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bina May 28. 2020

#2. 오늘 아침 난, 영상 속에서 낯선 여자를 보았다

By. 사비나



스마트폰을 처음 사용했을 때, 나는  과거의 남자와 주말부부로 지냈다. 나를 아는 사람은 안다. 의처증 있을 만큼 날씬하지도 예쁘지도 않다는 것을.

하지만 과거의 남자는, 그렇게 내가 잘 있는지 영상통화를 통해 확인하곤 했다. 문제는, 내가 잘 있는지 알아보는 시간이,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인데, 잠에서 깼거나, 잠을 자려고 할 때다.

생각해보면 화장기 하나 없는 민 낯에 머리가 부스스한 상태 아니겠는가. 그렇게 그는 잘 자는지, 잘 깼는지를 영상통화를 통해 확인하곤 했다.

왜 그 시간인지는 물어보지 않아서 모른다. 그때 나는 영상 속에서 확인하는 나의 민낯을 보기 싫어했다.

나는 그때부터 민낯으로는 사람을 마주하지 않았고, 민낯으로는  사진을 찍지 않았다.

나이를 먹어도 여자라고 하지 않는가, 스마트폰의 어플이 많아지면서 나이 먹은 여자의 얼굴을 동안으로 바꿔주는 [동안 어플 카메라]가 등장했다.

대중에게 인기가 있는 어플을 소개하면,


그리고 내가 자주 사용하는 어플이 있다.

화장을 해야 사진을 찍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어플을 이용해서 사진을 찍고 있다. 누구에게나  익숙한 일이니 뭐가 문제인가? 말할 수 있다.

문제는 사진의 주인공인 내가, 원래  타고난 얼굴을 잊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어플을 통해 만들어진 얼굴이 태생의 얼굴로 오해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 들었던 말이다.

"00야, 이거 봐! 얘! 00어플로 사진 찍었나 봐?"

"어디 어디? 와, 완전 성형 수술 수준인데, 다른 사람이야."

옆에 있던 chic 한 친구가 받는다.

"냅 둬! 그렇게 살게."


아이들, 어른, 남자 할 것 없이 이제는 거의 다 어플로 사진을 찍는다. 이제 나는, 나의 태생의 얼굴도 잊어가고 있지만 타인의 태생의 얼굴도 잊어가고 있다.

카카오톡 프로필에 있는 사진이 진짜라고 믿고 사는 것이다. 뭐가 문제인가? 말할 수 있다.

예뻐 보이는 어플로 사진을  찍고 카카오톡을 대문을 장식하고 다른 사람보다 내가 더 많이 확인하면서 웃어본다.

"예쁘네^_____^"


이렇게 시간이 흐르면 정말 뇌가 착각한다. ULike로 찍은 사진이 나의 진짜 모습이라고. 나는 그렇게 나를 냅뒀다. 이렇게 살도록.

아침이 되면 루틴처럼 화장했다. 그리고 어플 카메라만큼은 아니지만 실제보다 날씬하게 나오는 화장대 거울을 통해 화룡점정 벚꽃 립스틱을 바른다. 그리고 그 입술을 문지른 검지로 생기 없는 볼에 터치를 한다. 톡톡톡 분홍빛이 번져가는 볼을 보면서 나이보다 어려 보인다고 좋아한다.

그렇게 태생의 얼굴을 잊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문제가 터졌다. 소설을 쓴다고 늦게 자버린 날, 게다가 맥주 한 캔의 위력으로 얼굴까지 부은 날, 정신없이 잠에 취해 있던 날,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알고 보니 꿈에서도 보고 싶었던 존경하는 00인데, 하필이면 그가 영상통화를 걸어온 것이다.

비몽사몽 나는 받았다.

그날 아침 난,  영상 속에서 낯선 여자를 보았다.

미쳤다. 나는 그 낯선 여자, 나를 보고 미친 듯이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렇게 보고 싶었던 00인데...

'일찍 일어날걸, 미리 관리할걸, 영상이면 받지 말걸...'

후회한들 늦었다. 

정신을 차리고 나는 영상이 아닌 일반전화로 그와 조우했지만 마음에 남은 나의 민낯을 커버하기 위해,

나는  통화 내내 목소리에 공기를 잔뜩 넣었다. 마치 공기가 가득해야 아름다운 여자인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바꿨다. 그에게 보여주듯 말이다.


ULike가 없으면 어쨌을까 싶다.


P.s 우짜지요. 슬픈 사연인데, 제가 이 글을 쓰면서 미친 듯이 웃고 있어요.

이렇게 젊게 살아가는 사비나를 보고 웃어주세요. 비웃음 말고 찐 웃음이요~^^

그리고 한 마디 해주세요

"냅둬. 그렇게 살다 가게" 말고, 

"아, 예쁘다"

어차피 착각하고 사니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