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사물

지팡이.

by Sabina

[일러두기]

엄마라는 단어는 물 먹다가 사레들리는

엄마라는 단어는 알리오 올리오 스파게티 마늘을 으깨고 있는

엄마라는 단어는 용돈 10만 원 주고 돌아서도 답답한,

그 엄마가 허리를 구부리고 지팡이를 짚고 다닙니다.

그 엄마가 죽기 전에 [엄마 이야기] 가득한 글을 써달라고 합니다.

이제, 그 날입니다. 시작합니다.


월간 샘터 기자의 연락은 기쁘기도 했지만, 흑과 백 그 모호한 느낌의 색처럼 선과 악 그 중간쯤 걸쳐 사는 주변인처럼 생각이 똬리를 틀게 했다.


-내가 엄마를 사랑하나, 진짜 사랑하나? 장애인 딸이라고 창고에 가두어 둔 그 세월을 용서했나, 진짜 용서했나?

-왜, 맛있는 걸 먹으면 엄마가 생각이 날까?

-왜 용돈을 주면서 뒤돌아 올 때, 돌멩이 하나 들고 가는 것처럼 마음이 무거운 걸까?


엄마는 그렇다.

애정 표현 듬뿍 받아 얼굴 가득 애교를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에니어그램 2번이 아니어도

엄마는 그렇다.

안부 전화 가끔 하는데 불편해서 빨리 끊고 싶은 에니어그램 7번이 아니어도

그냥 좋은 사람이... 엄마다.


아이를 낳으면 이해한다고 누가 그랬는지, 아이를 낳고 아이가 성장해도 엄마가 그렇게 불편했는데

남편과 이혼하고, 아이가 독립을 하고, 엄마와 물리적으로 거리를 두니

자꾸만 신경이 쓰여서 맛있는 음식 먹으면 [엄마, 다음에 같이 와요] 전화해야 안심이 되고, 연꽃이 가득한 도로를 드라이브하다가 [엄마, 같이 못 와서 미안해요.] 위로해야 마음이 편해진다.


이렇게 오래 걸려서 엄마를 이해하고 사랑한다고 표현하는 나는 못난 딸이다.


월간 샘터 기자와 촬영팀이 도착했다.

브런치에 올린 글을 보고 [할머니의 부엌]이라는 코너에 엄마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했을 때,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엄마와 길게 대화를 하면 불편해서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글 밖에 없었는데.

그 사랑의 글이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고 다시 엄마와 음식을 준비하는 그 긴 시간, 나는 어떤 이야기 꽃을 피우며 엄마를 위로해야 할지... 생각이 많아졌다.


엄마가 느꼈을까?

식당을 운영하는 40년 도마 인생이,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 밥까지 해주느라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도마를 꺼내 경쾌한 칼질을 하느라 팔의 힘줄이 끊어졌는데, 이제는 지팡이에 의지하지 않으면 걸을 수도 없는데,

엄마는 느꼈을까?

그 지팡이를 짚고 시장에 가서 재료를 사고 불편해하는 딸에게 물었다.

-막내야, 인터뷰하려면 음식 개수가 많아야겠지?

-엄마 아니야, 주제가 감자탕이니까, 감자탕만 해. 내가 밑반찬은 살게.

-왜? 엄마 음식이 맛이 없니? 엄마가 만들게, 사지 마.

엄마가 힘들 까 봐 밑반찬을 산다는 말인데, 엄마는 또 오해했다. 외 마디 대화가 주는 오해가 이렇게 깊다.

이제는 길게 풀어서 설명을 해 줘야 엄마가 이해를 한다.


지팡이에 검정 봉지 다닥다닥 걸고 집으로 걸어갔나 보다.

-막내야, 차 가지고 올 수 있냐? 짐이 많아서 걸을 수가 없다.

-엄마! 그니까 사지 말랬잖아! 넘어지면 어떡하려고, 그렇게 많이 사면 지팡이도 짐이야!

말해놓고 아차 했다.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내가 할 소리인가.

아픈 가슴 더 아프게 후벼놓고, 60Km 제한 속도 따위 무시하고 엄마가 계신 시장으로 달렸다.


저 멀리 걸어오는 엄마 모습에, 딱지 붙이는 도로 따위 신경 안 쓰고 차를 세우고 소리쳤다.

엄마! 움직이지 마요. 거기 있어요!


엄마는 안다. 차를 세우고 엄마 짐을 들어줄 수 없는 딸이라는 것을.

지팡이에 걸려있는 검정 봉투가 달랑대면서 내 앞으로 오고 있다. 불편했다는 감정이, 창고에 가두었다는 트라우마가 뜨거운 눈물을 타고 흘러내려서 미치도록 미안해서 후회했다.

'괜히 인터뷰하자고 했어...'


엄마는 느꼈을까?

-어머니,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 있나요?

-막내가 잘 살면 좋겠어요. 작가도 되고, 상담도 하고... 다 좋은데 막내가 잘 살면 되지 뭐...

-지금도 막내 따님은 잘 살고 계신 것 같은데, 따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얘가 워낙 말이 없어요. 고민도 말하지 않고, 힘들다는 내색도 하지 않아서...

-아, 그래요 두 분이 꽤 다정해 보이는데요...

-나한테는 말을 잘 안 해요. 내가 막내한테 정을 표현하지 않아서 그렇지 뭐...


엄마는 느꼈다.

엄마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기자에게 이른다. 기자가 물어보는 것이 1.4 후퇴 이야기와 6.25 피란 이야기고, 백수 아버지와 어떻게 지냈는지 물어보는데, 내 이야기만 하신다.

-나는 다른 거 없어요. 막내만 잘 살면 되지 뭐..


아, 불편하다.

너무 불편하다.

-엄마! 기자분이 물어보잖아요, 아버지와 연애했을 때 이야기해보세요.

-응? 그래. 엄마가 예뻤지, 아주 예뻤어. 근데 아버지는 건달이야

웃는다, 소녀처럼 웃어 보인다.

1시간이 넘게 엄마의 추억이 펼쳐지니, 기자도 웃고, 엄마도 웃고, 나도 웃는다. 그제야...



오늘은 선한 날이고, 오늘은 흑과 백 사이 핑크가 가득한 날이다.

사진을 찍고, 음식이 맛있다는 칭찬이 엄마의 혈색을 살렸다. 그리고 엄마가 날아가듯 사뿐사뿐 걸어갔다.

엄마가 떠난 자리에서 보았다.


엄마! 지팡이 두고 갔어요.

엄마는 잊은 거다.

엄마의 분신 지팡이를 잊고 갈 만큼, 기분이 좋은 거다.

내가 신나게 드라이브를 하고 목발을 챙기지 않고 내리듯, 엄마는 잊은 거다.


인터뷰를 했어야 했다.

잘했다.

이 거면 됐다.

https://brunch.co.kr/@jisu66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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