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등바등 살아가는 우리에게

책을 읽는다는 것.

by 지수

나에게 있어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곧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을 일컫는 것과 같다. 살아가야 한다는 의무와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는 압박, 그저 숨 쉬는 것조차 견뎌야 하는 삶의 무게들. 언젠가부터 삶은 고통을 견디는 나날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늘 사는 게 즐거웠던 사람인데,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다 보니 어느새 낡고 색이 바래버린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책을 읽으면 그 '살아간다'는 원색적인 고통에서 잠깐 해방된다. 소설을 읽다 보면 그것이 비록 타인의 허구적인 이야기일지라도 그 속에 녹아들어, 어느새 나 또한 극 중 인물로 변모해 있다. 그렇게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삶의 희망이 차오르곤 한다.


산다는 건 고통의 연속이라 한다. 쇼펜하우어가 말한 것처럼 인생은 고통이다. 삶을 너무 비관적으로 말하는 것 같긴 하지만, 살아간다는 행위 자체가 하기 싫은 일도 좋아하는 것처럼 해야 하는 일들의 연속이라 생각한다면 딱히 틀린 말도 아니라고 본다. 인생은 불행과 행복이 교차하며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되는 굴레에 갇힌 기분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불행과 행복의 악순환이라고 하면 맞는 표현일까. 그 안에서 행복해지려 아등바등하는 내 모습이 때로는 애처롭기도 하지만, 다행히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있다.


출근길 가방 속에서 책을 꺼내 든다. 특히 이른 시간이면 사람들이 별로 없어 책 읽기에 아주 좋다. 덜컹거리는 지하철 소음 속에서 나는 오늘도 책을 읽었다. 현대인의 스트레스와 삶의 고통에서 나를 해방해 주는 건, 미색 모조지 위에 새겨진 검은 잉크들뿐이다. 나는 기꺼이 그 세계에 매료된 채 오늘의 걸음을 옮긴다. 독서와 함께인 출근길이 이토록 따뜻할 수 있을까. 나는 오늘 레 미제라블을 읽으며 그 피어나는 숭고함 속에서 해방감을 느꼈다.


언제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느냐고 묻는다면, 글쎄. 유년 시절 엄마가 읽어줬던 따스한 목소리 때문이었을까. 원만하지 못했던 교우 관계의 외로움을 이겨보려 했던 조용했던 도서관, 그 책 냄새 때문이었을까. 책장을 넘길 때 종이의 사각거리는 그 작은 소리가 나는 너무 따뜻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책장의 그 반듯한 부드러움과 나무 냄새는 나를 여전히 편안하게 만든다. 그렇게 하루의 시작과 마무리가 독서인 것이 나는 너무 좋다. 원하지 않는 일을 해야 할 때가 있고,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앳된 웃음을 지어 보여야 하는 순간도 있으며, 먹고살기 위해 경제 활동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지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책으로 도망치는데, 활자 속에 나를 맡기면 그것이 나의 현실이 되고, 고단했던 내가 사라진 채 나는 오롯이 이야기 속에 숨 쉬고 있다.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아주 철학적인 질문에 빠져들곤 한다. 나에게 주어진 고통을 기꺼이 짊어질 만한 가치를 찾아 헤매는 것일까? 세상이 정해놓은 정답에 가깝게 다가가려고 노력하는 것일까? 누군가는 이를 도망치는 여정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레 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이 처절한 고통 속 악인의 모습에서 결국 코제트를 만나 숭고한 사람이 되었듯, 나도 늘 같은 일상,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좋아하는 것을 행함으로써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 같기도 하다. 결국 산다는 건, 고통 속에서도 나를 미소 짓게 하는 책 한 권의 여유를 포기하지 않는 것. 그 사소하고도 위대한 반복이 나의 삶을 지탱하는 진짜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다들, 이토록 아등바등 사나 보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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