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일 분기를 보내며

또 이렇게 사랑하며 사는 삶.

by 지수

참 오들오들 떨며 보낸 지난 계절이었습니다. 입춘이 지나고서도 눈을 맞았고, 차가운 손을 얇은 코트 주머니 깊숙이 찔러 넣으며 그렇게 시간을 보냈지요. 한편으론 유난히 사랑을 많이 했던 나날이기도 했습니다. 올해를 맞이하며 다짐했던 ‘늘 사랑하며 살아야지’라는 약속에 한 발자국쯤은 가까워졌던 시간이었어요. 비록 손안에 쥐어지는 결과물은 없을지라도, 참 무한한 것들을 사랑하며 보냈습니다. 나를 아껴주는 내 사람들을, 공모전을 위해 밤새 써 내려간 글을, 내가 사랑하는 색감의 여름날 사진과 등산 끝에 마주한 풍경을, 이제 막 피려고 하는 길가의 벚꽃나무를 그리고 내가 소유한 모든 것들을 말이죠.


올 초에 가장 인상 깊었던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요즘 세상에서 가장 희미해진 가치가 무엇이냐는 질문이죠. 수많은 가치가 있겠지만, 저는 그중 으뜸은 사랑이라 믿어요. 누구나 하는 사랑이 왜 희미해진 가치냐고 묻는다면, 사랑은 시대가 지나도 여전하지만 그 안의 가치가 흐릿해졌다고 생각하니까요. 전화 한 통에도 예의를 다하고 편지 한 글자에 온 진심을 담던 시대가 저물고, 이제는 카톡이나 DM 속 '숫자 1'로 마음을 판가름하는 아주 빠르고 간편한 방식으로 변질되었다고 생각하니까요. 한 마디에 온몸을 부르르 떨며 마음을 담아 전하는 시대는 이제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사랑은 여전히 이 세상에 만연한데 왜 희미해진 가치냐고 반박한다면 낭만을 가득 담은 ‘완전한 사랑’이라고 고쳐 대답하겠습니다.


세상에는 사랑을 진정으로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딱 두 종류뿐이라고 생각해요. 누군가가 보고 싶어 죽을 것 같은 낯간지러운 감정. 그 사람의 나의 세계에 빠져나가 메말라버린 듯한 마음. 누군가가 이 세상에 존재함으로써 행복해진다는 생각. 그 모두의 사랑이 결국 모든 것을 이길 거라는 저의 작은 열망이 언젠가는 제 삶을 조금 더 아름답게 바꿔놓으리라 믿습니다. 사랑은 사람을 구원하니까요. (사람이 사랑을 하기 때문에 구원당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건 고독이나 허상이 아니라 결국 사랑이라던 누군가의 말을 저는 진심으로 믿습니다. 사랑 예찬론자처럼 보일지 몰라도, 이 시대에 꼭 필요한 가치는 사람이 사랑 그 자체를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거창한 기적이 아니라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되는 깊은 이해와 다정함, 바로 그 사랑을 믿기에 저는 더욱 열망해 왔던 것 같아요.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누군가를 사랑하고 진심을 꺼내 보이는 일이 참 어렵게 느껴지곤 합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당연한 수순이겠지만, 온 마음을 다해 무언가를 좋아하는 일 자체가 때로는 무척 벅차게 다가오네요. 비단 남녀 간의 문제뿐 아니라, 무언가에 마음을 쏟는 것 자체가 힘든 요즘입니다. 마음을 내보이려 노력하다가도, 내 진심이 상대에게 어떻게 읽힐지, 혹여 너무 무겁지는 않을지, 그로 인해 내가 상처받지는 않을지 자꾸만 계산하게 되더라고요. 얇은 코트 속 차가운 손이 핫팩을 찾아 만지작거리듯 제 마음도 자꾸 코트 안으로 갈무리하게 됩니다. 사랑이 없는 줄 알면서도 온기가 그리워 자꾸만 따뜻한 곳으로 숨어들려고만 하는 것 같아요.


상처받고 싶지 않아 늘 움츠러들던 겨울날의 제가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약간의 후회는 남지만, 그것이 그날의 제 최선이었음을 알기에 스스로를 책망하고 싶지는 않아요. 다만 날이 추워서인지 혹은 나이가 들어서인지, 감정 앞에서 자꾸만 비겁해지는 저에게 용기를 잃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사실 용기를 잃지 않으며 살아간다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더라고요. 비겁하고 두려운 감정들과 매일 싸워야 한다는 사실이 아직 미성숙한 저에게는 너무 어렵게만 다가옵니다. 하지만 이런 과정들을 묵묵히 겪어내며 저도 조금씩 변해가지 않을까요. 그렇게 단단해질 제 모습을 가만히 기대해 봅니다.


결국은 또다시 용기를 내어 무언가를 사랑하며 살겠다는 다짐을 남기게 되네요. 문득 어떤 친구가 저에게 "소설 좀 그만 읽으라"라고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사랑은 고결한 것이라는 제 대답 끝에 돌아온 말이었죠. 제 말투가 소설 속 인물의 대사처럼 들리나 봅니다. 하지만 어쩌겠어요, 이게 저인걸요. 제 작은 우주가 넓어지는 방법은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무한한 생각 속에 빠져드는 것뿐입니다. 제일 사랑하는 것은 바로 글 쓰는 저의 모습입니다. 다음 분기에도 아마 저는 그렇게 살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것들로 삶을 알뜰살뜰하게 채우면서 말이죠. 어쩔 수 없이 살아가야 하는 삶일지라도, 다가올 분기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더 아끼고 사랑하며 잘 살아보겠습니다. 여러분도 사랑이 가득한 내일을 맞이하길 바라요. 저 또한 늘 사랑하며 살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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