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보험은 차곡차곡 들었다. 어릴 때부터 유지해온 상해보험, 내가 내 손으로 가입한 연금저축, 여자친구의 실적에 보탬이 된 실비와 암보험. 나는 은행원이었고, 여자친구는 지금 은행원이다. 이런 환경에서 보험 네 개면 양호한 편이다. 직업상 실적이 필요해 가입하기는 했지만, 앞으로도 유지할 만한 보험들이다. 계획대로 차곡차곡 잘 쌓았다.
나에게 보험은 무슨 의미일까? 질병과 상해에 대한 보장은 확실히 나를 위함이다. 병원비는 내 지갑에서 나가니까. 연금도 대체로 나를 위함이다. 내일의 나에게 언제까지 의존할 건가. 사망에 대한 보장은 남은 이를 위함이다. 빈자리에 대한 현실적인 대답이다. 조금이라도 편히 갈 수 있을 거다. 그래서 결국 또 나를 위함이다.
보험은 뜯어보면 참 신기하다. 팽팽한 고무줄을 양쪽에서 당기는 것 같다. 내가 낸 보험료로 저 사람이 보험금을 받는다. 저 사람이 낸 보험료로 내가 보험금을 받는다. 믿음의 고무벨트인 셈이다. 비합리적으로 보이지만 고무줄은 끊어지지 않는다. 돈의 논리 한쪽에 자리 잡은 상부상조 정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