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위안의 온도
가만 보면, 삶의 무게가 버거워 휘청이는 순간마다, 결국 나는 혀를 마비시키는 붉은 맛, 엽떡을 찾고 있었다.
그 시작은 스무 살 초반이었다. 일명 '맵부심'이라는 자부심이 있었지만, 다음 날이면 끔찍한 복통에 헤어나오질 못했다. 그래서 엽떡을 먹는 날이면 항상 내일 하루를 거는 마음으로 먹곤 했다. 매웠고, 맛있었다. 짜릿한 매콤함이 내 가려운 곳을 박박 긁어놓았다. 묘하게 중독적이고 쾌감이 있는 맛, 그것은 엽떡이었다.
세상에 처음 발을 디딘 회사라는 울타리 안에서 나는 가장 연약한 최약체였다. 누구라도 나를 함부로 할 수 있는 서열 맨 마지막 줄에 있는 사람. 누군가 나를 이유 없이 미워할 때조차 묵묵히 견뎌내는 것만이 유일한 방어였다. 나는 애써 모르는 척, 아무렇지 않은 척 반응하는 것으로 그 시간을 버텨냈을 뿐이었다. '키보드를 치는 게 너무 시끄러운 애', '먹는 걸 유난히 많이 먹는 애' 따위로 몇몇의 볼품없는 이들은 나를 표현했지만,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애써 웃어보았다.
나는 그 시간을 730일의 악몽이었다고 생각한다. 퇴근길, 빨간색 버스에서 숨죽여 눈물을 흘렸고, 매일 출근하는 길이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그녀들은 정서적으로 나를 괴롭혔지만, 나는 매일 침묵 속에서 스스로를 다독여야 했다. 정말 고독한 날들의 연속이었다.그 숱한 날들 중 어느 날, 나는 유일하게 내 의지대로 선택할 수 있는 고통, 엽떡을 자주 주문했다.
맹렬한 매운맛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도 슬픔이라는 감정에 잠식되어버렸을 것이다. 엽떡은 절망 속에서 나를 붙잡아 맨 뜨거운 끈이었던 셈이다.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들게 하는 매개체. 엽떡을 먹는 순간만큼은 슬픔이나 힘든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맛보다는 온전한 위안으로 먹었던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부터, 고통은 점차 누군가에게 설명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 되었다. 슬픈 감정이라는 것은 전염성이 있어서, 누군가에게 함부로 내 고민이나 슬픔에 대해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물론, 몇몇의 나를 잘 아는 친구들은 이야기를 잘 들어줄 테지만, 그냥 내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 복잡한 감정을 풀어 설명하는 노력 자체가 더 큰 소모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입을 다물었고, 그 침묵 대신 배달 앱의 주문 버튼을 눌렀다. 침묵과 매운맛은 묘하게 닮았다. 둘 다 나를 세상과 분리시키지만, 엽떡은 그 깊은 고립 속에서 나에게만 허락된 뜨거운 감각으로 남았다.
나는 스스로 단단해지기 위해 애썼다. 넷플릭스의 주인공들처럼 고난 앞에서 흔들리지 않으려 했고, 책 속의 문장들로 내 감정의 벽을 높이 쌓아 올렸다. 그렇게 나만의 견고한 성을 만들었다. 성 안은 평온했지만, 동시에 나의 감정들은 돌처럼 굳어갔다. 위로도, 슬픔도, 기쁨도 모두 딱딱하게 응고된 채, 타인의 시선에서 나는 묵묵하고 견고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보지 못하는 밤, 딱딱하게 굳어버린 감정들을 서서히 자극시켜 균열을 내는 건, 오로지 엽떡의 붉은 온도뿐이었다. 혀와 식도를 태우며 이마에 땀이 맺힐 때, 나는 비로소 이 단단한 성벽에 작은 균열이 생기는 것을 느낀다. 땀과 함께 코가 막힐 때, 나는 '내가 아직 살아있고, 느끼고 있다'는 가장 원초적인 증명을 얻곤 한다.
엽떡은 나를 달래는 위로가 아니다. 그것은 내가 나에게 허락하는 유일한 감정의 폭발이자, 매운맛으로 내 감각을 강제로 깨우는 행위이다. 이 무감각의 시대에, 통증을 느끼는 순간이야말로 나를 구원한다.
다음 날 아침, 포장 용기는 붉은 소스 흔적들로 물들어져 있다. 나는 그 격렬한 폭발이 남긴 모습은 어제 나의 힘듦이 어느정도였는지 예상하게 한다. 마치 방금 엽떡을 먹은 것만 같은 혀끝의 얼얼함 속에서 묘한 기분을 들게 한다. 그렇게 엽떡으로 정화된 마음으로 다시 묵묵히 하루를 시작한다. 삶의 매운맛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것을 씹어 삼킨 용기.
나는 알고 있다. 세상이 다시 내게 예측 불가능한 고통을 던져줄 때, 나는 또다시 그 매운 엽떡을 주문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붉은 맛이야말로 나를 다시 단단하게 만드는 나만의 방식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