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두기]
다른 이야기를 쓸 때는 예쁜 한정 펜을 사고 일기를 쓰듯 설렜습니다.
그러나, 엄마 이야기는 소재가 떠오르고 이야기가 풍성한데 마음의 준비가 참... 오래 걸립니다.
엄마는 제게... 너무 어렵습니다.
줄줄 딸려있다는 말을 들으면 그 끝에 달려있는 마지막 내 줄을 끊어버리지는 않을까 불안했다.
"자식이 줄줄 딸려있으니, 해야지요!"
새벽 4시에 식당 문을 열고, 새벽 6시가 되면 택시 기사 아저씨들이 엄마의 밥을 먹었다.
아침마다 새소리를 듣는다는 조금 외진 곳에 위치한 엄마의 기사식당, 그곳에서 엄마는 새소리가 아닌 도마 위에서 날고 있는 칼 소리로 나를 깨웠다.
식당 한편에 자리 잡은 방에서 6시 알람 소리는 엄마가 내리치는 도마의 칼질 소리였고, 거친 인부와 싸우고 있는 엄마의 큰 목소리였다.
간암으로 죽은 아버지와, 일찍 독립해서 나가 사는 오빠들이 부럽다고 철 없이 볼 멘 소리를 할 때
넌 언제 철들래?
그때 엄마가 왜 식칼을 들고 있었을까
그 식칼이 위협이 되어 찍소리 못하고 다 큰 고등학생은 엄마가 건네 준 김치 국물 흐르는 도시락을 들고 목발보다 무거운 낡은 가방을 들고 다짐했다.
'철들면 엄마랑 안 살 거야...'
엄마는 무릎 인공 관절 수술을 해서야 맛으로 소문난 40년 식당을 아들에게 양도했다.
남편 없이 키운 자식들에게 미리 주어버린 유산이 자식들의 소원함으로 이어지고, 그 유산을 다 날려버려도 수술로 걸을 수 없는 엄마의 자존감은 꺾지 못 했다. 동네마다 전단지 뿌려가며 병원으로 약국으로 엄마가 만든 집 반찬을 배달했다.
소 일거리 삼아했던 배달이 다시 다른 쪽 무릎에 무리를 줄 때 그때야 엄마의 자존감이 땅으로 떨어졌다.
쉴 줄 알았다. 몸이 아프면 쉴 줄 알았다.
엄마는 다리 운동삼아 온다는 핑계 삼아 공부방을 운영하는 장애인 딸 집에서 나를 위한 도마 질을 시작했다.
꿈처럼 중얼댔다.
'줄줄이 딸린 자식, 나를 잘라내지 않았네'
새벽까지 아이들 가르치고 오전까지 자고 싶은 단 잠을 깨우는 경쾌한 도마질 소리는 아픈 엄마가 나 대신 집안일을 하고 있는데 너는 잠이나 자고 있냐는 투사가 되어 철 없이 볼멘소리를 할 때
넌 언제 철들래?
왜 엄마는 식칼을 들고 말했을까?
빌딩 숲 우거진 곳으로 공부방을 옮기고 마음이 아픈 아이들을 치유하는 공간으로 바꾸고 공동체라는 상호를 걸 만큼 규모가 커질 때, 일 하는 아줌마를 고용해야 했는데...
일하는 아줌마 줄 돈을 엄마가 요구하고 엄마가 공동체 부엌을 책임질 때 철없이 생각했다.
'진짜 돈 밖에 모르네...'
나와 똑같은 성격의 유형을 가진 엄마는 참고 산 이력을 [혈액암]으로 표출했다.
강하고 당당한 이미지는 그 센 모습만큼 여린 마음을 억압시키고 혼자 울었으리라.
이불 보 아래 숨어 베갯잇을 적시며 혼자 울었으리라.
어쩌면 슬픈 드라마 보면서 강한 여자가 보이는 눈물이 사실은 연기를 너무 잘해서 슬퍼졌다는 핑계를 삼아 그렇게 울었으리라.
엄마는 [암]에 걸려 병원에 입원해서야 일하는 아줌마를 허용했다.
일하는 아줌마가 해 주는 반찬이 맛없다고 투덜대는 공부방 학생의 안부전화에 엄마는 혈색이 좋아졌고
일하는 아줌마가 청소를 대충하고 가서 다시 청소하고 있다는 딸의 볼멘소리에 엄마는 퇴원을 했다.
독한 항암 약을 이겨내느라 몸무게가 반이나 줄어버린 그 몸으로 도마를 꺼내 식칼을 들었다.
아침이면 딸이 좋아하는 된장찌개를 해주고 손맛 좋은 엄마 덕에 재탕 음식을 먹지 않는 철없는 딸에게 저녁이면 제육볶음을 해주고,
비가 오는 날은 수제비와 부침개라는 말에 밀가루 반죽 척척 쳐대는 엄마 옆에서
나는 고개 숙이고 울고 있는 아이들을 달래고 그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수업을 했다.
그때, 마음이 아픈 아이들만 보이는 그때, 나는 상담사가 되었다.
식칼이 도마 위에서 날아다니는 소리가 익숙해지고 아침마다 10첩 반상을 차리며 나를 깨우는 엄마의 소리가 익숙해지는데 엄마가 변했다.
도마 위에서 나야 하는 칼질소리는 약해지고, 음식의 간은 싱겁거나 짜서 먹을 수가 없었다.
(아... 담담하게 쓰고 싶고 담백하게 쓰고 싶은데 어렵습니다.)
날카로운 금속소리가 싱크대에 부딪혔나 보다.
철이 없어도 아픈 엄마가 냄비를 놓친 소리라는 것쯤은 아나보다.
불편한 다리 잽싸게 끌어당겨 부엌을 보니 핏물 덜 뺀 감자탕 뼈다귀들이 싱크대 아래에서 엄마에게 잔소리를 듣고 있었다.
'아, 왜 떨어지고 난리냐 너네들은...'
힘든데 왜 감자탕을 하냐고 잔소리를 들을 까 미리 말하는 거...
아침부터 왜 그렇게 힘든 음식을 하냐고 소리칠 것을 아는 거...
엄마는 그렇게 애꿎은 뼈다귀들을 혼내며 냄비에 주워 담고 있었다.
"엄마, 감자탕은 오후에 하는 음식이잖아? 이따 하지. 설마 미리 다 해놓은 건 아니지?"
돌려 말한다고, 위로하고 싶은데, 눈물이 날까 봐 서툴게 대화하는 나에게
너는 언제 철이 드냐?
그때 보았다. 엄마는 이제 식칼을 들고 있지 않았다.
위로도 못하고, 안아주지도 못하는 엄마를 닮은 딸에게 왜 자꾸 철만 들라고 하는지,
"엄마, 엄마는 왜 자꾸 무거운 철을 들래? 엄마가 철을 그렇게 드니까 팔을 못 쓰잖아!"
돌려 말한다고, 위로한답시고 한 말이 농담처럼 가벼워야 한다고 생각했나 보다.
식칼도 못 드는 엄마는 욕도, 대꾸도, 미동도 없이 주저앉아 오래 아주 오래 긴 숨을 내쉬었다.
"막내야, 엄마가 이제는 힘이 들어... 일하는 아줌마를 쓰자..."
나는 그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엄마를 안았다. 뜨겁게,
"엄마! 힘들면 말하지, 미안해, 엄마..."
돌려 말하지 않고 미안하다는 말이 나오니 어린 시절, 장애인 딸을 방치했던 삶쯤이야 엄마를 닮아 똑같이 남편 복이 없다고 투사했던 엄마의 모짊이 대수가 아니었다. 엄마를 살려주고 싶었다.
나는 상담사다.
엄마와 풀어내는 내면 여행이 엄마의 나약한 힘줄을 살리고, 엄마의 혈액을 돌게 했다.
나이 85세, 가능성이 없다는 혈액암을 이겨냈다. 엄마는 암을 완치했다.
나는 강하다.
수입이 없는 딸이 작가가 되어서 책을 내고 인터뷰를 하는 도전이 엄마와 딸의 독립으로 이어지게 했다.
유산을 미리 준 자식들 그 누구도 엄마를 모실 수 없는 상황에 요양원을 가면 외로울 것 같다는 엄마는,
지금 반려견 백설이와 둘이 산다.
-막내야, 감자탕 가져가라
-막내야, 제육볶음 가져가라.
이제는 스스로 잘해 먹고 잘 살고 있다고 엄마 음식보다 더 맛있는 [비비고]가 있다고 농담처럼 건네면
전화기 넘어 엄마는 긴 숨을 쉰다.
너는 언제 철이 들래?
-막내라 그래. 하하하
-난 비비고가 맛있어, 그니까 감자탕 절대 하지 마!
엄마는 모른다. 엄마를 닮아 사랑 표현 못 하는 막내가 이불보 안에서 베갯잇 적시며 우는 이유가 엄마 때문이라는 것을.
모질 만큼 강하게 말해도 매일 밤 무릎 끓어 엄마가 건강하기를 기도하는 딸이 막내인 것을 엄마는 모른다.
아마, 까막 눈 우리 엄마는 이 글도 읽지 못할 것이다.
그저,
"우리 집에서 장애인 딸이 제일 잘 살아요. 제일 유명해요. 작가예요. 인터뷰도 했대요"
엄마가 질투하는 엄마의 언니에게 엄마의 친구에게 자랑만 할 것이다.
나는 강하다. 절대로 엄마 앞에서 울지 않는다.
식칼은 식칼 하고 갈아야 더 날카로워지고 강해지듯 오늘도 날카로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식칼이다.
자식들을 위해 도마를 꺼내 다시 음식을 하는
엄마는 식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