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bina Aug 24. 2020

네 편이 되어 줄게 1.

이 삶을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일러두기.

[브런치 북을 만들기 위한 목차를 구성중입니다. 상담사례를 묶어 책을 내려고 합니다. 나의 경험 그리고 나를 찾아오는 같은 경험을 한 내담자들, 그들이 친구가 되어 인문학 수업을 하기까지의 여정을 담은 책이 될 것입니다.

인생선배인 제가 먼저 경험한 결핍을 썼고, 은밀한 이야기로 상담사례를 풀었습니다.

이제 내담자가 친구가 되어가는 여정을 풀어갑니다. 글을 다듬지 않아서 아직은 거친 초고와 같습니다. 부디 저와 같은 감정의 기류를 타고 읽어주시기를 바랍니다.]


긴 장마가 끝나자 여름이 개선장군처럼 폭염을 토하며 나 아직 살아 있노라 기개를 떨치고 있다.

인간이 얼마나 간사한지 하늘이 뚫린 듯 퍼붓는 폭우 앞에서 비가 멈추기를 기도했건만 더움이 뜨거움이 되는 열대야 앞에서 잠시 가을의 길목을 상상하자 이른 아침, 서늘한 기운을 내뿜는 숲 속 나뭇잎 위에 머물고 있는 이슬에 머문다.


<<한 공기의 사랑, 아낌의 인문학>>에서 강신주는 이슬의 역설을 김선우 시인의 글을 통해 피력했다.

  해가 뜨거워지기 전 이른 아침에 만들어져 미세한 바람에도 떨고 있는 이슬이 영롱히 살아있는 나라면, 그 이전에 어떻게 내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타자와의 ‘접촉’이고 ‘연결’이다.(...) 그런데 정말 조심해야 한다. 이슬은 잘못 건드리면 또르르 흘러내리기 쉬우니까. 그렇지만 뭐 어떤가? 어떤 것과도 접촉하지 않는 것보다  접촉하는 것이 낫다면, 또르르 흘러내리는 이슬이 세계에 무관심한 다이아몬드보다 더 근사 할 테니까.

그녀는 가을의 길목, 흔들리는 눈동자를 정착하지 못하고 건드리면 부서질 것 같은 나약한 마음과 몸을 가지고 찾아왔다. 이미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었고, 안정제로 받아 온 약을 먹고 있었다. 만지면 부서질 것 같은 이슬, 나는 그녀를 만지고 접촉함으로 그녀와 연결을 시도했고, 김선우 시인이 말한 것처럼 ‘닿았다 오면 슬픔이 명랑해지는’ 그 순간을 기대했다.


-무엇이 그렇게 힘든가요?

-불안해요. 사람들이 나를 가만히 두지를 않아요. 사람들이 신경 쓰여요.


그녀는 에니어그램 3번 유형으로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보고 있다고 느끼며 살아가는 [투명성 착각]이 있어 사람들을 기피하고 있었다.

상담실에서 원칙으로 정해 놓은 5회의 상담이 끝났을 때, 그녀는 말했다.

-선생님, 아직 선생님이 필요해요

엄마에게 못 받은 사랑을, 나에게 투영하고 있었고 정리되지 않은 단어가 허공으로 흩어져 문장이 완성되지 않았던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선생님, 저와 친구해 주세요.


그때 시작했다.

상담을 받으러 오는 내담자가 아니라, 책을 통해 지혜를 얻고 그 책의 내용을 필사하고 삶에 적용함으로 성장하는 그녀를 보고 싶었다.

그것이 인문학 수업의 시작이었다.



-선생님, 왜 하필 이 책인가요?

죽음을 앞둔 시인이 기록한 <<이 삶을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책을 뒤적이며 그녀는 심드렁했다.

-적용할만한 구절이 있나요? 제 상황과 맞냐고요?

다소 쌀쌀맞은 문장의 끝처리에 오히려 기분이 좋아진 건, 자신의 의사표현을 정확하게 하는 완성된 문장들이 허공에서 내 마음으로 내려왔기 때문이다.

-책을 선택하는 기준은 책을 읽는 독자의 상황과 맞물려있으면 좋겠지만, 아주 우연히, 뜻밖의 체험을 하기도 해요. 그게 책이 주는 매력이죠.

모든 일이 슬프게 다가올 때가 있다. 입안에서 느껴지는 그릴 치즈 샌드위치의 맛, 신고 있는 양말의 촉감, 존이 주방에서 듣고 있는 음악이 나를 슬프게 했다. 존이 재생한 루던 웨인라이트의 우스꽝스러운 노래는 내가 베세즈다에 있는 사랍학교로 출퇴근하는 길에 매일 같이 듣던 믹스테이프의 수록록 중 하나였다. 그때 우리는 신혼부부였고,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되던 시절이었다. 이 노래를 다시 들으니 내 곁에 짧게 머물다간 모든 것들이 떠올라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이 삶을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두 아이의 엄마이면서, 한 남자의 아내였던 저자 니나 리그스는 촉망받는 문학도로 활발하게 활동하던 서른여덟 삶의 나이에 전이성 유방암 선고를 받고 시한부 삶을 살게 된다.

그때 기록한 책이 <<이 삶을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이며, 죽음을 예견하고 써 내려간 글 중에 평범한 맛도 평범한 일상도 슬프게 다가온다고 고백하는 문장이다


-선생님, 윤건의 [내 편]을 틀어주세요.

책을 읽어가면서 가슴에 닿은 문장이 있으면 필사를 하고 필사한 문장에서도 울림이 있는 문장이 있다면 알려달라고 했는데, 그녀는 노래를 틀어달라고 했다.

https://youtu.be/9Oa8sDnPOew

음악이 흘러나오는데 한 참 말이 없었다.

힘들게 운을 뗀 첫마디는 -선생님, 저는 제 편이 필요해요.

엄마에게 인정받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위축감은 학교에서도 구석에 앉아 있었고 힘을 내서 무엇인가를 시도하면 친구들이 싫어했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제가 예뻤어요.

예쁘다는 문장을 말하면서도 웃지 않는 걸 보면, 왕따를 당했던 상황이 떠오르고 아직도 그 상처를 씻어내지 못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

-친구들이 시샘했다는 건가요?

-꽤 잘 생긴 남자애랑 사귀었어요. 여자애들은 구석에서 책만 읽던, 친구가 없는 제가 그 남자애랑 사귀는 것이 못마땅했나 봐요.


과거 친구들의 괴롭힘은 상담 중에 나왔던 이야기인데, 오늘 필사한 구절과 무슨 연관이 있어서 떠오른 것일까?


-선생님, 결국 니나 리그스가 죽었죠?

-네... 아내의 기록을 남편이 모아서 출판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죽음을 예견하는 일상이 행복하지 않았을 텐데, 책이 전반적으로 담담해요

-그렇죠.

-[모든 일이 슬프게 다가올 때가 있다]라는 문장을 옮겨 쓰면서 먹먹했어요. 암 투병 중에도 마지막 삶의 여정을 기록하는 당당한 여자로 읽혔는데 결국 죽음은 슬픈 거잖아요.

-...

-윤건의 [내 편]이라는 노래를 들으면서 저는 늘 비관했어요 내 편은 없다.... 그래서 내 편이 되어주겠다는 선생님도 놓칠까 봐 불안했어요.

그녀가 촉촉한 눈으로 확인했다. ‘선생님 어디 가지 않는다고 말해주세요’


-저는 어디 가지 않아요. 옆에 있을게요.


상관없는 책이 있으랴.

관련 없는 문장이 있으랴.

책에서 얻은 한 줄의 문장이 그녀를 위로하고 그녀의 호흡을 느리게 하고 있었다.


서늘한 기운을 주는 아침 숲에서, 나뭇잎 위에 떨어져 있는 영롱한 이슬을 건드리면 이슬은 사라진다.

그 사라진 이슬을 보고 김선우 시인은 말했다.

당신이 기쁠 때 왜 내가 반짝이는지 알게 되는 이슬의 시간,
닿았다 오면 슬픔이 명랑해지는
말갛게 애틋한 그런 하루가 좋습니다.-김선우, <<참나라니, 참나!>>

나약해 보였던 몸에 살이 붙어가고,  완성되지 않은 문장이 살아나 오히려 상담자인 나를 치료하는, 책과 함께 했던 그 시간이 모여 그녀의 슬픔이 명랑해지기 시작했다.

그녀를 상담한 지 1년이 되어간다.

-우리 이제 그만 볼까요?

치유하고 상담하는 시간이 지나 같이 여행을 가고 책을 읽고 나누는 [인문학 수업], 장난처럼 건넨 말에 그녀는 말했다.

-왜요?

불안해서 물어보는 문장 같지는 않았다.

-이제는 제가 선생님을 위로하잖아요. 책에서 얻은 지혜를 나누면서 선생님도 위로를 얻잖아요?

반박할 수 없었다.


병마와 다투며 살아가지는 않지만 어차피 죽을 인생, 하루를 값지게 살아가도록 유도하는 [책]을 읽고 논하는 우리는 시한부 인생이다.

-선생님, 기분 어때요?

-조금 우울해요.

-그럼 치. 맥?


하하, 이제는 그녀가 내 편이다.



작가의 이전글 서툰 감정 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