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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bina Aug 20. 2020

은밀한 이야기 ep. 8.

외도와 바람을 논하다_남자 이야기

나에게 이른다. 명심할 것.

상담자의 윤리에 대해 연구해온 학자들은 심리상담현장에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근본적인 윤리원칙으로 '선을 행하고 해를 피할 것'을 들고 있다. 즉 내담자의 존엄을 보장하고 이들의 복리를 최우선으로 하며 해가 되지 않는 방향으로 상담이나 치료가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상담자들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윤리조항인 '이중관계 금지' '성적 관계 금지', '사생활과 비밀보호' 등은 바로 이 원칙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항목들이다. [오마이 뉴스]

은밀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상담실의 공간적 특성이 나이와 성별을 구별 짓지 않았다. 그들은 솔직했고 비밀의 이야기는 깊었다.

일러두기.

외도와 바람을 논하는 것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가르는 목적이 아니며, 상담을 통해 드러난 그녀와 그 남자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함이다.
나는 그 누구의 편에 서지 않을 것이며 동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웅덩이에 빠진 발을 꺼내지 못하는 그들에게 방법을 알려줄 뿐이다.

이미 주부와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득한 [사비나]로 살았다. 은밀한 상담실을 오픈하고 의도하지 않았지만 상담을 받으러 오는 성별의 비율이 바뀌고 있었다.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

법정에서 선서하는 [증인]처럼 상담자의 원칙을 입으로 중얼대며 마음을 다지는 의식을 치러야 함은, 남자의 외모 때문에 흔들리는 것은 아니었다.

드라마에서나 봤던 남자의 눈물을 바로 앞에서 보면서 여자 내담자들에게 했던 [악수하기]나 [손위에 내 손을 포개는] 것도 허용하지 않는 [휴지를 빼서 건네주는 타이밍]도 어색한 나는 이제 남자의 눈물에 익숙해져야 하며, 흔들려서는 안 되니 의식처럼 중얼댔다.

눈물이 멈출 때까지 기다리자... 기다리자...’



에니어그램 1번[장형]

1번 유형들은 자신이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을 사용하여 세상을 개선시키코자 하는 사명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개혁가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이들은 역경을 극복하고 노력하며, 큰 희생을 치르더라도 높은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에니어그램 8번[장형]

‘나는 내 운명의 주인이다.'
우리는 8번 유형에게 도전하는 사람이라고 이름을 붙입니다. 이들은 스스로가 도전하는 것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어떤 일에 도전해서 자신의 능력 이상의 일을 해 내도록 격려하는 것을 즐기기 때문이죠. 이들은 사람들을 설득해서 온갖 종류의 일, 회사를 시작하는 것, 도시를 건설하는 것, 집안을 꾸려 나가는 것, 전쟁을 하는 것, 평화를 이루는 것 등을 할 만한 카리스마와 신체적, 심리적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도전하는 유형, 또는 지도자 유형이라고 합니다.

진단 지를 통해 분석하지 않으면 1번 유형과 8번 유형은 쉽게 구별하기 어렵다. 뿌리를 찾아내고 깊숙이 숨겨 둔 이야기를 꺼내려면 정확한 분석이 필요하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윤리적이셨어요.

-명령을 하면서 강요하신 적은 없나요?

-올바르게 살도록 권면은 했지만 강요하지 않았어요.

-그렇다면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 기쁜 일이 많이 떠오르겠네요.

-음...


똑바로 살 것을 강요하면서 완벽을 요구하는 1번 유형의 아버지와 달리, 윤리적인 지침을 주면서 올바르게 살 것을 권면하는 8번 유형의 아버지는 부드럽지만 다른 사람의 빠른 변화를 원하니  [기다림]에 약하다.

아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올바르게 살도록 [본]을 보이며 끊임없이 [훈계]를 했지만, 아들이 원하는 소원을 이야기할 때, 혹은 용기를 내서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프레임을 깨려고 할 때 기다리지 않았다고 했다.

-아버지 말을 들어라. 네가 잘 되라고 하는 것이니...

무섭게 표현하지 않고 틀린 말이 없어 보이는 아버지의 훈계에 가슴 깊숙이 저항이 올라왔지만, 한 번도 대항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게 모범적으로 성장한 그는, 크면서 알았다고 했다.

-생각하고 생각하고 이야기하다 보니 말을 더듬기도 해요. 그럼, 아버지는 기다려주지 않았어요. 답을 미리 말해주셨죠. 그리고...

주변 지인도, 아내도, 도전하고 능력이 있어 자기 인생 하나쯤 멋지게 해결하는 그의 말을 도중에 자르기 일쑤.

그는 에니어그램 8번 유형으로 날개로 7번 [낙천가] 유형의 날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날개라고 하는 것은 뿌리와 다르게 살아가면서 보이는 패턴입니다.
7번 유형은 [머리형]으로 생각이 많고 두려움이 많은 기저가 있습니다.

단단하고 소신이 있는 [장형]인 그가 아이처럼 우물쭈물 대고 고민한 끝에 말하는 습성이 생기자 그의 의견은 쉽게 무시당했다.

-저는 돈만 벌어오면 되는 기계예요.


그가 살고 있는 아파트 구조를 시각화하고 그가 머물고 있는 공간을 그려보라고 했다.

아내와 아이들은 거실에, 자신은 안방에 있는 모습으로 그렸다.

-거실에서 웃고 있는 소리를 들으면 궁금했어요

-나가서 같이 대화하지 그랬어요?

-원하지 않는 것 같았어요.

도전 유형인 8번 유형은 [장형] 답게 대다수 운동선수의 몸을 가지고 있다.

단단한 골격이 언뜻 보면 [헬스 트레이너]나, [야구선수] 같은 운동선수를 연상하게 한다.

그런데, 눈치를 본다고 말하는 것이다.

-돈을 더 잘 벌어오면 좋아할 것 같았어요.

지방 근무를 가면서 아침부터 밤까지 일을 하고, 돈을 보내는 그 똑같은 일상이 극한의 외로움으로 올 때 그가 원한 것은 [아빠 보고 싶어요!] [여보, 이번 주에 올라오면 좋아하는 닭볶음탕 해놓을게요.]...


일주일에 한 번씩 올라갔던 집을 시각화하고 그림을 그렸다.

거실에 아내가 없었다. 아이들은 각자 휴대폰을 하고 있고, 메트로놈처럼 일정하게 움직였던 아내의 동선은 파악이 안 된다고 했다.

그때부터 그는 더듬거렸던 말이 더 흔들렸다. 내가 기다리고 기다리면서 들어주는데도 그의 말이 흔들렸다.

-의심이 확신이 되는 순간,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어요.

-그때, 어떻게 했나요?

-화가 치밀어 오르고 분노가 가득해서 물건을 던지고 아내를 때렸어요.


그럴 수 있다.

누가 아내의 외도를 알고 차근차근 응대할 수 있을까

그러나 상담자의 입장에서 8번 유형이 갖고 있는 장점을 알기 때문에 대화로 확인하고 들어주는 시간이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에게는 [기다림]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다.

기다린다는 단어를 사유해보면 [어떤 사람이나 때가 오기를 기다리다]라는 의미로 다가오지만, 그에게 기다림은 [변화할 수 없다]라는 문장과 동반했다.

-기다릴 수 없었어요... 선생님, 아내를 용서할 수 없어요.


부부가 상담을 의뢰한 시기는 그 사실로부터 1년이 지난 시간이다

기다릴 수 없다고 생각했던 그는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생각의 고리들을 끊어냈다고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가슴이 답답하고 해결하지 않은 숙제를 숨기고 있으니 언제 터질지 몰라 조마조마하다고 했다.

우리는 쉽게 생각할 수 있다.

여자가 아니라 남자가 더 많이 고민하는구나, 남자가 많이 참고 사는구나...

여자의 말만 들으면 여자가 안쓰러울 수 있고, 남자의 말을 들으면 남자가 안쓰러울 수 있다. 우리는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한쪽의 말을 듣고 동조하고 편승한다.

나는 그녀와 그를 위한 시간을 기록하고 부부 상담을 준비했다.

선생님, 이상하게 배가 고파요..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파요.

카톡으로 전달된 문자에 의식처럼 중얼댔다.

‘흔들리지 말자.’

그가 배고프고 외로운 것이다. 그러니 그의 배고픔과 그의 외로움을 내 것으로, 나의 수고로 가지고 와야 한다. 다행히 한 공기의 밥으로 그는 편안해진다. 그렇지만 여기까지다. 한 공기의 밥으로 행복해진다고 해서 두 공기의 밥, 세 공기의 밥, 나아가 한 가마의 밥을 그에게 먹여서는 안 된다. 한 공기를 넘어서는 순간, 그는 배고픔에 비견할 만한 새로운 고통에 빠져들고 마니까. 사랑은 ‘한 공기의 밥’과 같은 것이다.-<<한 공기의 사랑, 아낌의 인문학>>-강신주

그와 1회 차 상담을 더하고 따뜻한 눈으로 말했다.

-제가 오래 들어드릴게요. 천천히 말해도 늦게 말해도 말을 끊지 않을게요. 다 말해요.

그의 눈가가 촉촉해질 때, 내가 아끼는 손수건을 건네는 것으로 한 공기의 사랑을 전했다.

-아직도 배가 고파요?

그가 웃는다.


이렇게 외도와 바람의 뒤안길에는 각자의 역사가 있고 그 아픈 역사를 억압시켜놓은 채 살기 때문에 공허함을, 배고픔을 이성적으로 알아낼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그녀의 메트로놈을 정상적으로 작동시키고 그의 외로움을 해결하기 위해 부부 상담을 준비했다.

그리고 의식처럼 중얼댔다.


어떤 상황이 와도 흔들리지 말자. 선택은 그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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