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가 불현듯 어떠한 질문이 떠올랐다. 언어는 우리에게 어떤 즐거움을 주는가. 타인과 소통하는 기쁨일까, 아니면 문자를 매개로 이야기를 짓고 서로의 세계에 공감하며 이해를 구하는 과정일까. 'ㄱㄴㄷㄹ...'과 같은 한글이나 영어처럼 다양한 인종이 사용하는 문자가 탄생했기에, 지금의 나 또한 이토록 내밀한 글을 쓸 수 있는 것이리라. 번역에 관한 책을 읽으며 문자가 존재함으로써 나의 정체성이 비로소 확립된다는 사실에 깊이 공감한다. 언어란 한 개인과 사회를 넘어, 인류 전체가 소통하고 존재하게 만드는 거대한 뿌리. 존재하게 하는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언어에는 강력한 힘이 있다. 그렇기에 문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단순한 소통 도구를 넘어, 내면의 무질서를 정돈하는 유일한 나침반이 된다. 우리가 마음속에서 피어오르는 형체 없는 감정들에 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 감정은 비로소 나의 통제 안으로 들어온다. 예컨대 정체 모를 떨림에 불과했던 어떠한 감정에 ‘슬픔’ 혹은 ‘희망’이라는 이름을 부여하는 순간, 그것들은 문자라는 형태를 얻고, 문장이 되어 나의 글감이 되어 기록된다. 내가 매일 밤 일기장을 펼치거나 소설의 첫 문장을 고민하는 행위는, 결국 흩어지는 내 마음속 어떠한 감정 한 올을 붙잡아 완전하고 선명한 존재로 세우기 위함이 아닐까.
언어라는 것은 참으로 묘하다. 내가 내뱉은 단어 하나가 누군가의 가슴에 가 닿아 온기를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국경을 넘어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이의 눈시울을 붉히게도 한다. 번역이라는 과정 또한 단순히 글자를 옮기는 작업이 아니라, 한 사람의 영혼이 깃든 세계를 다른 세계로 정중히 초대하는 일이다. 우리는 서로 다른 언어를 쓰지만, 문자가 담고 있는 ‘공감’의 본질 덕분에 타인의 고통에 마음 아파하고, 타인의 기쁨에 미소 지을 수 있다. 문자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각자의 외딴섬에 갇힌 채 서로의 존재를 짐작만 하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이로써 언어로써 표현한다는 것은 한 사람의 마음을 위로한다고도 볼 수 있다.
한글이라는 정갈한 격자 안에서, 나는 비로소 자유롭다. 글을 써 내려갈 때 사용하는 이 언어는 내 마음속에 환하게 비춰주는 따뜻한 무언가다. 30대의 내가 마주하는 현실의 무게를 덜어주는 것도, 과거의 내가 품었던 작가라는 대한 열망을 현재로 불러오는 것도 모두 이 견고한 문자들 덕분이다. 결국 언어가 우리에게 주는 궁극적인 즐거움은 '내면의 확장'에 있다. 나라는 작은 우주가 문자를 통해 타인의 마음에 닿고, 그 타인의 세계가 다시 내 안으로 들어와 나의 지평을 넓히는 즐거움. 우리는 문자를 통해 어떤 이의 지혜를 빌려오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게 편지를 띄운다. 시공간을 초월해 인류를 하나로 묶는 이 거대한 서사 속에서, 나라는 한 문장이 더해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문자는 나를 증명하는 가장 우아한 방식이다. 내가 쓰는 글이 누군가에게는 다정한 위로가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질문이 되기를 희망한다. 오늘 읽은 책이 나를 일깨워준 것처럼, 나의 언어가 정체성을 넘어 세상과 호흡하는 통로가 되기를. 나는 오늘도 이 정직한 글자들 위에서 더 넓은 세계를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