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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bina Aug 21. 2020

은밀한 이야기 ep 9.

외도와 바람을 논하다_부부이야기

계획을 했는데, 시각화를 하고 그림까지 그려가면서 1층은 카페로 2층은 상담실로 만들어가는 그 계획을 했는데 말이다.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쏟아내는  이야기의 깊이와 다양함의 폭을 예견하지 못했다.

누누이 글을 통해 표현했지만 상담자도 인간인지라 상처를 받고, 아픈 이야기에 그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밥 한 공기의 사랑이 아닌 두 공기, 세 공기 이상의 사랑을 주고 혼자 서운해하기도 했다.


은밀한 상담실에는 나를 닮은 장애인이 다녀갔고, 전 남편을 닮은 남자들이 다녀갔고, 남자 친구의 모습에서 아버지를 투사하고 괴로워했던 여자가 다녀갔는데,

이번은 달랐다.

주제는 명확하게 [외도]의 현장을 잡고 이혼 위기까지 갔던 부부의 이야기이지만, 이번은 달랐다.

아내를 상담하고, 남편을 상담하고 다시 부부를 상담하니 외도와 바람에 무게를 두고 [땅땅땅] 판결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한 지역에서 폭력과 존엄을 화두로 강의했을 때다. 청중 가운데 가장 연장자인 남성이 가장 먼저 손을 들고 소감을 말했다. “작가님은 살면서 폭력을 당한 적이 많나 봐요?” “폭력을 많이 당한 것 같아서요.” 어순을 바꿔가며 반복했다.(...)
질문자의 기습적인 발언은 나를 향하는 듯했지만, 막상 나란 사람이 얼마나 많은 폭력에 노출되었는가는 중요치 않았다. 그는 말을 이었다. 결혼한 지 30년이 넘었고 이제는 집안일에 솔선하고 아내를 위한다며, 자신의 눈을 빼서 주어도 아깝지 않고 목숨도 바칠 수 있다고 했다.<<다가오는 말들>>-은유

-선생님, 사실 아내의 외도는 중요하지 않아요. 아이들을 위해 애쓰고 제가 돈을 벌지 않을 때도 오랫동안 참고 인내하며, 생계를 이어갔으니 감사하죠.

순간, 얽히고설킨 남자의 역사를 풀어주고 들어주는 시간이 효과를 보는 것인가 생각했다

-그런데, 어떻게 저를 무시해요. 외로우면 외롭다고 말해야죠. 어떻게 저를 두고 바람을 펴요!

이 낯설고 익숙한 상황, 이야기의 전후 맥락을 살피기보다 자신을 불쑥 내세우는 남성성의 노출에 난 또 찔렸다. 이번엔 정신을 집중해 말했다. 당신의 발언은 내가 폭력의 당사자여도 문제, 아니어도 문제다. 용기 내어 자기 아픔을 터놓고 그 아픔에 같이 아파하고 감응한 사람들에 대한 결례이자 업신여김이다. 맥없이 터진 눈물을 꾹꾹 누르며 말했고 그는 주저 없이 사과했다.<<다가오는 말들>>-은유

남편의 말을 듣고 있던 아내는 종이 한 장을 꺼내고 그동안은 참았지만 더 이상은 안 되겠다며, 남편이 행했던 모순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00년, 00월 00일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하는 그녀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지만, 그녀의 메트로놈은 정확했다.

남편은 말했다.

-그걸 왜, 이제 말하는데? 선생님 앞에서 나 엿 먹이는 거야? 그리고 사과했잖아!

-아니, 그건 사과가 아니야.

그들의 다툼을 지켜보다가 여자가 쓰고 있던 종이를 받아, 내가 읽어주었다.

-00년 00월 00일 이런 일이 있던 게 사실인가요? 개인적인 상담에서는 없던 이야기인데요...

남편이 말했다.

-네...

-아내에게 묻겠습니다. 개인적으로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정확한 연도까지 쓰면서 지금 말하는 것은 [외도]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건가요?

-남편이 얼마나 막살았는지 알려주고 싶은 거예요...

태어나면서부터 여성은 침묵하는 법을 익히고 남성은 감정을 도려내는 법을 배운다. 그렇게 가부장제는 인간 본성을 왜곡시키고 그 하자와 결함을 체화한 젠더 역할 수행을 윤활유 삼아  굴러간다. 말하기를 익히지 못한 여성이 공감을 배우지 못한 남성과 동료 시민으로 살아가자니 여기저기서 삐걱거리고, 맞추어 살자니 공부가 끝이 없다.<<다가오는 말들>>-은유

법정,  재판 결과에 승복할 수가 없어 항소를 하고 상고를 하는 모양새로 그들은 새로운 사실을 털어놓고 [판사]의 결과를 기다리듯 나의 입술만 바라보고 있었다.

은밀한 이야기를 넘어 다툼의 현장을 보고 있는데도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이 평온했다.

‘얼마나 말하고 싶었을까... 내 앞에서라도 마음껏 제대로 표현하기를.’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내게 미안했나 보다. 그들의 목소리가 작아지더니 남편이 말했다.

-선생님, 잠깐 담배 한 대 피우고 오겠습니다.

-네.

남편이 나간 자리에 아내는 책상에 엎드려 오열했다. 휴지를 건네주는 나의 손길에 그녀가 응답했다.

-선생님 너무 시원해요. 다 말했어요. 저 다 기억해요. 잊지 않고 살았거든요.

-잘하셨어요...


호흡을 정리하고 들어 온 남편은 화장이 얼룩진 아내의 얼굴을 외면하고 크게 호흡했다.

-이제 마음을 다 열었으니 한분 씩 이 의자를 바라봐주세요. 일종의 역할극인데요. 이미 서로에게 투사하는 과정은 했으니, 역할을 바꿔서 의자 위에 앉아 있는 사람이 [나]라고 생각하고 남편은 아내 역할을, 아내는 남편 역할을 하시면 됩니다.

그림치료와 기법 치료를 이미 해왔던 터라 그들은 나의 말에 순순히 응했다.


역할극은 빈 의자 기법에서 파생된 기법으로 사이코드라마의 나누기 단계에서 사용하기도 하는데, 역할 대상의 카타르시스를 위한 것이다.
분노나 슬픔, 용서나 화해의 감정을 재연할 수 있고, 빈 의자로 대신했던 그 사람과 역할 교대를 하는 과정에서 억압했던 그림자들을 끄집어낼 수 있다.

남편은 힘들게 말을 뗐다.


아내 역할을 하는 남편-당신이 말을 안 하는 것이 나를 무시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아픈 과거가 있는지 몰랐어요. 내가 말을 다 듣지 않고 말을 끊어서 미안했어요. 당신이 무섭기도 했지만 말을 더듬거릴 때마다 마음속으로 비웃었어요. 존경하는 마음이 사라졌고, 그냥 돈만 벌어오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아내의 몸을 빌려 빈 의자를 바라보며 남편은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아내 역할을 하는 남편-거실에서 아이들과 웃을 때 당신이 나오길 기다렸어요..


이 부분이었던 것 같다.

아내가 일어섰다.

남편을 껴안고 미안하다고 사과한 것이...


세계란 항상 ‘보는 자’의 세계일 수밖에 없다.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부부가 될 준비가 안 된 수많은 부부들이 부모가 될 준비가 안 된 상태로 자녀를 낳고 자신의 세계에 갇혀 시나리오를 쓰고 아파한다.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지금, 불행하다고 느끼고 서로를 원망하는 시간에서 벗어나셔야 합니다. 결혼도 두 분이 선택했듯, 이혼도 두 분의 몫입니다.

‘우리에게 내일은 있다’라는 표어의 함정은 분명하다. ‘우리에게 내일은 있다’라고 말하면서,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의 행복을 희생하는 것이다. 문제는 내일은 언젠가 오늘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또다시 행복을 미루게 될 것이다. 반면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라는 표어를 걸고 삶을 영위하는 사람을 보라. 여기서 핵심은 내일이 찾아와 오늘이 된다는 사실이다. 새롭게 시작한 오늘도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주장을 관철하므로, 이 사람은 항상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한 공기의 사랑, 아낌의 인문학>>-강신주.

부부의 자녀들이 찾아왔다.

이미 싸움의 정도를 기억하고 상처로 얼룩진 아이들이 찾아왔다.

서로의 아픔의 깊이가 크다고 싸우고 있는 동안, 아이들은 부모를 미러링 하고 조용히 있는 것이 답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들이 숨어 들어간 장소는 [휴대폰 세계]


아직 늦지 않았다.

공감하지 못하는 남편이 말을 더듬어도 들어주고, 돈을 조금 덜 버는 직장으로 옮겨 생긴,  그 시간의 여유가 아이들과 공원으로 찜질방으로 운동장으로 함께하니 됐다. 침묵하지 않고 조잘대는 아내의 애교에, 아내가 제일 좋아하는 매운 족발과 맥주를 안겨주며 거실에서 [놀면 뭐하니?]를 보고 웃으니 됐다.

가족은 모두 거실에서 대화하고 거실에서 논다.


어쩌면 또 싸우고 과거의 아픔을 끄집어내며 할퀼 수 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방법을 안다.

침묵하지 않고 진짜 감정을 드러내며 -닭볶음탕 해놓을게요 라고 말하면 되고,

아내의 우울한 얼굴에 진짜 공감을 표하며 -치. 맥? 정도 표현하면 된다.

굳어진 습관을 억지로 바꾸라는 것이 아니다. 만들어 놓은 가정을 지켜 낼 의무를 다하라는 것이다.



나는 상담실을 계획할 때 의도했다.

카페로 들어오는 것처럼 보이나, 카페 깊숙한 곳을 지나 길고 긴 계단을 오르면 [상담실]이라는 간판 대신, 당신의 이야기를 다 들어준다는 은밀한 상담실이 나오도록

나는 의도했다.

겉에서 보면 조금은 낡고 폐가를 끼고 있어 호화로운 건물에서 큰 간판에 떡하니 [아픈 사람] 찾아오도록 권유하는 곳과는 다르게 의도했다.

정상인과 구분 짓는 아픈 사람들이 오는 곳이 아니라, 방법을 모를 뿐이니 먼저 경험한 자가 들어주고 품어주는 방법을 알려주는 공간으로 의도했다.


외도와 바람을 논하기 전에 사유해보자. 우리가 얼마나 표현에 서툴고 내면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것에 서툰지를.

서툰 감정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제대로 표현을 해야 남의 것을 탐하지 않고 자족할 줄 안다. 자존감이 높아지면 남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지 않고 남의 사람을 탐하지 않게 된다.

김 선우 시인은 <<고쳐 쓰는 묘비>>에서 이렇게 말했다.  태어날 때의 울음을 기억할 .  웃음은 울음 뒤에 배우는 .


이제 울었으니 다시 웃을 때다.

그 웃음을 찾아주는 나의 공간이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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