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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bina Aug 13. 2020

오늘은, 비밀 일기.

나는 작가다.

17년째 방치된 폐가가 다시 애처로이 다가온다.

거센 폭우에 지붕이 가라앉으면서 벽 하나를 끼고 사는 우리 집에 [새는 비]를 안겨주었는데...


2층 내 공간에서 폐가를 바라본다.

민들레와 원추리는 이미 모가지가 꺾여 있다.

내 공간에서 긴 계단을 내려가기 전에 마주하게 되는 하얀 민들레와 원추리가 그렇게 거센 바람과 세찬 비를 오롯이 견디며

모가지만 꺾여있다. 내 년 봄이면 뜨거운 햇살, 양지바른 곳이니 다시 살아나겠지...


문득 나를 돌아본다.


두 살에 만들어진 소아마비가 결핍인 줄 알았는데 목발을 무기 삼아 단단한 땅을 짚고 잘도 살고 있다.

손님이라도 오면 창고에 가두고 밖에서 문을 걸어 잠근 그 어둠의 시간이 결핍인 줄 알았는데 스스로 빗장 문 잠그고 나쁜 사람 쳐내는 경계의 삶을 살고 있다.

병신이라고 불리며 뒤에서 손가락질할 때 뒷담화가 몸서리치게 싫어 자발적 왕따가 된 듯 그렇게 책만 읽었는데 나는 그 책의 힘으로 살아간다.

아마, 알았으리라.

오늘처럼 다시 [해]가  떠오를 것을.


안 되겠다.

폐가에 나를 투영하니 애처로운가.

저벅저벅 느린 걸음으로 인조적으로 만든 옥상을 지나 고요한 책상에 앉아 본다.

다시 새소리가 들리고 저 멀리 해가 떠 오른다.


아마, 알았으리라.

모가지가 꺾인 꽃이 다시 살아나고 거센 비바람이 잦아들면 이렇게 [해]가 찾아올 것을.

신선한 아침이다.

-잡초처럼 무성하게 자란 생각들을 잘라내는 시간이 일주일이 걸렸어요...

-아직 멀었습니다


그래, 그렇겠지. 인간이 그렇게 나약해..

-또 잘라볼게요

-네, 그게 인생입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생각과 행위가 곧 내일의 나를 만들어냅니다. 제자리에서 맴도는 타성과 게으름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악덕입니다. 일찍 깨어나 신선한 아침을 맞으십시오. 그래서 새로운 시작을 이루십시오.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법정 스님]

의식의 흐름을 바꾸고 악습을 깨는 100일의 훈련이 지나자, 나의 아침은 새벽 6시다.

일이 많아서, 피곤해서, 원래 잠이 많아서라는 말이 쏙 들어갔다.

해보니 되네...


아침의 기운은 다르다. 햇빛이 햇볕을 만들고 나의 손가락 사이로 햇살이 되어 들어온다.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사람과 사물에서 통찰을 얻으니 감사하고 그것을 글로 풀으니 감사하다.

 “묶인 세월 20. 감옥 깊은 곳에서  담장을 뛰어넘는 사색은  자체로 자유를 향한 갈망이요, 갇힌 사람의 비상의 날개짓이기도  것이다. 밖에 있는 우리는 그의 사색에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1988 평화신문)-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평하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조금 늦게 알았다. 신영복 선생의 글은 억울함으로 갇힌 그곳에서도 빛이 났고, 억울함이 풀린 세속에서도 빛이 났으며, 그의 죽음 이후에도 빛이 난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게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사람을 단지 37  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신영복

오랜만에 필사를 해본다.

연필로 꾹꾹 눌러쓰다 보니 감옥이 보이고, 사람을 사랑하는 신영복 선생의 모난 마음이 보인다.

그래, 뜨거운 여름 그곳에서는 사람이 [열 덩어리]로만 느껴지겠지. 그게, 인간이야.


일주일 동안 이렇게 연락을 안 해도 되나 싶게 살았다.

“까톡 까톡” 소리였던 카톡이 소음이 되고 대출이자 확인 문자가 감옥이 되니 외로움으로 찾았던 사람들 조차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리고 있다.

나만 보인다.

-정미야, 건강해야 글을 쓰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고,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있다.


모난 마음이 둥글어지는 신선한 아침이다.

둔하면 둔한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느리면 느린 대로 길을 찾아가는 여정에 몸을 담그자.


투사했던 모가지가 꺾인 원추리가 살아나고 민들레는 홀씨가 되어 날아간다.

기분 좋은 상상이다. 마음이 뜨거운데도 생각의 온도는 37도이다. 차분하다.


책을 읽고 기억이 연장되는 아침,

새소리 가득한 창가에서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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