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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bina Aug 20. 2020

서툰 감정 1.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소설을 썼다.

은밀한 이야기가 쌓여가자 가슴에 묻어두고 기도로 후원하는 작업에 한계를 느꼈다.

알아야 한다. 우리가 얼마나 표현에 서툰지를...’

서툰 감정을 해결해준 극적인 사례들을 극화해서 소설을 완성했다.


그리고 이제 나의 상담실에는 그 사례를 넘어서는 이야기가 따뜻한 온기를 타고 [누나 같다][엄마 같다]는 듣기 거북한 표현을 들고 남성들이 찾아온다.

여자 같다는 말을 듣고 싶다’는 상담자의 원칙이 깨진 생각이 들 때쯤 고개를 아이처럼 도리도리 해본다.

방법이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객관화하는 시선!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그랬구나. 돈을 벌지 않는구나’

그리고 남성이라는 성별을 가진 그를 본다.

혈색이 안 좋다. 그제야 와이셔츠 단추 두 개 풀어헤치고 팔뚝까지 걷어 올린 와이셔츠 소매 길이에도 반응이 되지 않았다.


5회 상담을 끝낸 그는 말했다.

-선생님, 인문학 수업하시는데 저도 들어갈 수 있을까요?

-그럼요.

30대와 40대 인문학 수업에서 책을 읽고 인생을 논하고, 그들의 변화를 꾀했다.


변화가 보인다고 생각했다. 상담을 했고 인문학 수업을 했으니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선생님, 몸이 녹아들어 가는 것 같아요.
오늘 수업을 못 가겠습니다

그는 변화가 없다고 했다. 힘들어 미치겠다고 했다. 수업을 들을 때는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인데, 집에 들어가면 작은 원룸의 벽이 자기를 조여 오고

청소하지 않아서 쌓인 사물들이 말을 건네 온다고 했다.

오셔야 합니다!

답이 없었다.

그가 좋아했던 벚꽃이 지고 그가 좋아했던 고양이가 장미꽃 흐드러진 곳에서 잠시 쉬어가는데 그는 답이 없었다.

그를 생각하면 엄습해오는 생각들이 있다.

서툴렀어, 정확하게 표현을 했어야 했어. 비유적인 표현을 넘어 구체적인 방법들을 알려줄 걸 그랬어...’

시간이 흐르고 자괴감은 [내 몫이 아니다]라는 나를 위로하는 자존감으로 넘어갔다.


생일을 축하해준다는 인문학 수업 제자와 레스토랑에서 대우를 받고 있었다.

버섯 로제 파스타와 마르게리따 피자에 비싼 와인까지, 약간은 행복하고 약간은 알딸딸한데, 그의 존재가 문득 그리웠다.


-선생님 잘 지내셨어요?

‘음... 잘 못 봤나?’

혈색이 좋다. 적당하게 살이 빠지고, 차이나 카라에 단추가 세 개나 풀어 있고, 한쪽 소매는 팔뚝의 힘줄이 보이게 올려 감았고, 회색과 청색이 교차되는 바지를 입고

또각또각 구두 안에 검은색 덧버선을 센스 입게 신은 그가 나에게 인사를 건네는 것이다.

그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니가 왜 거기서 나와?

https://youtu.be/Y3s_GYdceVg


아... 서툴렀다. 표현이.


직장을 바꾸고 운동을 한 그는 몇 달 사이에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카톡으로 나의 생일을 인지한 그는 인문학 수업 다른 제자에게 물어서 그 알딸딸하고 기분 좋은 자리에 동석을 하기 위해 온 것이다.

이내 의례적인 대화로 상담자의 모습이 되어버린 나는 알딸딸한 상태에서 벗어나고자 애썼다.

그리고 힐끔힐끔, 그의 변화된 건장한 몸을 훔쳐보았다.

서툴렀다.

그냥 말할 걸.

[내가 좋아하는 이상형입니다!@ @]


무엇이 맞는지 무엇이 틀린지는 모른다.

나의 감정을 들여다보기에는 아직 부끄러우니 애꿎은 영탁이만 소환한다.


니가  거기서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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