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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소 Feb 15. 2024

머리 위 바다

우리는 매 순간 죽어간다

곳간에는 찹쌀이 물에 불려 있다. 떡을 하러 방앗간에 가는 날이었다. 할머니는 새벽부터 신이 나셨다. 인절미 쑥떡, 절편 두가지 종류의 떡을 세 박스 정도만든다. 명절이면 할머니는 떡을 몇 가지 해서 주변사람들 하나씩 나눠주는게 낙이었다. 가족들은 어차피 다 못 먹고 버리기 때문에 말렸지만, 그 누구도 감히 할머니의 즐거움을 뺏을 사람은 없었다. 방앗간 외출을 위해 할머니는 한 것 빼 입으셨다. 꽃이 만개한 상의에 화사하게 분홍색 모자도 쓰셨다.


 좌판 대는 형형색색의 떡들이 즐비해 있다. 알록달록 꿀떡, 검은콩이 박힌 노르스름한 호박떡,검은 팥이 흰 속살에 이불을 덮은 시루떡. 당일 날 즉석으로 만든 우리가 가져갈 떡도 제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쑥떡이 큼지막하게 잘려 나간다. 콩고물에 묻혀져 투명 비닐이 깔린 상자에 차곡차곡 담긴다. 방앗간에서는 한창 떡이 만들어졌다. 할머니 입가에 웃음꽃이 피었다. 그때 그 미소는 절대 잊혀지지가 않는다. 일년 후, 그녀는 꽃 가마를 타고 지상을 떠나버렸다.


 평일에 시간을 내어 한적한 시골집에 갔다. 그녀가 평생을 보낸 작은 어촌마을이다. 파도소리가 퍼지는 바닷가에 도착하자 갈매기 떼가 왜 이제 왔냐고 인사를 했다. 출발 전 복잡한 마음은 잊는다. 도착하자 넓게 펼쳐진 바다가 이 모든 상황을 특별하게 해준다. 특유의 비릿한 향 마저 도시의 아픈 기억을지워준다. 선착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고기잡이 배들이 각각 묶여있다. 지금 이 순간, 배는 가장 안전 할 것이다. 그게 배가 존재하는 이유는 아니지만, 지금 이 곳에 묶여있는 게 의미 없다는 것은 아니다. 거친 바다를 항해하는 것도, 정착해 있는 것이 꼭 필요한 시간 이니까.


 시골집 대문에 홀로 서있다. 문고리는 오래돼서 손잡이 색깔이 변색됐다. 쇠문을 당기니 까마귀가 우는 듯한 굉음이 났다. 발걸음을 옮기니까 마당에는 무화과나무가 서있다. 싱그러운 바람 사이로 열매가 보이는 데 먹음직스럽게 익었다. 조심스럽게 하나씩 따서 바구니에담았다. 명절 때마다 남은 떡을 담아 두었던 바구니다. 네 다섯 개를 따서 방안으로 들어간다. 실한 놈 하나를 잡아서 한 입 베어 문다. 새콤하고 달달한 과즙이입안 가득 퍼진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향긋함이 샘솟는다. 무화과를 먹다 보니까 그 바구니가 구석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게 보인다. 고개를 돌려 낡은 벽지를 응시한다. 갈라진 벽 틈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액자 속 그녀가 눈에 들어왔다. 방앗간을 갔던 그 날처럼 미소를 머금고 계셨다.  


 나뭇잎이 바람에 백구의 꼬리처럼 살랑 거린다. 따스한 햇살에 실눈을 뜨며 무화과 나무 앞에 그저 무심하게 다가가 본다. 잎사귀에 맺혀있던 냉랭한 이슬방울이 머리위로 떨어진다. 차가운 물방울에 순간 정신이 들어 머리를 치켜 들었다. 그 곳엔 파란 하늘이 바다처럼 펼쳐져 있다. 인생이라는 바다가 내 마음속에 파도처럼 일렁거린다.  


 소위 삶을 '살아간다'지만 결국 매순간 조금씩 '죽어가고'있는 것과 다름없다. 그건 누구도 비켜나갈 수 없는 섭리이다.  언젠가 그녀처럼 지상을 떠나게될테니까. 그 전에 남은 시간 동안 과연 어떤 배를 타고 싶은 것일까. 그 배를 타고 어느 곳을 향해 항해하고 싶은 것일까.


머리 위 저 높은 바다는 알고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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