓거나 카레에 당근 대신 고기를 왕창 넣는,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한 이야기를 자주 접한다. 그러니까 스스로 생일 선물로 삼은 레고는 일종의 회자정리다. 본의 아니게 잃어버린 동심을 찾고자 했다. 몸만 어른으로 자란 나를 기초부터 다지는 작업이다. 단순히 자격지심의 발로는 아니다. 동심은 생각보다 효용성 있다. 돌아오는 서른 번째 생일이 벌써 기다려지는 건 안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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