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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bina Aug 22. 2020

서툰 감정 2.

사실은 보고 싶었어.

그놈은 누가 봐도 잘 생겼다.

축구 포지션이 공격수라고 했지 아마.

축구 이야기할 때만 고개를 들었어. 응 기억나네

-선생님 4.4.2 대형 아세요? 제가 공격수예요. 축구 좋아하세요?

-당근, 엄청 좋아하지.


축구를 하고 왔는지 하얀 티에 흙이 조금 묻었어.

그리고 땀이 배어 나올 정도로 옷이 축축해 보였어.

-이겼어?

-졌어요

-괜찮아. 콜라 사줄까?

-네...


참 쉽게 감정의 기복을 탄다고 생각했어. 말을 걸기가 어려웠고 수업시간에 대꾸도 안 하니 답답하기도 했어.

그런데 어느 날, 목이 길어서 고개를 숙이면 [저러다 목이 꺾이는 거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우울한 얼굴로 상담을 요청했지.

-선생님, 집 나오고 싶어요.


아이들을 사랑해서 심리학을 배웠는데, 집 나오고 싶다는 제자의 말을 어떻게 그냥 넘어가.

노력했어. 달래고 어르고 들어주고.


그런데 부모의 갈등을 지켜보는 것이 지겹다는 그놈의 마음을 잡을 수가 없었어.

결국, 그놈은 집을 나갔어...

타인의 고통이 사무치면 우리 마음에 사랑이 차오른다.(...) 불행히도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심지어 스스로도 그렇게 믿고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바로 ‘관념적 사랑’ ‘말뿐인 사랑’ 핵심은 상대방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의 결여다.-강신주 <<한 공기의 사랑, 아낌의 인문학>>

그때, 내가 조금 바빴나 봐...

시간이 흐르고 다시 찾아온 그놈을 안아줄 걸.

-야! 뭐야? 집 나갔다며? 어디서 자는 거야?

원래 말이 없는 놈인데, 아마 용기를 내서 다시 찾아왔을 텐데... 마음은 걱정이 넘치는데, 왜 그 말부터 나왔을까?

-선생님 바쁘신 것... 같네요. 다음에 올게요


그리고 못 봤어.

근데 말이야.

오늘 그놈이 막 보고 싶은 거야. 잘 살고 있는지...

아이패드로 그놈 얼굴을 상상하고 그려봤는데.. 그려놓고 보니 연예인보다 더 잘생겼는데...

고개 숙인 모습이 자꾸 어른거려서 가슴이 아파...


보고 싶어

사과하고 싶어

-선생님이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콜라 사줄까?

사실은 그렇게 말하고 싶었어.

-선생님이 서툴렀어. 미안해... 이리 와 봐 안아줄게...

사실은 그렇게 말하고 싶었어.


마음과 다르게 말이 잘 안 나와

나는 왜 이렇게 서툴까.


그림을 그리고 마음을 달래도 자꾸 그놈이 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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