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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bina Aug 18. 2020

은밀한 이야기 ep 6.

다른 삶의 이력과 마주하는 순간, 나는 답답하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책꽂이에 있는 책의 크기를 정리하고, 먼지가 있는 것을 못 보는 결벽과는 다르다.

그에게 완벽은 [실수해서는 안 된다]는 강박이 동반되는 아버지를 보고 자란 미러링이었는데...


-아버지가 지나간 행적을 지켜보다가 똑같이 했어요. 마치 사건이 지나 간 자리를 다시 검사하는 형사처럼요.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가 있나요?

-아들이 자신과 같은 삶을 사시길 바라니까요.

-아버지의 삶이 행복해 보였나요..?

-아니요. 숨 막혔어요. 시간이 흘러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그는 에니어그램 1번입니다.
1번 유형들은 자신이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을 사용하여 세상을 개선시키코자 하는 사명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개혁가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이들은 역경을 극복하고 노력하며, 큰 희생을 치르더라도 높은 이상을 실현시키 위해서 노력합니다.
인도의 독립과 비폭력 사회운동을 위하여 아내와 가족 그리고 성공적인 변호사 생활을 버린 간디, 영국으로부터 조국의 독립을 되찾고자 프랑스의 작은 마을을 떠난 잔다르크가 바로 높은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희생을 치른 역사 속 인물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1번 유형들은 삶에서 이루어야 하는 사명과 강한 목적의식을 갖고 있으며, 자신의 원칙을 고수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자신의 본능적인 충동을 잘 드러내지 않아 억압, 저항, 공격과 연관된 성격을 형성합니다. 이것은 욕망과 열정의 솥 위에 뚜껑을 닫고 앉아 있는 모양새와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1번 유형들이 분노를 억압하지 않고 그대로 느끼는 법을 배우면 크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슈퍼 에고는 감정적이 되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자신의 분노를 제대로 경험하는 일이 드물고, 이를 악물고 분노를 거부합니다.
1번 유형들은 이상을 추구하기 때문에 인간관계에서든, 동료에 대해서든, 아이들에 대해서든 자신 앞에 놓여 있는 것의 좋은 점을 발견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실제로 이 세상은 이상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1번 유형들은 휴식을 취하기 어렵습니다. 이들은 하찮고 가벼운 일은 할 시간이 거의 없다고 느끼며, 이들은 휴가를 갔을 때조차도 의무감에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느끼며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는 데 대해 죄책감을 갖습니다.
이들은 비판에 아주 민감합니다. 내면의 비판자가 세워 놓은 높은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힘과 노력을 쏟기 때문에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작은 비판을 다루어 낼 여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1번 유형이 자기비판으로부터 도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완벽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실제로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완벽해지기 위해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하루도 쉴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와 헤어지기 위해 [실수]를 줄이며 완벽한 삶을 추구했던 그는 취업과 동시에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났다고 했다.

가끔씩 안부인사로 [잘 지내고 있다]는 문장을 흘리면서 [아버지처럼 해 내고 있다]는 말로 투영했다고.

-잘 살지 않아서 오신 거군요?

-네... 아버지를 안 보고 사는데도 숨이 막혀요.

-왜 그럴까요?

-회사에서 일을 못 하는 사람을 봐도 답답하고, 내 말을 못 알아듣는 사람을 보면 내 목소리가 변하는 것을 느껴요.

-어떻게 변하나요?

-경계선이요. 일종의 무시선 같은 거죠.

-본인 외에 다른 사람들이 일을 못 한다고 느끼는 부분이 언제인가요?

-느리게 알아듣거나, 실수하거나, 물건을 제 자리에 놓지 않거나... 나와 다르게 일처리를 하는 사람을 보면 답답해 미치겠어요.

회상을 하면서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피부가 까만데도 귀를 타고 흐르는 빨간색은 화가 나는 상황을 억압하는 것과 같아 보였다.

-실수를 하는 대상을 보면 답답하다는 거죠? 음.. 다른 사람의 삶의 이력을 인정하는 게 어렵군요.


힘들었던 상황을 가볍게 그려보라고 했다. 그는 사람의 얼굴을 그릴 때 집중했다. 사람의 얼굴에서 특히 입술에 집중했다.

-아, 선생님... 제 모습이 아버지네요.

그는 머리를 감싸 쥐고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말했다. 사람마다 속도가 있는데 본인은 느린 속도의 사람을 용납할 수가 없고, 실수를 반복하거나, 말을 못 알아듣는 사람 앞에서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나는 상담 중에 [느린 호흡]의 미션을 자주 주는데, 이미 완벽주의 1번 유형은 정확한 멘트를 하기 위해 곱씹은 문장을 호흡으로 내보내고 있었다.

[느린 호흡]을 제안할 수 없었다. 그에게 1회 차 상담에서 요구한 것은 매일 [애니메이션]을 보도록 요구한 것.


그는 어릴 때부터 [어른 다움]을 강요받았다. [아이다움]과 [사춘기 다움]은 없었으니, 그는 애 어른으로 큰 것이다.

-선생님, 명탐정 코난 볼까요? 판타지 영화, 파라노만은 어떤가요?

-약함에서 강함으로 가는 영화 안 됩니다. 그냥 미소 지을 수 있는 순수한 영화를 보셔야 합니다. 생각 없이 피식 웃을 수 있는 영화요.

-아, 그래도 완성도가 있는 영화를 보고 싶은데요.


영화의 평점과 스토리를 미리 보고 결정하는 것을 지양시켰다.

생각을 완결하고 보는 영화는 내 생각이 투영되어 안 된다.

시간이 흐르니 그의 손에 만화책이 들려 있었고, 가벼운 에세이 집이 들려 있었다.

삶을 가볍게 바라보는 시선의 끝에 닫혀 있던 입술이 미소가 되었다.

남자의 미소가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순간 생각했다. ‘공유 닮았네’


이제는 조직에서도 완벽한 리더를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투명한 리더]를 원한다. 투명한 소통의 바탕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데서 오는 것이다.

하얀색 와이셔츠만 입고 왔던 그가, 내가 건네준 커피를 하얀색 와이셔츠에 흘렸다. 그에게는 있을 수 없는 실수다. 나의 리액션이 중요하다.

-하하하, 난 00 씨가 완전하지 않아서 좋아요.

-선생님, 완전하지 않아도 괜찮은 거죠?

-그럼요. 허당끼 매력입니다. 너무 완벽하면 매력 없어요.  투명하게 말합시다. 실수도 인정합시다.


또한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이 투명한 소통을 막는다. 앞서 살펴본 세 명의 국가 정상은 자신들의 약점을 잘 인정하지 않고 권위적으로 행동한다. 실수를 인정하는 것, 잘 모른다는 것을 시인한다는 것, 해낼 수 없다는 한계를 공식화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심리학적 기제가 작동한다. 하나는 ‘구원자 신드롬’이다. 리더가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하고 구원하겠다는 무의식적 욕망이다. 자기애성(나르시시즘) 인격 성향을 가진 리더들이 특히 이런 내적 환상을 가진다. 두 번째 기제는 사람들이 구원자에 대한 환상을 갖고 이를 리더에게 투영해 완벽함을 바라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기제가 동시에 발현되기도 한다. 대중은 문제를 단칼에 해결해 줄 메시아를 원하고, 나르시시즘을 가진 리더는 그 욕구에 부응해 자신을 부풀려 대중을 호도하는 것이다. 이 경우 투명한 소통은 요원하다. -동아 일보 기사 중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그는 마음이 가볍다고 했다.

이제 그의 주변에는 다양한 친구가 존재한다.

투명한 친구들이라고 했다.

그도 투명했다.

미소도, 마음도... 이제는 다 읽힌다.


그는 참 괜찮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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