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5일에 만든 첫 신용카드다. 사회초년생임에도 신용등급 2등급으로 시작하게 해준 장본인이자, 이번 달의 소비를 다음 달의 나에게 맡기는 악순환의 원흉이다. 이놈을 분양받을 생각은 원래 없었다. 사건은 공인인증서 때문에 찾아간 대학교 앞 은행에서 시작되었다.
공인인증서를 위한 인터넷뱅킹 신청은 은행으로선 남는 게 없다. 고객 유지 정도? 그러니 상품 권유가 이어졌다. 주택청약 적금 개설에서 새로 출시된 앱 설치로, 다시 신용카드 발급으로. 혜택을 들어보니 나쁘지 않았다. 물론 단점을 말하겠냐마는. 모르긴 몰라도 ‘카드 특별 추진 기간’이었을 게다. 신용카드라니 나도 진짜 어른이구나, 라는 들뜸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막상 받아보니 앞뒷면은 보라색, 옆면은 분홍색으로 취향에도 딱 맞았다(이건 약간 철없었다).
시간은 흘러 2019년 7월, 나는 은행원이 되었다. 인생 알 수 없다. 나는 기자가 되는 것에 조금의 의심도 없었다. 그래서 경제와 경영, 회계 어느 하나 적을 두지 않았다. 자연히 은행은 대척점에 있었다. 기자에서 삐끗하자, 그 연쇄작용은 대단했다. 실업난에 문과생 신분임에도 은행만큼은 모두 걸러 지원했다. 단 한 곳, 필기시험이나 면접전형 경험이나 쌓자고 한 곳에만 넣었다. 그리고 그게 붙었다.
이런 우스갯소리가 돌았다. 20대 남자는 카페에서 음료가 잘못 나오면, 그냥 묵묵히 마시거나 잘못 나온 줄 모르고 마신다고. 어김없이 실적 압박이 들어왔다. 은행 창구에 앉은 나는 나 같은 사람을 찾는 데에 열중했다. 보라 분홍 예쁜 카드를 기꺼이 받아 갈 나를 찾았다. 딱히 호구여서가 아니다. 하는 말이 다 맞고, 생각해보니 나쁘지 않았다. 좋은 게 좋은 거지 뭐. 해지 안 하고 유효기간 만료까지 부단히 쓰는 카드가 될지, 괜히 버리기 아쉬워서 간직하듯 처박아두는 카드가 될지, 누가 알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