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경이라고 파티를 열어준다는 [열린 엄마]의 기사를 읽었다.
열린 엄마가 맞다. 지독하게 마음앓이를 했던 나의 10대는 월경을 하면 불순하다고 했고, 팬티 보호대를 넘어 치마 밖으로 흘러내린 빨간 핏물을 보면 기겁을 하고 도망을 갔다.
마치 목발을 벌려 성큼성큼 걸어가는 나의 걸음새에 치마 밑으로 흘러내린 빨간색보다 더 짙은 검붉은 핏물은 전사가 흘린 증표 같았다.
-병신년아
생긴 모습이 병신일까,
병신의 뜻도 모른 채 목발이라는 선한 도구가 아이들 눈에는 정상인과 비정상인을 구분 짓는 모양인 게지.
철이 없는 아이들, 생각이 없는 어른들이 병신이라고 말하고 내 눈을 보았다.
이글거리는 눈, 한번 더 욕하면 눈물이 왕창 쏟아질 것 같은 큰 눈에서 그들은 동정을 읽지 못했다.
-이 병신 새끼야!
나는 목발을 휘둘렀고 똑같이 욕하는 용기백배 전사가 맞다.
그때, 남자처럼 목발을 무기 삼아 전투적으로 세상을 헤쳐나가는 나의 12살, 그때.
목발 사이로 다리 사이로 검붉은 액체가 툭하고 터졌다.
초경이 뭔지 월경이 뭔지 알리 없으니 욕을 하고 받은 하나님의 [벌]인 줄 알았다.
미군부대에서 공장으로 일만 하고 있는 엄마는 집에 없었다. 고학력 백수인 아버지는 딸이 아무렇게나 벗어 놓은 팬티를 빨면서 말했다.
-어떻게 참았냐, 아프지는 않았냐
일을 하지 않고 집에서 밥을 축내는 아버지를 증오했던 사춘기 딸은 아버지의 등으로 가난의 한을 한 바가지를 퍼부었다.
-아버지! 일이나 나가! 왜 내 팬티를 빨고 그래.
-아버지, 팬티 잘 빤다.
매일 앉아만 있던 아버지에게 고질병처럼 괴롭히는 치질은 엄마가 일을 나가고 오빠들이 학교를 가도, 막내딸은 집에 있는 그 시간에 빨래하고 있는 아버지를 보게 했다.
-아버지 팬티나 빨라고! 내 팬티는 엄마가 빨 거라고!
한풀이하듯 소리를 지르고도 분이 안 풀린 나에게 아버지는 치질을 위해 만들어 놓은 기저귀 감을 가위로 조각내고 있었다. 면으로 만든 사각 생리대를 하나, 둘, 셋... 가위로 자르고 거친 부분 살에 닿아 아플까 바느질로 꿰매 주고 당부했다.
-막내야, 여자는 청결이 중요하다. 한 번만 쓰고 밤에는 다시 빨아야 한다.
나의 면 생리대는 일주일 동안 집 앞 빨랫줄에 걸려있었다.
방과 후에 돌아와 다시 걷으면 다시 걸려있는 나의 면 생리대는 왜 그렇게 하얗게 빛났을까.
어른이 돼서 익숙해질 만도 한데, 일회용 생리대를 하면 사타구니의 부드러운 살이 합성소재의 이물감에 짓무르기 일쑤였고 통기성이 거의 없다 보니 가려움증과 불쾌감에 생리 주간에는 예민한 나를 다 알아낼 수 있다.
그 날이구나!
비가 오는 날이었던가.
외부 일정으로 외부 화장실에서 생리대를 갈 때, 화장실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일회용 생리대를 보고 오물과 함께 뒤섞여 있는 빨갛게 물들어있는 생리대를 보고 울컥했다. 갑자기 추억 없는 아버지는 왜 떠오르는 건지.
'아버지...'
비가 오는 쓸쓸함일까, 눅눅함이 사타구니까지 느껴지는 답답함 때문일까, 쓰레기통에 던져지는 나의 핏물이 아버지의 치질 팬티까지 떠오르게 하는 생각의 꼬리로 웃어야 하는 모임에서 이내 들었다.
그 날이구나!
아버지는 왜 나에게 면 생리대를 만들어 주었을까.
정권을 비판하고 불합리한 세상을 한탄하면서 일은 하지 않는 고학력 백수 아버지가 유일하게 하는 일은 빨래를 삶는 일인데, 거품 잔뜩 풀어 넣은 들통에 치질 걸려 누레진 본인의 팬티를 털어놓고 우아하게 영자신문을 읽었다.
-막내야, 영어를 잘해야 한다.
팬티를 삶는 아버지, 영자신문을 읽는 아버지, 그리고 노는 아버지는 엄마가 들어오는 늦은 시간에 정갈하게 목욕을 한다.
일에 찌들어 피곤한 기색 역력한 엄마는 비누 냄새 풍기는 아버지와 육체적 교감을 나누고 중얼거렸다.
'동물이구나, 동물...'
사랑하지 않는데 안을 수 있구나, 남자가 멋지지 않아도 사랑할 수 있구나, 사춘기 12살 막 초경을 끝낸 나는 미치도록 아버지가 미웠다.
-아버지, 육성회비 밀려서 혼났어요. 돈 좀 주세요.
-안 내도 된다. 어차피 졸업은 한다.
추억 없는 아버지와 영혼 없이 건네는 몇 마디조차 괴로운데, 매 달 그 날이면 말했다.
-막내야, 면 생리대 가져와라 빨아줄게.
-돈을 달라고요! 제 생리대 신경 쓰지 말고!
아버지는 뭐가 그렇게 불결할까, 박정희가 왜 그렇게 싫을까, 치질 걸려 누레진 빨래를 왜 그렇게 삶았을까, 왜... 그는 더러운 현실을 인정하지 못했을까
추억 없는 아버지는 소주가 예쁘다고 했다. 막걸리보다 소주가 맛있다고 했다.
소주를 마시는 동안은, 자기를 무시했던 직장 상사의 비리도 눈 감아 줄 수 있다고 했다. 소주를 마시는 동안은 박정희의 키를 놀리기도 했다. 소주를 마시는 동안은 용감했다.
그렇게 맑은 소주를 바라보던 아버지의 눈이 풀리고 아버지의 얼굴이 어두워지고 아버지의 근육이 풀리는 날, 아버지는 간암으로 죽었다.
-엄마! 걸레도 삶아?
-엄마! 오늘은 왜 그렇게 빨래를 삶아?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은 줄 알았다. 침대에 엎드려 드라마를 보고 울고 계실 때, 드라마가 슬퍼서 우는 줄 알았다. 60대에도 70대에도 80대에도 엄마는 빨래를 하얗게 삶았다.
내가 마법에 걸린 날이 오듯, 엄마는 월례 행사처럼 빨래를 삶았다.
이혼을 하고 알았다. 남편이 미워서 이혼을 했는데 남편이 떠오를 때 알았다.
'그냥, 그 날이구나...'
결벽증처럼 하얀 이불을 좋아한다.
불편한 다리 질질 끌면서 모든 집안을 구석구석 청소한다.
하얀 면보를 조각조각 기워서 비가 오는 꿉꿉한 날에 합성 생리대를 대신한다.
찌그러진 냄비 하나 꺼내서 세제와 향기 좋은 다우니를 풀어놓고 면 생리대를 삶는다.
-엄마, 위험해요 힘든데 뭘 그렇게 삶아요?
아들은 모른다.
추억 없는 아버지가 너무 많이 그리워서 면 행주와 면 생리대와 면보를 그렇게 삶는 것을 모른다.
그냥, 그 날인 줄 알겠지,
엄마가 힘이 남아도는 그날.
무심한 놈, 딸이면 내 마음을 좀 알까..
불편한 몸으로 빨래를 널어놓고 흐뭇해하는 나는, 그림도 빨래가 걸려있는 풍경을 그리는데
내 마음을 알까?
오늘이 그 날인 것을...
P.s 아버지... 그 거 아세요
아버지가 미워하는 박정희를 같이 미워할 수 있는 나이가 됐어요.
이제는 아버지가 면 생리대를 만들어 주었던 이유를 알 수 있어요.
아버지, 저는 아버지가 좋아하는 영어 선생님으로 살았어요.
아버지,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은 장애인 딸이 가장 깨끗한 옷을 입고 가장 예쁘게 미소 짓고 살고 있어요.
보고 있나요?
저 잘 살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